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억 손해 목포케이블카 재시공…살면서 가장 잘한일”
보성정미소집 큰아들서 5000억 대형건설사 일궈
장교, 공무원, 대기업 임원…50대 늦깍이 창업
통큰 기부, 지역사회 공헌 ‘큰형님 리더십’ 주목
[헤럴드경제(광주)=황성철·서인주 기자] 공병장교, 공무원, 대기업 임원. 건설사 부사장. 그리고 모두가 만류한 50대 시니어 창업까지.
‘60년 토목외길’ 정인채 새천년종합건설 회장의 발자취는 한편의 드라마다. 남들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할 법한 인생도전을 연거푸 시도하며, 결국 샐리러맨 신화를 일궈냈다.
20일 광주의 집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70대 중반으로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젊음과 에너지를 뿜어냈다. 이틀전에는 장흥의 한 골프장에서 홀인원 보다 힘들다는 이글도 잡았다.
열정, 끈기, 도전.
동부건설 임원으로 일할 때 술과 관련된 일화는 유명하다. 막걸리 1잔에도 온몸이 붉게 변하며 취하던 그는 그룹사 통틀어 술이 가장 쎈 주당으로 이름을 날렸다. 술을 많이 마셨지만 자세는 흐트러지지 않았고 끝까지 상대방을 챙겼다. 대신 남모르게 화장실을 오갔고 집에 도착하면 커다란 세숫대야에 마신 술을 모두 토해냈다. 성공은 그냥 있는 것이 아니었다.
녹차 한잔을 놓고 1시간 가량 인터뷰를 나눴다. 인생 성장곡선을 비롯해 고금리, 고물가 등 지역경제에 대한 해법과 지역사회 공헌 등을 이야기했다. 특히 건설현장의 잘못된 관행과 그릇된 행위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높였다.
“대한민국 건설현장에서는 막무가내식 떼법과 업무방해 행위가 아직도 근절되지 않고 있습니다. 사업주 입장에서는 ‘울며 겨자먹기로’ 따르는 경우가 있었는데요, 지금이라도 바로 잡아야 해요”
그는 “건설 현장의 탈선은 공사지연, 부실시공, 건설단가 상승으로 어어져 결국 국민 피해로 이어진다” 며 “코로나 이후로 외국인근로자가 오도가도 못하면서 불법체류자가 됐는데 양성화 대책이 시급하다”고 제안했다.
이어 “고금리, 고물가, 투자심리 위축에 임금상승으로 건설 원가가 1년 사이에 40% 이상 올랐다. 여기에 젊은 사람들이 기술을 배우지 않으니 현장은 외국인 아니면 돌아가지 않는 상황” 이라며 “대한민국 목수가 사라지고 있다. 지금이라도 기술인력 양성을 위한 체계적인 시스템과 지원방안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현장에서 올라온 업무보고서를 보여줬다. 문서에는 굵은글씨로 기술인력 대부분이 외국인근로자로 채워져 있었다.
집무실 벽에는 사람키 만한 대한민국 지도가 펼쳐져 있다. 전국 곳곳의 공사현장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가장 주안점을 두는 것은 안전이다. 목포해상케이블카가 대표사례다.
지난 2019년 목포해상케이블카 개통을 앞두고 메인로프의 미세한 결함이 발견됐다. 감수를 맡은 프랑스 기술자가 “지금은 괜찮은데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보고했다.
곧바로 전면 재시공을 결정했다. 직간접 비용을 합하면 130억원 가까운 손실이다. 바로 프랑스와 로프 제조공장이 있는 스위스로 날아갔다. 그리고 담판을 지었다.
“사업을 접을 생각까지 했어요.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돈을 벌어도 번 게 아니고 항상 불안한 마음으로 살았을 겁니다. 100억이 넘는 큰 돈은 손해 봤지만 그때의 결정은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이라생각해요”
긴박했던 비하인드 이야기도 들려줬다.
케이블카는 거리, 바람, 설계, 운송 등 현지여건 때문에 기성품이 없다. 해외 운송비만 40억이 소요된다. 그래서 함부르크 수송 코스를 개발했고 세계에서 단 2대밖에 없는 거치기계를 목포로 빌려왔다. 제조사 대표를 설득해 1년 소요기간을 4개월로 단축했다. 개통식에 초대해 축사를 제안하는 아이디어가 통했다.
목포 유달산과 서남해 청정해역을 잇는 해상케이블카는 그렇게 태어났다.
국내 최장의 해상케이블카는 지난해 1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을 목포로 끌어 들였다. 천사대교 개통, 목포근대문화유산과 연계해 주말이면 2시간 넘게 줄을 서야 탈 정도로 인기다. 인근 식당 사장님들은 그가 방문할 때마다 서비스로 반찬 하나라도 더 내준다. 덕분에 장사가 잘되고 있다는 감사의 표시다. 김영록 전남지사도 나무목판에 해상케이블카를 조각한 감사패를 전하기도 했다.
“100대 관광상품에 선정된 목포해상케이블카를 타본 손님들은 지금까지 돈이 아깝다고 하신 분들이 없습니다. 국가정원인 순천정원박람회와 함께 목포, 신안, 해남 등 서남해 관관인프라 개발에 과감한 투자와 노력이 필요할 때입니다”
보성강이 흐르는 시골 깡촌. 전남 보성군 겸백이 그의 고향이다. 정미소집 큰아들은 이제 매출 5000억이 넘는 전국 100위권 건설사 CEO가 됐다. 모교인 전남대에서는 명예공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광주전남발전연구원 자문위원 회장, 전남대 동창회장, 재광보성향우회장, 대한토목학회 부회장 등 지역사회 발전에도 공헌하고 있다. 후배들에게 존경받는 큰 어른이 된 것이다.
나눔과 봉사에도 적극적이다.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꾸준히 지역사회 곳곳에 기부와 후원을 기어오고 있다. 10억원이 넘는 후원금이 지역대학과 적십자사, 북학이탈주민 학장금, 사랑의 열매로 보태졌다.
그는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쓰는 것이 더 중요하다. 가장 관심있는 분야가 지역인재 육성이다. 전남대 본관에 5억 기부탑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얼마인지는 모르겠다” 며 “봉사와 나눔은 부족하지만 꾸준히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말했다.
팔순이 가까운 나이지만 61년째 현역이다. 공무원 생활에 안주하지 않고 대기업 이직한 것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인생2막. 가족을 모두 데리고 서울에서 광주행 버스를 탔다. 모두가 미쳤다고 할 때 55세 늦깍이 창업에 도전했다. 늦은 나이에 기술자 출신이 사업을 차리면 망한다는 선입견도 있었다.
‘내가 무너지면 퇴직하는 중년들의 자존심도 무너진다’는 각오로 이 악물고 매달렸다.
다행히 선후배 모두 그를 인정했다. 그가 몸담았던 이기승 보성그룹 회장은 공식행사에서 그를 추켜 세웠다.
“인생 헛살지 않았구나. 가슴에 훈장을 단 각오로 남은 인생을 의미있게 살아보자”
오블리스 노블리제를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장 큰 자산은 인적네트워크다. 1년에 500여명에게 붓글씨 연하장을 보낸다. 먼저 전화하고 안부를 묻는다. 사람들은 감동하고 친형님처럼 그를 따른다. 실제로 그를 아는 사람들이 인사치레로 하는 말이 아니다. 신뢰를 가장 으뜸으로 삼고 있다. 거짓말 안하고 남을 이용하려 하지 않으면 인간관계는 오래갈 수 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지역청년들에 대한 조언도 곁들였다.
그는 “지역인구가 기하급수로 감소하고 생산성이 떨어지면서 중소도시는 어디나 다 암울하다. 그래도 지역에도 좋은기업이 있다” 면서 “당장 눈앞의 현실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청년들이 진득하게 성장가능성을 보고 미래를 함께 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책상 옆에 놓인 노란색 양란처럼 돌아가는 길에 마음 한켠이 따뜻해졌다.
si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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