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앞둔 구룡마을의 한숨 “명절음식이고 뭐고, 집이 다 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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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음식이고 뭐고 다 탔지. 뭐, 그래도 살았으니까."
설 명절을 앞둔 20일 서울 강남의 '마지막 판자촌' 구룡마을에서 큰불이 나면서 집을 잃은 주민 신아무개(71)씨는 "도중에 잠이 깨서 다행이지, 아니면 진짜 모조리 죽을 뻔했다"고 말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구룡마을 집들은 '떡솜'으로 불리는 솜뭉치와 비닐·합판 등 가연성 물질로 덮인 가건물 형태라 화재가 발생할 경우 금세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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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음식이고 뭐고 다 탔지. 뭐, 그래도 살았으니까….”
설 명절을 앞둔 20일 서울 강남의 ‘마지막 판자촌’ 구룡마을에서 큰불이 나면서 집을 잃은 주민 신아무개(71)씨는 “도중에 잠이 깨서 다행이지, 아니면 진짜 모조리 죽을 뻔했다”고 말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새벽에 화장실 가려고 나왔는데 형광등에서 ‘찍찍’ 하는 소리가 들려서 밖에 나가보니 불이 확 올라있었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 신씨는 그나마 다친 사람은 없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50대 주민 ㄱ씨는 “사이렌 소리를 듣고 깨서 나와 보니 불이 나 있었다. 바람도 세게 불어서인지 불이 크게 번진 것 같다”고 했다. 마을 곳곳에는 나무판자가 쓰레기와 섞여 군데군데 널브러져 있었다.
소방청은 이날 새벽 6시27분 구룡마을 일대의 화재 신고를 접수한 뒤, 중형재난에 해당하는 대응 2단계를 발령해 4시간 만인 아침 10시10분 큰 불길을 잡았다. 오전 11시46분엔 잔불까지 완전히 꺼졌다. 화재 진압과 구조 등에 소방 197명을 비롯해 구청·경찰·군 등 모두 918명이 동원됐다.
불은 구룡마을 입구 기준으로 동쪽 끝 4구역의 한 교회 인근에서 시작된 것으로 파악됐다. 4구역 위쪽인 5~6구역까지 불이 번졌지만, 소방당국이 초기에 남북으로 저지선을 치면서 마을 전체로 번지지는 않았다.
4구역 96개 주택 중 60여개가 불에 탔고, 이재민 43가구(60명)가 발생했다. 소실 면적만 2700㎡(약 816평)다. 불이 난 곳은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까맣게 타버린 상태였다. 부상자 등 인명 피해는 없었다.
대피한 주민 450여명은 마을회관 등에 뿔뿔이 흩어졌다. 특히 설 연휴를 하루 앞두고 발생한 화재에 주민들은 큰 상실감을 느꼈다. 주민 ㄴ(71)씨도 “지난해 8월에도 물난리가 나서 말이 아니었는데 또 불이 났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호텔 마련해준다고 했지만, 일주일 뒤가 더 문제”라고 했다.
30년 넘게 마을에 산 이애란(72)씨도 “우리집은 다행히 괜찮은데 명절 앞두고 이런 일이 벌어져 마음이 안 좋지. 무섭지만 살아야지. 여기가 내 집이니까”라고 말하며 잿더미가 된 마을에 눈을 떼지 못했다.
구룡마을 집들은 ‘떡솜’으로 불리는 솜뭉치와 비닐·합판 등 가연성 물질로 덮인 가건물 형태라 화재가 발생할 경우 금세 번진다. 2014년 11월 화재로 주민 1명이 숨진 뒤로도 2015년 5월, 2017년 3월, 2022년 3월 등 화재가 끊이지 않았다.
신용호 강남소방서 행정과장은 “마을 건물은 화재에 취약한 가연성 합판으로 만들어져 화재에 취약하다”며 “정확한 화재 원인은 현재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이날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여야 지도부가 화재 현장을 찾아 위로했지만 주민들 반응은 싸늘했다. 22년째 구룡마을에 사는 이태원(73)씨는 “재난이 생기면 정치인들 와서 구경하고, 또 끝나면 잊어버린다. 정책적으로 이주비 마련해줘서 주민 공간을 마련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곽진산 기자 kj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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