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엔데믹 라이프스타일
박찬은 2023. 1. 20. 14:13
‘소프트 라이프’를 위한 여섯 가지 삶의 형태
마침내 내게도 코로나19가 찾아왔다. 2020년 팬데믹의 발발부터 지금까지 잘 피해왔었지만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운명인 듯 2023년 새해 첫 날 나에게 바이러스가 침투했다. 오한과 몸살이 있는 듯하여 자가 키트 검사를 해보니 지난 3년간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던 선명한 두 줄이 그어졌다. 그리고 이튿날 아내에게서 증상이 발현되었다. 이내 만 세 살인 아이도 확진이 되었다.
정확히 1월1일부터 우리 가족 셋의 격리 생활이 시작됐다. 글로만, 말로만 읽고 듣던 코로나 격리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팬데믹이 아닌 엔데믹의 시작점에서 겪게 된 1주일의 자가 격리 라이프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나뿐만이 아닌 우리네 라이프스타일에서 무엇을 실천하고,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가에 대한 것들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필자를 포함한 모든 이들은 그간의 팬데믹 속에서 삶을 지속하기 위한 어떤 것들을 확신하게 되었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그것 중 일부가 일종의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로 자리잡아가고 있음에 틀림없다. 2023년을 기점으로 ‘부드러운 삶Soft Life’의 욕망이 점차 커지고 있다. 지금껏 많은 이들은 치열하게 삶을 꾸려왔다. 시쳇말로 출세를 위해, 돈을 위해, 성공을 위해 등등. 삶의 목표 자체를 삶 자체보다는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의 성공으로 설정하고 살아왔기에, 그 시간들은 상처 투성이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팬데믹 동안의 재택 근무, 사회적 거리두기 등이 만들어낸 비대면이라는 뉴노멀은 성공의 가치를 삶 자체로 다시 환원시키는 중요한 기폭제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시점에서 부드럽고 유연한 라이프스타일을 삶의 첫 번째 화두로 삼는 다양한 국가의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이 다시 대두된다. 익히 알고 있던 것일 수도 있지만 이제 함께 공유하고 싶은 훌륭한 라이프스타일 트렌드가 됐다는 것이 정확하겠다.
우리 주변에 한때 스칸드나비안 라이프스타일이 깊숙하게 침투한 적이 있었다. 실내 인테리어 디자인에도 북유럽 느낌의 디자인이 굉장히 강하게 대두됐고, 그 실내 분위기와 어울리는 삶의 방식도 인기를 얻었다. 가장 대표적인 게 덴마크의 ‘휘게(Hygge)’다. 따뜻한 모닥불 앞에서 뜨거운 핫초코 한 잔. 휘게 하면 그려지는 대표적 이미지다. 휘게는 삶의 환경을 아늑하고 편안하게 조성하자는 라이프스타일이다. 그래서 가족 및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요리하며, 좋은 책과 따뜻한 차 한 잔의 단순한 즐거움이 행복이라 믿는 방식이다.
필자도 휘게를 실천하려 해보았고, 지금도 그와 유사한 방식을 종종 구사하긴 한다. 그런데 꼭 휘게만이 정답일까? 그건 아니다. 우리가 벤치마킹하여 실제 삶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다양한 국가의 다양한 방식이 존재한다. 이 글에서는 우리가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한, 또 잘 알지 못했지만 지금이라도 한 번 내 삶 속으로 들여볼 만한 그런 다양한 삶의 추구를 제시하려 한다. 흥미로운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로써 말이다.
휘게에 이어 차용할 만한 삶의 유형은 잘 알려진 스웨덴 라이프스타일 ‘라곰(Lagom)’이다. 몇 년 전 라곰 라이프는 책으로도 출간되며 국내에 많이 전파된 라이프스타일이기도 하다. 휘게와 유사해보이지만 라곰은 약간의 차이를 띈다. 라곰은 말 그대로 ‘충분히’라는 의미를 지닌 용어다. 스웨덴 사람들은 절대적 완벽이나 방종을 추구하지 않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 그들은 일과 재미 사이에서 균형을 찾기를 원한다.
무조건적으로 일에만 매달리지 않고 삶 속에서 스스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과의 밸런스를 맞추고자 한다. 그러니까 삶에서 중요한 것, 즉 많은 이들이 그렇게 믿고 있는 가족과 보내는 시간과,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는 폭음하는 등의 행위 사이에 명확한 선을 긋는 방법. 이걸 알고 지내는 것이 바로 라곰 라이프의 실천인 셈이다. 팬데믹 기간의 억압이 일종의 방종으로 전환되는 시기에 어쩌면 라곰은 내 삶의 가치를 지속가능하게 해주는 역할을 해줄지도 모른다.
휘게, 라곰을 잇는 또 다른 북유럽 라이프스타일 키워드는 바로 ‘프릴루프트슬리브(Friluftsliv)’다. 이는 노르웨이에서 발현된 삶의 방식이다. 참 신기한 건 국경을 서로 맞대고 있는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에서 유사하지만 각기 다른 삶이 도출된다는 점이다. 이 프릴루프트슬리브는 최근 휘게의 새로운 대안으로써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라이프스타일 트렌드이기도 하다.
휘게가 가족 및 지인과 함께 하는 행위로 일정 부분 미시적 삶의 방식이었다면, 프릴루프트슬리브는 개인을 자연 및 타인과 연결하는 방법으로 구동한다. 그래서 노르웨이에서 도출된 이 트렌드는 야외에서 명상을 하며 마음을 챙기는 행위, 야외 활동을 즐기며 삶의 균형을 찾는 실천 등을 아우르며 이 속에서 건강을 찾고,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기능한다.
그래서 프릴루프트슬리브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바로 스트레스에 압도되지 않고 자연과 조화롭게 생활하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도 벌써 이런 삶의 행태를 실천해나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캠핑을 가고, 옆 사이트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도 이 삶의 방식이 적용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엔데믹과 함께 더 활성화되고 있는 야외 활동으로 짐작할 수 있듯, 이 트렌드는 우리 곁에서 꽤 오래 지속될 방식이기도 하다.
스코틀랜드를 통해 전파된 ‘쿠리(Coorie)’는 안락함과 따스함을 중시한다. 쿠리라는 단어 자체에는 ‘보금자리를 틀다’, ‘껴안다’ 등의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 마치 스코틀랜드의 전통적 생활 방식에서 상상할 수 있는, 포근한 러그(담요)를 휘감고 작고 아늑한 방에서 휴식하는 이미지 말이다. 그래서 친구 및 가족과 공유할 수 있는 작은 방, 즉 휴식을 취하고 편안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 및 공간이 쿠리의 핵심이 된다.
현대의 도시인은 일과로 인해 심신이 피로하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이른 아침 ‘미라클 모닝’과 같은 트렌드를 받아들이며 자신만의 시간을 갖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프릴루프트슬리브를 체화하여 야외에 자신의 공간을 꾸밀지도 모른다. 그것이 실제 방이든, 텐트든, 아지트라 불리는 곳이든 관계 없다.
그 작은 공간에서 함께 (각자의 방식으로) 휴식을 취할 수 있으면 된다. 그래서 내일 아침, 다시금 활기차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으면 그만이다. 이 탓에 쿠리는 우리들에게 휘게, 라곰, 프릴루프트슬리브 등에 비해 조금 더 현실적이다. 작년의 트렌드 중 하나였던 ‘러스틱 라이프’(세컨 하우스 등의 개념)가 쿠리와 연동되기도 때문이다.
북유럽을 돌아, 서유럽을 거쳐 이제는 남아프라키의 철학적 개념을 찾아 떠나볼 차례다. 여기에는 공동체와 공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우분투(Ubuntu)’가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일부, 스와질란드, 모잠비크 같은 남아프리카에서 사용되는 줄루어인 우분투는 ‘타인에 대한 인간애’를 의미한다. 이 우분투가 삶의 유형에 접목되면 서로에 대한 존중 및 사랑을 장려하는 삶의 방식으로 전환된다. 우분투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회 간의 관계에 더 나은 이해를 구축하기 위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우분투를 실천하기 위해 우리는 새로운 아이디어에 개방적이어야 하고, 타인의 의견에 관대해야 하며, 나를 비롯한 모두에게 친절해야만 한다. 마치 마이클 잭슨의 곡 ‘Heal the World’가 퍼트린 메시지처럼 말이다. 그간 필자로 표기되는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자신만의 영달을 위해 살아왔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에 대해 비난할 이유도 없다.
우리네 사회적 구조가, 시스템이 그렇게 살아가도록 규범지어왔기 때문이다. 프랑스 인문학자 미셸 푸코가 자신의 저서 『감시와 처벌』에서 우리네 시스템을 억압과 강요의 기제로 서술했던 것처럼 말이다. 각설하고 우분투는 그보다는 조금 더 이타적 배려를 하기를 권한다. 모든 것에 관용을 베풀며 살아갈 순 없다. 하지만 나보다 약자의 입장에서 사유하고 살아간다면 우리 세상은 조금 더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현대의 우리 삶에 차용해볼 만한 세계 각국의 라이프스타일 유형 중 마지막은 아시아의 한 형태다. 바로 일본에서 유래된 ‘이키가이(Ikigai)’다. 이 단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어떤 목적을 찾는 데 있어 필요한 아이디어와 그것에 대한 진정한 이유다. 내 삶의 목표가 무엇인가에 따라 그 이유는 다 다를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기에 이키가이는 균형을 중요시한다. 굳이 이르지 못할 목표를 위해 삶을 부정하고, 불평하며, 좌절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이키가이의 어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본어에서 ‘이키(iki)’는 생명을 뜻한다. ‘가이(gai)’는 가치를 의미한다. 그러니 이키가이는 ‘모든 삶은 가치가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일본인들은 각자 ‘삶의 목적’, ‘우리가 잘하는 것’, 동시에 ‘지역 사회에 의미 있는 것’을 의미하는 이키가이를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고 한다. 그래서 이키가이는 마치 태양을 향해 날아가는 이카루스의 욕망보다는 현재의 내가 가진 것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행복을 찾으라고 안내한다. 단, 삶의 가치를 찾기 위해 스스로의 노력과 성장이 필요함을 잊지 말라고도 전한다.
이상으로 여섯 가지의 라이프스타일 트렌드 키워드를 살펴보았다. 서로가 교집합을 형성하기도 하고, 각기 다른 특징을 지닌 용어들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현재의 삶 속에서 균형을 찾고, 행복을 성취하자는 공통분모를 내재하고 있다. 물론 이 여섯 가지의 유형이 대안적 라이프스타일이 될 수는 없다. 그러기엔 우리네 삶이 굉장히 복잡다단하기 때문이다. 휘게를 추구하면서 관계가 벌어질 수도 있고, 라곰 라이프에 실패할 수도 있으며, 성인군자처럼 우분투를 삶의 모토로 삼을 수도 없다.
매번 프릴루프트슬리브를 위해 밖으로만 나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이 여섯 개의 트렌드는 우리네 삶 속 행복과 의미를 찾는 데 도움이 될 삶의 방식 정도로 기능할 수 있다. 우리에게 덴마크 식 삶이 정답일 수 없듯, 노르웨이 식 라이프스타일이 오답일 수도 없다. 또한 트렌드라 무조건 좇을 필요는 없다. 또 좇다가 효과가 없다고 실망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이 여섯 가지 키워드 이외에도 삶의 방식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단지 이런 라이프스타일 트렌드가 우리를 안내하는 건, 어떻게 고단한 삶을 조금이나마 (각자의 만족도가 상이하겠지만) 행복하고 여유있게 만들 것인가 정도일 수밖에 없다.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밤을 뒤로 하면 필자는 1주일간의 자가격리에서 해제된다. 7일간 가족과 오롯이 집안에서만 생활하며 느낀 건, 다음 주부터의 일상 복귀 속에서 어떻게 하면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복귀와 함께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일거리가 몰려올 것이며, 신년 초에 가지지 못했던 만남이 성사될 것이기에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위 여섯 개의 삶의 유형을 조금씩 실천해 볼 작정이다. 가족과 함께 따스한 음악과 함께 차를 한 잔하고(휘게), 그래서 더 중요한 가족애를 생성하며(라곰), 모닥불을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캠핑을 가볼 것이고(프릴루프트슬리브와 쿠리), 나와 가족이 아닌 타자에 관심을 기울이며(우분투), 내 삶의 목적과 가치는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한 성찰(이키가이)를 해보려 한다.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건, 나도 당신도 모두 안다. 현대적 라이프 속에서 이걸 꾸준히 실천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닐 것이기에 그렇다. 하지만 해보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은 다르다. 실천과 경험은 라이프스타일을 발전적 방향으로 이끄는 데 가장 중요한 행위다. 그러니 한 번쯤 해보려 한다. 아니면 말고.
[글 이주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사진 픽사베이]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64호(23.1.24,31)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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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살아감에 있어 강함과 빠름만을 추구하는 시대는 지났다. 우리는 지난한 팬데믹의 시대를 헤쳐왔고, 이제 엔데믹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그런 만큼 부드럽고 유연한 삶의 방식, 소프트 라이프(Soft Life)를 추구하게 된 게 사실이다. 아니, 이게 현대적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다. 이를 위한 여섯 개의 키워드를 소개한다.
마침내 내게도 코로나19가 찾아왔다. 2020년 팬데믹의 발발부터 지금까지 잘 피해왔었지만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운명인 듯 2023년 새해 첫 날 나에게 바이러스가 침투했다. 오한과 몸살이 있는 듯하여 자가 키트 검사를 해보니 지난 3년간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던 선명한 두 줄이 그어졌다. 그리고 이튿날 아내에게서 증상이 발현되었다. 이내 만 세 살인 아이도 확진이 되었다.
정확히 1월1일부터 우리 가족 셋의 격리 생활이 시작됐다. 글로만, 말로만 읽고 듣던 코로나 격리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팬데믹이 아닌 엔데믹의 시작점에서 겪게 된 1주일의 자가 격리 라이프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나뿐만이 아닌 우리네 라이프스타일에서 무엇을 실천하고,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가에 대한 것들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필자를 포함한 모든 이들은 그간의 팬데믹 속에서 삶을 지속하기 위한 어떤 것들을 확신하게 되었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그것 중 일부가 일종의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로 자리잡아가고 있음에 틀림없다. 2023년을 기점으로 ‘부드러운 삶Soft Life’의 욕망이 점차 커지고 있다. 지금껏 많은 이들은 치열하게 삶을 꾸려왔다. 시쳇말로 출세를 위해, 돈을 위해, 성공을 위해 등등. 삶의 목표 자체를 삶 자체보다는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의 성공으로 설정하고 살아왔기에, 그 시간들은 상처 투성이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팬데믹 동안의 재택 근무, 사회적 거리두기 등이 만들어낸 비대면이라는 뉴노멀은 성공의 가치를 삶 자체로 다시 환원시키는 중요한 기폭제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시점에서 부드럽고 유연한 라이프스타일을 삶의 첫 번째 화두로 삼는 다양한 국가의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이 다시 대두된다. 익히 알고 있던 것일 수도 있지만 이제 함께 공유하고 싶은 훌륭한 라이프스타일 트렌드가 됐다는 것이 정확하겠다.
단순한 즐거움의 행복 '휘게Hygge'
우리 주변에 한때 스칸드나비안 라이프스타일이 깊숙하게 침투한 적이 있었다. 실내 인테리어 디자인에도 북유럽 느낌의 디자인이 굉장히 강하게 대두됐고, 그 실내 분위기와 어울리는 삶의 방식도 인기를 얻었다. 가장 대표적인 게 덴마크의 ‘휘게(Hygge)’다. 따뜻한 모닥불 앞에서 뜨거운 핫초코 한 잔. 휘게 하면 그려지는 대표적 이미지다. 휘게는 삶의 환경을 아늑하고 편안하게 조성하자는 라이프스타일이다. 그래서 가족 및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요리하며, 좋은 책과 따뜻한 차 한 잔의 단순한 즐거움이 행복이라 믿는 방식이다.
필자도 휘게를 실천하려 해보았고, 지금도 그와 유사한 방식을 종종 구사하긴 한다. 그런데 꼭 휘게만이 정답일까? 그건 아니다. 우리가 벤치마킹하여 실제 삶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다양한 국가의 다양한 방식이 존재한다. 이 글에서는 우리가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한, 또 잘 알지 못했지만 지금이라도 한 번 내 삶 속으로 들여볼 만한 그런 다양한 삶의 추구를 제시하려 한다. 흥미로운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로써 말이다.
일과 재미 사이의 균형 '라곰Lagom'
휘게에 이어 차용할 만한 삶의 유형은 잘 알려진 스웨덴 라이프스타일 ‘라곰(Lagom)’이다. 몇 년 전 라곰 라이프는 책으로도 출간되며 국내에 많이 전파된 라이프스타일이기도 하다. 휘게와 유사해보이지만 라곰은 약간의 차이를 띈다. 라곰은 말 그대로 ‘충분히’라는 의미를 지닌 용어다. 스웨덴 사람들은 절대적 완벽이나 방종을 추구하지 않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 그들은 일과 재미 사이에서 균형을 찾기를 원한다.
무조건적으로 일에만 매달리지 않고 삶 속에서 스스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과의 밸런스를 맞추고자 한다. 그러니까 삶에서 중요한 것, 즉 많은 이들이 그렇게 믿고 있는 가족과 보내는 시간과,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는 폭음하는 등의 행위 사이에 명확한 선을 긋는 방법. 이걸 알고 지내는 것이 바로 라곰 라이프의 실천인 셈이다. 팬데믹 기간의 억압이 일종의 방종으로 전환되는 시기에 어쩌면 라곰은 내 삶의 가치를 지속가능하게 해주는 역할을 해줄지도 모른다.
개인의 자연 및 타인과 연결 '프릴루프트슬리브Friluftsliv'
휘게, 라곰을 잇는 또 다른 북유럽 라이프스타일 키워드는 바로 ‘프릴루프트슬리브(Friluftsliv)’다. 이는 노르웨이에서 발현된 삶의 방식이다. 참 신기한 건 국경을 서로 맞대고 있는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에서 유사하지만 각기 다른 삶이 도출된다는 점이다. 이 프릴루프트슬리브는 최근 휘게의 새로운 대안으로써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라이프스타일 트렌드이기도 하다.
휘게가 가족 및 지인과 함께 하는 행위로 일정 부분 미시적 삶의 방식이었다면, 프릴루프트슬리브는 개인을 자연 및 타인과 연결하는 방법으로 구동한다. 그래서 노르웨이에서 도출된 이 트렌드는 야외에서 명상을 하며 마음을 챙기는 행위, 야외 활동을 즐기며 삶의 균형을 찾는 실천 등을 아우르며 이 속에서 건강을 찾고,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기능한다.
그래서 프릴루프트슬리브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바로 스트레스에 압도되지 않고 자연과 조화롭게 생활하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도 벌써 이런 삶의 행태를 실천해나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캠핑을 가고, 옆 사이트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도 이 삶의 방식이 적용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엔데믹과 함께 더 활성화되고 있는 야외 활동으로 짐작할 수 있듯, 이 트렌드는 우리 곁에서 꽤 오래 지속될 방식이기도 하다.
안락과 따스함 '쿠리Coorie'
스코틀랜드를 통해 전파된 ‘쿠리(Coorie)’는 안락함과 따스함을 중시한다. 쿠리라는 단어 자체에는 ‘보금자리를 틀다’, ‘껴안다’ 등의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 마치 스코틀랜드의 전통적 생활 방식에서 상상할 수 있는, 포근한 러그(담요)를 휘감고 작고 아늑한 방에서 휴식하는 이미지 말이다. 그래서 친구 및 가족과 공유할 수 있는 작은 방, 즉 휴식을 취하고 편안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 및 공간이 쿠리의 핵심이 된다.
현대의 도시인은 일과로 인해 심신이 피로하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이른 아침 ‘미라클 모닝’과 같은 트렌드를 받아들이며 자신만의 시간을 갖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프릴루프트슬리브를 체화하여 야외에 자신의 공간을 꾸밀지도 모른다. 그것이 실제 방이든, 텐트든, 아지트라 불리는 곳이든 관계 없다.
그 작은 공간에서 함께 (각자의 방식으로) 휴식을 취할 수 있으면 된다. 그래서 내일 아침, 다시금 활기차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으면 그만이다. 이 탓에 쿠리는 우리들에게 휘게, 라곰, 프릴루프트슬리브 등에 비해 조금 더 현실적이다. 작년의 트렌드 중 하나였던 ‘러스틱 라이프’(세컨 하우스 등의 개념)가 쿠리와 연동되기도 때문이다.
타인에 대한 인간애 '우분투Ubuntu'
북유럽을 돌아, 서유럽을 거쳐 이제는 남아프라키의 철학적 개념을 찾아 떠나볼 차례다. 여기에는 공동체와 공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우분투(Ubuntu)’가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일부, 스와질란드, 모잠비크 같은 남아프리카에서 사용되는 줄루어인 우분투는 ‘타인에 대한 인간애’를 의미한다. 이 우분투가 삶의 유형에 접목되면 서로에 대한 존중 및 사랑을 장려하는 삶의 방식으로 전환된다. 우분투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회 간의 관계에 더 나은 이해를 구축하기 위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우분투를 실천하기 위해 우리는 새로운 아이디어에 개방적이어야 하고, 타인의 의견에 관대해야 하며, 나를 비롯한 모두에게 친절해야만 한다. 마치 마이클 잭슨의 곡 ‘Heal the World’가 퍼트린 메시지처럼 말이다. 그간 필자로 표기되는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자신만의 영달을 위해 살아왔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에 대해 비난할 이유도 없다.
우리네 사회적 구조가, 시스템이 그렇게 살아가도록 규범지어왔기 때문이다. 프랑스 인문학자 미셸 푸코가 자신의 저서 『감시와 처벌』에서 우리네 시스템을 억압과 강요의 기제로 서술했던 것처럼 말이다. 각설하고 우분투는 그보다는 조금 더 이타적 배려를 하기를 권한다. 모든 것에 관용을 베풀며 살아갈 순 없다. 하지만 나보다 약자의 입장에서 사유하고 살아간다면 우리 세상은 조금 더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모든 삶은 가치 있다 '이키가이Ikigai'
현대의 우리 삶에 차용해볼 만한 세계 각국의 라이프스타일 유형 중 마지막은 아시아의 한 형태다. 바로 일본에서 유래된 ‘이키가이(Ikigai)’다. 이 단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어떤 목적을 찾는 데 있어 필요한 아이디어와 그것에 대한 진정한 이유다. 내 삶의 목표가 무엇인가에 따라 그 이유는 다 다를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기에 이키가이는 균형을 중요시한다. 굳이 이르지 못할 목표를 위해 삶을 부정하고, 불평하며, 좌절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이키가이의 어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본어에서 ‘이키(iki)’는 생명을 뜻한다. ‘가이(gai)’는 가치를 의미한다. 그러니 이키가이는 ‘모든 삶은 가치가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일본인들은 각자 ‘삶의 목적’, ‘우리가 잘하는 것’, 동시에 ‘지역 사회에 의미 있는 것’을 의미하는 이키가이를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고 한다. 그래서 이키가이는 마치 태양을 향해 날아가는 이카루스의 욕망보다는 현재의 내가 가진 것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행복을 찾으라고 안내한다. 단, 삶의 가치를 찾기 위해 스스로의 노력과 성장이 필요함을 잊지 말라고도 전한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삶 속에서 균형을 찾는 것
이상으로 여섯 가지의 라이프스타일 트렌드 키워드를 살펴보았다. 서로가 교집합을 형성하기도 하고, 각기 다른 특징을 지닌 용어들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현재의 삶 속에서 균형을 찾고, 행복을 성취하자는 공통분모를 내재하고 있다. 물론 이 여섯 가지의 유형이 대안적 라이프스타일이 될 수는 없다. 그러기엔 우리네 삶이 굉장히 복잡다단하기 때문이다. 휘게를 추구하면서 관계가 벌어질 수도 있고, 라곰 라이프에 실패할 수도 있으며, 성인군자처럼 우분투를 삶의 모토로 삼을 수도 없다.
매번 프릴루프트슬리브를 위해 밖으로만 나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이 여섯 개의 트렌드는 우리네 삶 속 행복과 의미를 찾는 데 도움이 될 삶의 방식 정도로 기능할 수 있다. 우리에게 덴마크 식 삶이 정답일 수 없듯, 노르웨이 식 라이프스타일이 오답일 수도 없다. 또한 트렌드라 무조건 좇을 필요는 없다. 또 좇다가 효과가 없다고 실망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이 여섯 가지 키워드 이외에도 삶의 방식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단지 이런 라이프스타일 트렌드가 우리를 안내하는 건, 어떻게 고단한 삶을 조금이나마 (각자의 만족도가 상이하겠지만) 행복하고 여유있게 만들 것인가 정도일 수밖에 없다.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밤을 뒤로 하면 필자는 1주일간의 자가격리에서 해제된다. 7일간 가족과 오롯이 집안에서만 생활하며 느낀 건, 다음 주부터의 일상 복귀 속에서 어떻게 하면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복귀와 함께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일거리가 몰려올 것이며, 신년 초에 가지지 못했던 만남이 성사될 것이기에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위 여섯 개의 삶의 유형을 조금씩 실천해 볼 작정이다. 가족과 함께 따스한 음악과 함께 차를 한 잔하고(휘게), 그래서 더 중요한 가족애를 생성하며(라곰), 모닥불을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캠핑을 가볼 것이고(프릴루프트슬리브와 쿠리), 나와 가족이 아닌 타자에 관심을 기울이며(우분투), 내 삶의 목적과 가치는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한 성찰(이키가이)를 해보려 한다.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건, 나도 당신도 모두 안다. 현대적 라이프 속에서 이걸 꾸준히 실천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닐 것이기에 그렇다. 하지만 해보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은 다르다. 실천과 경험은 라이프스타일을 발전적 방향으로 이끄는 데 가장 중요한 행위다. 그러니 한 번쯤 해보려 한다. 아니면 말고.
[글 이주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사진 픽사베이]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64호(23.1.24,31)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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