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금융당국의 금리 '청기백기'
기준금리 인상됐지만...은행권은 당국 눈치만
금융당국이 은행의 예금·대출 금리를 가지고 '청기 백기' 게임을 하고 있다. 통상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예금·대출 금리도 함께 올랐지만 최근 금융당국의 요구에 이런 흐름이 역행하고 있는 것이다.
애덤 스미스는 경제를 시장에 맡기면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해 가장 효율적인 길을 찾아간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최근 우리 경제를 이야기할 때 과연 시장의 자율성에 맡긴다는 말이 맞는 것인가 의문이 든다. 금융당국이 선두에 서서 예금·대출 금리를 조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에서는 이러한 당국의 모습에 '관치'라는 단어를 계속해서 언급한다. 시장의 자율성보다 당국이 예금·대출 금리 흐름에 끼어들어 혼선을 야기한다는 의미이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7월부터 각 은행의 예대 금리차를 전국은행연합회 홈페이지에서 매달 공시하도록 했다. 예대 금리차 공시 제도 실행을 통해 사실상 은행들이 예금 금리를 대출 금리만큼 올려 차이를 줄여야 한다는 입장을 전한 것이다.
이후 급격한 예금 금리 인상으로 시중자금이 은행에 쏠리는 부작용이 발생하자 은행권에 예금 금리 인상을 자제하라고 주문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11월 25일 "금융권의 과도한 자금확보 경쟁은 금융시장 안정에 교란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업권간 과당 경쟁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며 사실상 예금 금리를 낮추라고 압박했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김 위원장의 말 한마디에 5%까지 오르던 예금 금리는 '뚝'하고 멈췄다.
그러자 이번엔 대출 금리는 끝을 모르고 올라가는데 예금 금리만 내려간다는 비판이 나왔다. 금융 당국은 바로 대출 금리 추이를 매주 점검하며 금리 인하 압박에 나섰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 10일 임원 회의에서 "금리 상승기에 은행이 시장 금리 수준, 차주 신용도 등에 비춰 대출 금리를 과도하게 올리는 일이 없도록 은행의 금리 산정·운영 실태를 지속적으로 점검·모니터링해달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 13일 기관 전용 사모펀드 운용사 대표들과의 간담회를 연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시장이 잘 작동하는 상황에서 금융당국이 개입하는 것은 극히 부적절하다는 입장이지만 시장에 과도한 쏠림이 있는 경우 개입이 충분히 필요하다"며 "은행이 작년 순이자 이익 등 규모에서 어느 정도 여력이 있기에 과도한 대출금리 상승으로 인한 가계와 기업의 부담이 큰 점을 개별 은행들이 살펴봐 달라"고 다시 한 번 은행권에 대출 금리 인하를 종용했다.
또 18일에는 "예금 금리와 대출 금리의 상승이 시장의 큰 변동성을 초래하는 부분이 있어 그런 점에 대해서 은행권과 정책적 방향과 공감대를 이뤘으면 한다"며 "여러 가지 시장 상황이나 방향성을 볼 때, 은행 입장에서는 예금 금리를 개별적 판단에 의해 올릴 때도 결국 대출 금리에 미치는 영향이 있어 이를 입체적으로 보면서 결정을 하실 것"이라고 대출 금리 인하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였다.
이 원장은 올해에만 3번 연속 은행권에 대출 금리 인하하라는 압박의 메시지를 보냈다. 이런 이 원장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은행들은 대출 금리 인하에 나섰다.
은행권 관계자는 "언제는 예대 금리차를 들며 예금 금리를 올리라고 압박하더니 이제는 예금 금리와 대출 금리를 내리라고 압박한다"며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러한 당국의 개입은 한국은행의 기준 금리와 예금·대출 금리가 거꾸로 가는 효과를 나았다. 기준 금리가 지난 11월 0.25%포인트 오른 데 이어 올해 1월 다시 0.25%포인트 올랐지만 예금·대출 금리는 모두 떨어지고 있다.
최근 금융권에서는 당국이 은행을 공공기관인 줄 안다는 날 선 비판까지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이러한 금융 당국의 과도한 개입은 시장 논리에 맞지 않는다"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금융당국이 시장의 자율 기능을 무시하고 금리 단속을 계속해서 이어 간다며 시장의 불확실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관치금융' 논란이 계속되는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금융당국은 그동안의 잦은 개입이 과연 소비자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원하는 결과는 얻지 못하고 오히려 금융시장 참여자들에게 혼란만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유진아 (gnyu4@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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