배당확대 훈풍 탄 은행주…반값에 '줍줍' 해볼까
지금까지 은행주는 '양치기 소년'이었다. 주주환원을 외쳤지만 자의(부실 위험 비용 증가)나 타의(당국 규제)에 따라 허공 속에 사라졌다. 무서운 어른이 나타났다. 그 이름은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이라고도 하고 행동주의펀드라고도 한다.
작년에 얼라인은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총괄프로듀서를 무너뜨린 바 있다. 이수만 프로듀서의 개인 회사 '라이크기획'과 SM 간 계약 관계를 끊어냈다. 얼라인에 따르면 그동안 SM은 라이크기획에 과도한 수수료를 지급했다. 제조업 기반 오너 기업에선 이를 '일감 몰아주기'라고도 부른다. 얼라인은 SM 지분 1.1%를 들고 다른 주주들을 대변한다는 명분 아래 라이크기획의 손쉬운 매출을 줄여 SM 주주 몫을 늘리는 데 공헌했다.
이 자산운용사가 새해 벽두부터 총구를 '이수만'에서 '금융지주'로 돌렸다. 신한·KB·하나·우리금융지주 등 4대 금융지주를 포함해 지방 금융지주까지 7곳에 '과도한 대출을 줄이고 주주환원을 늘리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 것이다. 얼라인은 구체적인 기준과 데드라인까지 제시했다. 보통주자본(CET1) 비율에 따라 배당 등 주주환원을 크게 높이라는 것이다.
CET1 비율은 국제결제은행(BIS)이 중시하는 금융사 자기자본비율 혹은 규제다. 금융지주별 주주환원 정책 공시는 오는 2월 9일까지로 못 박았다.
얼라인의 압박에 가장 먼저 각성한 곳은 신한지주다. 이 금융지주는 지난 2일 경기도 용인에서 임직원 260명을 모아놓고 '2023년 신한경영포럼'을 열었다. 여기서 CET1 비율 12%를 넘는 초과분에 대해 전액 주주환원하겠다는 내용이 나왔다.
얼라인의 요구에 따라 신한이 움직인 것인지, 자발적인 의지인지는 양측 의견이 달랐다. 어쨌든 주주 입장에선 환영할 만한 소식이다.
CET1 비율은 보통주자기자본을 위험가중자산(RWA)으로 나눠서 구한다.
작년 3분기 기준 신한의 보통주자기자본은 36조6940억원이다. RWA는 288조2830억원이니 CET1 비율은 12.7%가 나온다.
신한이 추가 주주환원의 기준을 12%로 잡았으니 초과분(0.7%포인트)을 RWA에 적용하면 2조180억원이 나온다.
이만큼을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소각에 쓴다는 것이다. 금융지주들은 매번 비슷한 행보를 보였기 때문에 비슷하게 환원 기준을 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똑같은 기준(2022년 3분기)을 다른 금융지주에 적용해봤다. CET1의 12% 초과분을 주주환원에 쓴다고 가정했을 때다.
CET1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하나금융지주(12.8%)였지만 주주환원 가능 금액은 상대적으로 적어 다른 금융지주와 비슷했다.
신한이 유일하게 2조원대이고 하나금융이 1조9994억원, KB가 1조9254억원으로 나타났다. 우리금융은 CET1 비율이 10.9%에 그쳐 여력이 없는 것으로 나왔다.
'시장에 내가 제일 먼저 반응한다'는 모토를 갖고 있는 신한의 배당성향은 2021년 기준 26.04%다. KB·하나·우리금융지주는 모두 약속이나 한 듯 25%대다. 미국 4대 은행 중 한 곳인 JP모건의 배당성향 33.09%(모닝스타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
배당성향은 순이익을 배당금으로 나눈 수치로, 해당 금융사의 주주환원 의지를 나타낸다. 얼라인은 국내 은행주들이 이런 수치를 높여주길 공개적으로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주주를 등에 업고 얼라인이 노리는 상장사는 사상 최대 실적을 내면서 외국인 지분율이 뛰는 곳이다. 2021년 SM이 사상 최대 실적을 내면서 주가가 뛰자 2022년에 얼라인이 주주환원 압박이란 행동에 나섰고, 이번에 그 타깃이 은행주로 옮겨온 것이다.
증권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4대 금융지주 순이익은 모두 작년에 사상 최대를 기록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증권사 3곳 이상 추정치 평균값 기준이다. 작년 예상 순익 1위는 신한이다. 2022년 4조7658억원의 순익은 KB(4조7590억원)를 근소하게 앞설 것으로 추정된다. 하나금융과 우리금융은 각각 3조7289억원, 3조3168억원으로 예상된다.
은행의 성장성을 나타내는 2021년 대비 2022년 순익증가율은 우리금융(18.1%)이 단연 높았다. 다만 우리금융은 계열사 중에 증권사가 없어서 작년에 상대적 이득을 봤다. 다른 금융지주들은 소속 증권사의 순익이 크게 줄면서 낭패를 봤다. 부동산 등 대체투자 부문에서 손실이 큰 데다 작년부터 주식 거래가 급감하면서 전체 실적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자기자본이익률(ROE)은 한정된 자본으로 얼마나 영업을 잘했는지를 나타내는 수익성 지표다.
외국인투자자들은 4대 금융지주에 대해 '은행 로고' 차이 외에는 개성이 부족하다고 평가한다. ROE가 도토리 키 재기식으로 10% 내외다. 우리금융이 11%를 넘지만 이 역시 자기자본이 다른 곳보다 작아서 나타난 '착시현상'이란 평가가 나온다.
외국인은 올 들어 4대 금융지주 주식들을 사들이고 있다. 원화값이 강세로 돌아서자 그나마 실적이 안정적인 국내 주식인 반도체(삼성전자·SK하이닉스)와 은행주(4대 금융지주)를 위주로 순매수하고 있다.
외국인은 예상 순익 기준 1위인 신한(1722억원)과 CET1 수치가 가장 높은 하나금융(1654억원)을 사들이고 있다.
4대 금융지주의 2022년 실적과 향후 주주환원 정책은 늦어도 2월 둘째주까지는 나올 것으로 보인다. 현재 실적과 주주환원 공시 날짜를 확정한 곳은 우리금융(2월 8일)뿐이다. 공교롭게도 얼라인의 마감 시한 하루 전이다.
금융지주들의 주주환원 발표가 다가오면서 주가가 먼저 급등했다.
하나금융 주가는 올 들어 지난 17일까지 24.1% 올랐다. 같은 기간 신한·KB·우리금융은 각각 23%, 21.9%, 11.3% 올랐다.
코스피가 같은 기간 6.4% 상승한 것을 감안하면 유독 은행주 주가 수익률이 높았다.
투자자 입장에선 먼저 급등한 주가와 꺾이는 실적이 문제다. 올해 예상 순익은 작년 대비 증가할 것으로 보이지만 순익증가율은 뚝 떨어질 전망이다. 금리 인상 속도가 가팔라지면서 은행 수익의 핵심인 가계대출이 감소세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작년 12월 말 기준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1058조1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2조6000억원 줄었다.
예금은행에는 4대 금융지주의 순익 60~70%를 차지하는 시중은행이 모두 포함돼 있으며 이들의 대출 감소가 주요 원인이다. 연간 가계대출이 줄어든 것은 통계 집계가 시작된 2004년 이후 18년 만에 처음이다. 은행 등 금융지주의 성장성이 끝났다는 '비관론'까지 나온다.
경기 침체가 본격화되면서 최근 실적을 발표한 미국 은행들은 대손충당금을 대거 쌓았다.
대손충당금은 대출자들이 향후 돈을 갚지 못할 것을 예상해 은행 등 금융사들이 미리 쌓아놓는 회계상 비용 항목이다. 미국 은행의 비용 정책은 국내 은행주에도 영향을 미친다. 얼라인 등 행동에 나선 주주들의 기대와 달리 금융지주가 배당을 늘릴 여력이 줄어들 수도 있다는 뜻이다. 실제 최근 실적을 발표한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의 작년 4분기 순이익은 전년 동기보다 각각 66%, 40% 감소했다. 대손충당금과 인건비 등 비용이 늘었는데 국내 금융지주들도 이 같은 비용을 더 많이 향후 회계에 반영할 수밖에 없다.
당국의 고정관념 중 하나인 '배당 증가=외화 반출'도 넘어야 할 산이다. 지난 정부 시절인 2021년에 '배당성향 20% 이내' 규제가 나온 적도 있다. 이는 금융지주의 외국인 지분율이 높기 때문이다. 신한은 63%에 달한다. 환율 안정을 이유로 언제든 규제가 나올 수 있다.
투자자 입장에선 다음달 4대 금융지주의 구체적인 주주환원 정책을 확인한 뒤 투자하는 것이 보다 안정적이다.
[문일호 엠플러스센터 증권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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