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의 책과 지성] ‘한 뼘’ ‘한 아름’ ... 인간의 몸이 세상을 만들었다
"개는 뜸부기보다 3배 오래 살고, 말은 개보다 3배 오래 살고, 칠면조는 말보다 3배 오래 살고, 사슴은 칠면조보다 3배 오래 살고…."
오래전부터 구전되어 내려오는 아일랜드 민요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하나 알 수 있다. 고대 아일랜드에는 동물의 수명을 계산하는 기준점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뜸부기의 수명이 모든 동물의 수명을 재는 기본 단위였던 것이다.
이처럼 무엇인가를 측정한다는 건 인류의 숙제였다. 기준점과 표준을 만들어 모두가 동의하는 측정을 하기까지 인류는 무한한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물리학자인 로버트 P 크리스가 쓴 '측정의 역사'에는 절대 측정을 향한 인류의 꿈과 여정이 담겨 있다.
1999년 9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야심 차게 화성 탐사선을 쏘아 올린다. 하지만 탐사선은 목적지에 도달하지도 못하고 대기권에서 불타버린다. 왜 그렇게 됐을까. 원인은 너무나 어이없는 곳에 있었다. 실패의 원인은 도량형이었다.
탐사선을 설계 제작한 록히드 마틴은 미국 전통 도량형인 야드파운드법에 따라 탐사선을 만들었고, 이것을 발사한 NASA는 표시된 숫자들을 미터법에 준해 읽은 것이었다. 이 말도 안 되는 실수로 미국의 자존심은 바닥에 떨어졌고, 천문학적인 돈은 허공에 뿌려졌다.
전 세계가 쓰고 있다는 미터법은 1799년 12월 10일, 프랑스에서 도입됐다. '미터'라는 용어의 어원은 '잰다'는 의미의 그리스어에서 유래됐다.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을 성공시킨 계몽사상가들은 모든 사람을 아우르는 척도의 필요성을 인식했다. 그들은 임의적이지 않고 표준 원기(原器)를 잃어버리더라도 쉽게 재생이 가능한 도량형의 기준이 필요했다. 그들은 고민 끝에 "북극에서 적도까지 지구 자오선 길이의 1000만분의 1을 새로운 단위 1m로 한다"는 법령을 발표한다.
미국과 영국은 자존심 때문에 미터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영국은 시간이 한참 지난 다음 미터법을 받아들였지만, 미국은 여전히 야드파운드를 사용하고 있다. 지금은 사회 혼란이 두려워 미터법을 시행하고 싶어도 시행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있다.
인류 역사를 들여다보면 별의별 것들이 측정 기준으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아주 흥미롭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흔하게 쓰인 도량형의 기준은 사람의 몸이었다. 우리가 지금도 쓰고 있는 한 뼘이나 한 걸음, 한 아름 등은 아주 넓게 쓰인 경우다.
중국이 오랫동안 사용해온 '척'은 성인 남자의 발 길이를 의미했고, 고대 그리스에서는 손가락 굵기를 '닥틸로스'라고 해서 도량의 기준으로 삼았다. 시간을 잴 때도 신체가 활용됐다. 맥박으로 시간을 재기도 했으니 말이다.
미터법을 두고 "인쇄술 이후 최고의 발명품"이라는 말이 있을 만하다.
[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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