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한국 롤모델로 삼았는데…尹대통령 ‘적’ 발언에 충격과 분노”
“대통령실 초기 대응 실패…고위급 특사 파견 등 적극 대응해야”
(시사저널=이혜영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적' 발언이 이란과의 외교 갈등으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통령실은 재차 "이란 측의 오해"라며 진화될 것이란 입장이지만, 전문가들은 다른 목소리를 낸다. 파장이 어디까지 확대될 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최고위급 특사 파견 등 한국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동지역 전문가인 이희수 성공회대 이슬람문화연구소 석좌교수는 20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의 '아랍에미리트(UAE) 적은 이란' 발언을 비판하며 이란 현지에서 강경 대응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란이 적? 답답하고 안일…초기 대응도 놓쳐"
이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화해 분위기가 고조되던 이란과 UAE에 오히려 적대관계를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왔다"며 "이란은 물론 UAE나 주변국들에게도 당황과 불편함을 주는 형국으로 와 버렸다"고 분석했다.
그는 "우리가 이란을 악당국가, 적으로 몰아가는 것은 미래 전략을 위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굉장히 안일한 정말 답답한 안타까운 발언이고, 수긍하기 어려운 내용"이라고 답답함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대통령실과 정부가 발언을 인정하지 않는 등 초기 대응에 실패해 상황이 더 꼬였다고 했다. 이 교수는 "초기 대응을 잘못했기 때문에 대통령이나 대통령실이 명시적으로 사과를 할 것 같지 않다"며 "정말 안타깝게 초기 대응을 놓쳐서 더 어려운 상황"이라고 짚었다.
대통령실과 외교부는 이번 발언과 관련해 이란 측에 공개적인 유감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윤 대통령의 스위스 방문을 수행 중인 대통령실 관계자는 19일(현지 시각) 취리히 현지 브리핑에서 양국이 나란히 자국 주재 대사를 초치하며 갈등이 커지고 있는 데 대해 "이란 측에서 다소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며 "(이란이) 오해를 했기 때문에 초점이 흐려지고 있다. 오해가 풀린다면 정상화가 빨리 이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격앙된 이란…韓, 8조원대 대금 갚아야 하는 상황서 겹악재
이 교수는 이란 현지 여론이 갈수록 격앙되는 등 반응이 심상치 않은 점도 우려했다. 그는 "(발언) 당사자인 이란 모든 매체가 정부 입장보다 훨씬 강경한 논조를 쏟아내고 있고, '호르무즈 해협에서 한국 선박의 통행 차단도 가능하다'는 주장을 할 정도 우리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 교수는 그러면서 그동안 한국을 선망했던 이란이기에 이번 발언으로 인한 충격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란에게 한국은 최고의 나라였다"며 "발전의 롤모델이자 한류가 가장 있기 있는 지역"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까지 우리나라 어떤 지도자도 명시적으로 이란을 '아랍의 적'으로 표현한 적은 없었다. 최초의 일"이라며 "그래서 이란 국민들이 갖고 있는 당황함과 분노는 훨씬 크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제 제재 등으로 이란 경제가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이 이란에 갚아야 할 8조원 넘는 원유대금이 국내에 동결된 가운데 해당 발언이 터진 점도 악재라는 평가다.
이 교수는 "이란은 미국의 경제 제재, 코로나 이후 실업률로 청년층의 불만이 극에 달해 있어 그 돈(한국에 묶여 있는 8조원대 대금)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도 이란은 한국과의 관계를 절대 깨고 싶지는 않은 상황"이라며 "그런데 믿었던 한국 대통령이 명시적으로 '적'으로 묘사해서 훨씬 큰 충격인 것"이라고 부연했다.
"尹, 이란 생존 전략에 걸림돌 되는 상황 만들어"
'히잡 시위'와 이에 대한 강경 진압이 더 큰 반발과 국제사회 비판을 얻는 상황에 정권 유지 위협을 받고 있는 이란 정부로서는 이번 윤 대통령 발언이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고 이 교수는 분석했다.
그는 이란 정부가 처한 상황에 대해 "1979년 혁명정부 수립 이후 최대 규모의 시위가 4개월째 계속돼 정권 붕괴 위협에 있고 고립되고 있다"며 "그래서 이란이 불편했던 UAE와 관계를 개선하고 닫혔던 대사관도 다시 열며 화해 분위기로 나가는 굉장히 중요한 시점에 한국 대통령이 자신들을 '적'으로 묘사해 강경 대응과 분노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란에게 UAE는 "생존적 파트너"라며 "경제 제재로 인해 (UAE의) 두바이를 중심으로 모든 대외(활동이) 이뤄진다"며 "이란은 고립이 강화될수록 UAE에 대한 집착과 관계 개선이 절실한 시점에 생존 전략에 걸림돌이 되는 그런 상황을 (윤 대통령이) 만들어버린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한국이 최초 진출했던 중동 국가이자 가장 오랜 기간 외교관계를 갖고 있는 이란의 상징성과 중동 내에서 압도적인 '규모의 경제'를 갖춘 점 등을 감안해 적극적인 후속 조치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교수는 "지금 이 사태를 풀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한국-이란 관계에 가장 큰 현안인 8조6000억원 규모의 동결자금을 어떻게 적극적으로 돌려주는 노력을 하는가가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접경"이라며 "두 번째는 고위급 특사를 파견해서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노력, 동시에 비정치적인 공공외교나 민간 지원 확대 등을 통해 이란 사람들이 가시적으로 인정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끌어안는 시장 관리 전략, 민간적인 접촉 이런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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