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권 적폐청산과 내로남불이 키운 '검찰국가'
[서평] 이춘재 기자/검찰국가의 탄생
文 정권의 좋은 칼이었던 윤석열 검찰
개혁 동력 꺼버린 조국의 내로남불
"진보언론, '형평성 딜레마'에 빠져"
[미디어오늘 김도연 기자]
문재인 정권의 검찰개혁은 왜 실패했을까. 지난 14일 출간한 '검찰국가의 탄생'은 이 질문에 답을 찾는 책이다.
저자인 이춘재 한겨레 기자는 '적폐청산'과 '내로남불'을 꼽는다. 문 정권은 진보와 중도는 물론 보수까지 대거 참여한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 성공으로 집권했다. 그럼에도 야당을 '국정운영의 동반자'가 아니라 '제거해야 할 정적'으로 간주했다.
文 정권의 좋은 칼이었던 윤석열 검찰
그런 문 정권에 윤석열 검사는 좋은 칼이었다. '국정원 댓글 수사'로 박근혜 정권에서 좌천된 윤석열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특검'에서 수사팀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고, 이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파격 승진했다.
박근혜 구속 뒤에도 '세월호 보고서 조작',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 '화이트 리스트 사건' 등 전 정권을 겨냥한 수사는 계속됐다. 서울중앙지검 검사 247명 가운데 35%인 87명이 적폐 수사에 투입되는 등 정권과 검찰은 칼을 휘두르는 데 여념 없었다. 검찰 요직은 특수부 검사로 채워졌고 문 정권은 검찰의 직접 수사 기능을 확대하며 지원했다.
칼에 맞은 누군가는 목숨을 끊었다. 2017년 11월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방해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변아무개 검사는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윤석열은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좌천된 피해자이자 사건 당사자였는데, 정권은 그에게 국정원 수사 지휘를 맡겼다.
이에 관해 “윤석열 등은 사건 당사자이기 때문에 이 사건 수사를 회피해야 한다”(금태섭 의원)는 지적이 제기됐으나 문 정권과 검찰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당시 민간인을 사찰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도 적폐 수사로 2018년 12월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언론 다수는 검찰 수사를 중계할 뿐 두 사람 죽음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과 삼성 이재용을 잡아넣은 검찰 기세는 하늘을 찔렀다. 칼끝은 블랙리스트와 재판거래 의혹이 불거진 사법부로 향했다.
당시 한동훈 서울중앙지검 3차장의 언론 플레이도 입길에 오르내렸는데, 사법농단으로 피고인석에 선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재판에서 한동훈을 겨냥해 “오늘 이 법정에서 심리하고 있는 이 사건이야말로 당시 수사 과정에서 어떤 언론이 '수사 과정이 실시간으로 중계 방송되고 있다'고 보도할 정도로 쉬지 않고 수사 상황이 보도되고 있었다”고 비판했다.
개혁 동력 꺼버린 조국의 내로남불
한편 조국으로 상징되는 '내로남불'은 문 정권의 무능을 드러냈고, 개혁 동력을 꺼뜨린 결정적 요인이 됐다. 조국은 민정수석 당시에도 실력 자질 논란을 부른 무능한 인사였다. 저자에 따르면 그가 민정수석으로 있는 동안 인사 검증 실패로 차관급 이상 내정자 12명이 낙마했고, 국회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대통령이 임명 강행한 고위공직자가 15명이나 됐다. 민정수석의 또 다른 핵심 업무인 공직 기강 관리에도 허점을 보여 '특감반 사태'가 일어났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강행했다. 그의 화려한 SNS 어록과 180도 배치되는 부도덕이 세상에 공개돼 조롱거리가 됐다. “조국은 인사청문회에서 '자녀 교육은 아내가 주로 챙겼다'고 발뺌했지만, 이후 재판을 통해 드러난 사실은 이와 전혀 달랐다. 그는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은 아버지일뿐더러 이를 위해 자신의 지위와 인맥을 스스럼없이 동원하는 등 누구보다 세속적인 가장이었다. 추상같은 말로 가득한 그의 '어록'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언론은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그의 과거 발언을 소환해서 비판했고, 시중에서는 '조적조'(조국의 적은 조국)라는 비아냥이 등장했다.”(P.129)
살아있는 권력 수사(살권수)를 명분으로 검찰은 문 정권 청와대를 조준했다. '울산 시장 선거 개입 의혹', '유재수 전 금융정책국장 감찰 무마 의혹',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월성 1호기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등 수사가 대표적이다. 보수진영은 살권수를 쌍수 들고 환영했지만 저자 생각은 다르다.
저자는 “전통적으로 검찰이 수사한 권력형 비리는 고위공직자의 뇌물 등 독직 사건이나 재벌의 정치 자금 제공과 같은 정경유착 사건이다. 하지만 윤석열 검찰의 '살권수'는 정권의 정치 행위를 겨냥했다”며 “국회를 비롯한 정치적 공간에서 '정치'를 통해 해결해야 할 사건에 사법적 잣대를 들이댄 것”이라고 비판했다.
부동산 욕망을 죄악시하면서도 청와대 참모 상당수가 2주택 이상 갖고 있던 모순에서 알 수 있듯, 문 정권은 임기 내내 '내로남불'에 발목 잡혔다. 86 운동권이 주축인 정권의 내로남불은 윤석열이 '뻔뻔한 정권에 당당히 맞선 검찰총장'이라는 이미지를 갖는 데 기여했고, 거칠고 무리한 검찰 수사를 '정당한 검찰권 행사'로 인식하게 했다는 게 저자 진단이다.
문재인 정권이 활짝 연 '검찰국가'는 핵심 요직에 검찰 출신 인사를 채워 넣으며 위태로운 5년의 항해를 시작했다. 저자는 “검찰정권은 검찰개혁의 실패가 낳은 부산물”이라며 “정치 경험과 국정에 대한 비전, 국가 경영에 관한 철학이 전혀 없는 검찰 내 사조직 집단이 개혁의 대오가 흐트러진 틈을 타 정치적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의 정권 장악 시나리오를 현실로 불러낸 것은 검찰개혁을 외치면서도 검찰의 달콤한 유혹과 단절하지 못한 '입진보'였다”고 꼬집었다.
“진보언론, '형평성 딜레마'에 빠져”
저자는 지난 2021년 1월 자사 법조 보도가 정권 편향적이라는 취재 기자들의 반발로 한겨레 사회부장에서 보직 사퇴했다. “'성역' 없이 비판의 칼날을 세웠던 한겨레는 조국 사태 이후 '권력'을 검증하고 비판하는 데 점점 무뎌지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저자는 자신의 책 말미에 이때 상황을 언급하며 “윤석열 사단과의 '내연'을 끊지 못한 진보언론은 조국 사태 때 '내분'을 맞는다”며 “조국을 타깃으로 한 검찰 수사는 '먼지털기식 수사', '별건 수사', '피의사실공표' 등 명백한 검찰권 남용이었지만, 진보언론은 윤 사단의 폭주를 강하게 비판하지 못했다. 앞서 적폐 수사 때 검찰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단절하지 못한 탓에 '형평성 딜레마'에 빠져버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또 “데스크의 뒤늦은 각성은 취재 기자들에게 '불순한 의도'로 의심 받았고, 검찰발 기사에 확인 취재를 요구하는 데스크에게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냐'는 조롱 섞인 항변이 돌아왔다”며 “문재인 정권 후반기, 진보언론은 윤석열 사단의 이른바 '살권수'(살아있는 권력 수사) 국면에서 존재감을 보이지 못했고, 보수언론의 '윤석열 대통령 만들기'를 속절없이 지켜봐야 했다”고 술회했다.
이와 같은 저자 생각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검찰의 공권력 행사는 분명한 언론 감시 대상이다. 그런 차원에서 문 정권 검찰의 적폐 수사 과정에서 검찰권 남용이 적지 않았으나 진보언론은 이를 제대로 감시하지 못했다. 정치적 견해가 다른 상대방을 악마화하고 적폐로 규정하는 한 우리사회에 '정치'는 없다는 점도 이 책이 주는 교훈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정적과 비판세력을 제거하는 데 열중인 오늘의 검찰도 한번 읽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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