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석-문가영의 ‘사랑의 이해’, 그 씁쓸함, 혹은 반짝임에 대하여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김재동 객원기자] ‘극본 이서현·이현정, 연출 조영민’
가끔씩 제작진을 확인하게 되는 드라마가 있다. 개인적으로 JTBC 수목드라마 ‘사랑의 이해’가 그렇다.
대사와 내레이션은 중의적이면서 맛깔스럽고 연출은 섬세하다. 물론 대사를 곱씹게 하고, 연출을 되새기게 하는 이해력 높은 배우들의 연기도 빼놓을 수 없다.
18일 방송된 9회에선 양석현(오동민 분)의 결혼식이 그려졌다. 4년 사귄 여자를 차버리고 선 본 여자와 결혼하게 된 양석현이다. 앞서 양석현은 사랑은 하지만 현실적으로 많이 부족한 전 여친을 배려하는데 지친 내심을 밝힌 바 있다.
그런 양석현은 결혼식 당일 받은 “행복해!”라는 전 여친의 문자에 멘탈이 붕괴된다. 결혼 안하겠다고 땡깡부리던 양석현이지만 결국 새신부와 입장하게 된다.
그 모습을 보며 하상수(유연석 분)는 말한다. “결국 저렇게 할거면서.” 안수영(문가영 분)이 대꾸한다. “그러게요. 결국 할거면서.”
이들이 나란히 입맞춤한 ‘결국’이란 단어는 드라마속 사내연애 중인 하상수, 안수영, 박미경(금새록 분), 정종현(정가람 분) 네 젊은이들의 사랑얘기에도 중요한 키워드로 작동한다.
경찰로서의 밝은 내일을 꿈꾸던 정종현은 어려운 가정형편과 임용시험 탈락이란 현실의 벽에 부닥치면서 그 푸르름을 잃어간다. 행복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안수영과의 앞날이 점차 뿌얘진다. 안수영은 그를 위해 방을 내주고 제 꿈의 일부, 화분과 피아노로 꾸며진 베란다를 포기했다. 종현은 자신 때문에 안수영이 뭔가 포기하는게 너무 무겁다. 어머니 수술비를 감당하라고 내민 안수영의 돈봉투를 뿌리치지 못하는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비참해진다.
“우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요” 장담해 보지만 자신이 밀어내든 안수영이 날아가든 둘 사이가 결국 순탄치는 않으리란 예감에 휩싸인다.
박미경에게 하상수는 이상적인 남친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초조해진다. 신경 쓰이는 안수영은 정종현과 연애중인데 가슴 속 레이더는 언제나 안수영을 더듬는다. 하상수에게 선물해준 새 차가 자신의 집 주차장에서 먼지이불을 덮으면서 그 불안은 두께를 더해간다.
소경필(문태유 분)과의 과거 연애사가 하상수에게 알려진 사실을 알았을 때 박미경은 전전긍긍했다. 하지만 상수는 “괜찮아.”란 말로 담담히 반응했다. 미경은 그 담담함이 서운했다.
미경이 수영모의 부상 정도를 물었을 때 상수는 그 일을 비밀로 해달라 부탁했다. 말 전한 배은정(조인 분)의 입단속까지 시켰다는 미경의 말에는 “고맙다”고 대꾸한다. ‘선배가 왜?’란 의문은 소경필과의 연애사에 보였던 담담함과 맞물려 혐의를 증폭시킨다.
상수와 수영이 모두 전화를 받지 않던 밤, 미경은 확인이 필요했다. 택도 떼지 않은 새옷들을 담아 수영집을 방문한다. 은행의 복장 자율화에 맞춰 입을 옷을 선물한다는 명목을 세웠다. 다행히 수영은 혼자 들어오고. 집안에서 발견되는 종현의 흔적들은 미경을 안심시킨다.
하지만 그도 잠시 상수는 미경이 갖다준 차키를 끝내 거부한다. 미경은 이해할 수 없다. “500만원짜리 양복에, 새 차 같은 서프라이즈 선물, 내 마음에 비하면 하나도 안 과해. 돈 같은 건 운이라 생각해. 난 운좋게 돈이 있고 선배차는 낡았고 난 사줄 수 있는 것 뿐야. 그냥 좀 타주라. 내 마음이 거절당하는거 같아서 그래!” 그렇게 미경도 예감한다. ‘이 남자, 결국 내 마음을 거절할 것 같다!’
수영은 상수를 보며 좋았다. 상수의 데이트 신청은 달콤했고 설렜다. 하지만 보게 되었다. 그의 머뭇거림을. 잠시 잊었던 자격지심이 그를 밀어냈다. 그와는 결국 이렇게 될 일이니 시작 전에 접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 틈에 꿈을 응원해주고 싶은 청년 종현이 다가왔다. 죽은 동생처럼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그의 꿈은 지켜주고 싶었다. 그가 처한 현실의 어려움을 수영은 이미 겪어보았고 겪어내고 있다. 수영과 종현의 감정의 결은 달랐다. 종현은 그녀를 여자로 보고 있었다.
나를 선택하길 주저했던 하상수가 박미경과 잘되는 모양이다. 결국 끼리끼리인데 나를 선택한 종현의 마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종현의 사정 때문에 동거를 시작했고 키스도 하고 잠도 잤다. 그래도 설렘과 두근거림은 먼 발치의 하상수가 가져갔다.
고객의 부고를 받고 하상수와 동행한 조문길. 그날 수영은 많이 웃었다. 어설프게 물결을 피하다 결국 빠지고마는 모습으로, 번데기를 앞에 두고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으로 상수는 수영에게 속 후련한 웃음을 안겨줬다. 그런 그가 물었다. “행복하고 있어요?” 되물었다. “헤어질까요, 종현씨랑?”
그 종현은 여전히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있다. 우연히 종현모의 문자를 본 수영은 미경이 건넨 옷들을 팔아 종현 앞에 내민다. “그냥 생긴 돈예요. 원래 나한테 없던 돈. 누군가한테 쉬운 일이 우리한텐 어려운 게 화가 나요. 누군가한테 아무렇지도 않은 게 우리한테 절실한 것도 화가 나. 이건 내 화풀이예요.”
종현이 말했다. “괜찮겠어요? 내가 이 돈 받으면 나 또 미안해할 거고 우리 사이에 같은 일이 반복될 거예요.” 수영이 답했다. “결정은 종현씨가 해요.” 봉투가 사라진 빈 식탁을 보며 수영은 허탈해진다.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누군가에겐 불안했고 누군가에겐 간절했고 어떤 이들에겐 그저 덤덤해야 했던 그 계절이 공평하게 흩어져갔다. 그리고 무언가가 변하기 시작했다.”
9화에 등장한 상수의 내레이션이다. 정작 상수의 변화는 19일 방송된 10화에서 발견된다. 상수는 미경을 어머니 한정임(서정연 분)에게 인사시켰다.
상수로서 그 행위에 특별한 의미는 없다. 그냥 “그래야 될 때인 거 같아서.”다. 많이 좋아하냐는 질문엔 “편해. 같은 학교 나왔고 말 잘 통하고 모난 데가 없어. 그래서 부딪힐 일도 없고...” 그 대꾸를 들은 한정임의 소감은 “꼭 직장동료 칭찬하는 것 같네. 좋아하는 여자가 아니라!”다.
미경과의 스캔들을 들킨 소경필도 말한다. “왜 그렇게까지 아무렇지 않을 수 있지? 너 박미경 좋아하는 거 맞냐?”
맞을 리가. 미경부 박대성(박성근 분)과의 라운딩 후 저녁제안을 뿌리치고 첫 데이트 약속장소서 안수영을 기다릴 때 얼마나 설렜는데. 당시의 자신처럼 안수영이 멀어져가는 모습을 보면서는 얼마나 낙심했는데. 그런 안수영을 버스정류장까지 쫓아간 간절함은 뭔데.
안수영을 빙상장으로 이끌어 소녀처럼 천진하게 웃는 그 모습을 보며 확인한 운명이 있다.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노선도를 보며 수영은 말했었다. “사는 게 꼭 이거 같아서요. 동그라미.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결국 다시 원점. 같은 곳만 빙글빙글 도는 징그럽게 그 자리인 동그라미 같은 인생.”
그녀가 맞았다. 벗어나고 있다고 착각했지만 자신은 결국 ‘다시 안수영’일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안되겠어요”라는 말 끝에 길게 키스해오는 상수를 수영도 마주 안는다. 정종현과의 키스 때는 제 무릎 위에서 꽉 쥐었던 주먹이 스르르 풀려 상수를 마주 안아간다.
그래서 그렇게 두 사람의 연정은 성공할까? 동그라미는 안수영 표현 징그럽게 반복된다. 멀어지고 돌아오고. 노선이 바뀌었을 뿐 이들은 다시 멀어지고 돌아오기를 반복할 모양이다.
오버랩되는 서팀장(양조아 분)의 멘트. “젊음이 그래. 사랑이 꼭 영원할 것처럼 뻥이나 치고.. 그치만 지나고 보면 참 반짝였다 싶어!” 끝이 어찌 되든 이 네 사람, 반짝이는 순간을 살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zaitung@osen.co.kr
Copyright © OSE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