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비아, 살다’ 이규현, “이 쓰레기 같은 친구, 테드!”

안진용 2023. 1. 20.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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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규현

"이 쓰레기 같은 친구를 어떻게 내 맛으로 표현할 지 고민했습니다."

배우 이규현은 내달 11일 개막하는 창작 뮤지컬 ‘실비아, 살다’(제작 공연제작소 작작)의 주인공 테드 휴즈 역을 맡은 소감을 이렇게 강렬하게 표현했다.

‘실비아, 살다’는 섬뜩하고도 잔혹한 스타일의 시를 통해 여성으로서 가지는 격정을 솔직한 글쓰기로 풀어냈지만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 미국의 시인이자 소설가 실비아 플라스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리고 테드 휴즈는 실비아의 남편이다.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실비아의 삶에 테드는 큰 파장을 일으키는 인물이다. 테드의 잘못이 도드라질수록 실비아의 이같은 선택은 합리화된다. 테드를 연기하는 이규현이 스스로 ‘이 쓰레기 같은 친구’라 규정한 이유다. 겨울 바람이 찬 이달 중순, 서울 대학로에서 이규현을 만났다.

"테드 휴즈 외에도 실비아의 아버지인 오토 플라스 역도 동시에 소화해요. 테드는 실비아와 행복한 시간을 보낼 때, 그의 아버지인 오토 플라스와 비슷한 말을 하며 위로하죠. 그런데 테드로 인해 그렇게 좋았던 순간들이 오히려 비극으로 마무리되죠. 남편 테드와 아버지 오토, 분명 다른 인물이지만 결국은 실비아에게 상처를 주는 가해자라는 측면에서는 같은 면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규현은 뮤지컬 참여 경험이 없다. 그동안 드라마 ‘유니콘’, ‘조선 정신과 의사 유세풍’, ‘고스트 닥터’ 등과 연극 ‘정조와 햄릿’에 참여했지만 뮤지컬은 생소한 장르다. 그래서 처음에는 출연 제안을 거절했다. 하지만 막상 대본을 읽어본 후에는 직접 찾아가서 "하겠다"고 답했다.

"연출자가 직접 연락을 주셨지만 거절한 이유는, 제가 뮤지컬을 잘 모르기 때문이었어요. 평소에 많이 본 편도 아니어서 괜히 폐가 될 수도 있다는 걱정이 앞섰죠. 그런데 ‘글을 읽어보라’ 해서 대본을 본 후에는 곧바로 찾아뵈고 하기로 했어요. 실비아와 테드의 서사가 흥미로웠어요."

테드와 실비아, 둘 다 예술가다. 하지만 시대적 분위기 때문에 여성 예술가는 인정받기 어렵다. 결국 무게추는 테드에게 더 쏠린다. 하지만 테드의 마음 속에서도, 생득적 재능을 가진 실비아에게 느끼는 열등감이 낭중지추처럼 돌출된다. 이규현이 생각하는 테드는 어떤 인물일까?

"당연히 잘 되고 싶은 욕망을 가진 인물이에요. 다른 이들에게 위풍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싶을 것이고요. 하지만 생각과 같은 성원을 받기는 쉽지 않죠. 그런 테드에게 실비아는 일종의 뮤즈가 되지 않았을까요? 안정적인 생활과 수입이 담보되고, 또 같이 저녁을 보내며 예술을 논할 수 있는 대상이었던 거죠."

하지만 두 사람은 지향점이 달랐다. 테드 못지않게 실비아도 예술가로서 인정받기 원했다. 여기에 실비아는 아버지의 자살이라는 어릴 적 기억 때문에 불안정한 심리를 갖고 있다. 그 아픔을 테드를 통해 달랬기에 테드가 외도를 저질렀을 때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고 만다.

"마음에 사랑이 넘칠 때는 서로를 보듬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시인으로서 예민하거나 해결되지 않는 사안으로 충돌됐을 때는 문제가 발생하죠. 과연 그런 마음을 품은 테드가 처음과 같은 모습대로 실비아를 케어할 수 있을까요? 결국 이런 상황이 둘을 지치게 만든 것 같아요."

배우 이규현

이 작품의 제목은 ‘실비아, 살다’다. 타이트롤은 실비아다. 하지만 수차례 자살을 결심하는 실비아의 마음에 가장 큰 소용돌이를 만드는 인물이 테드다. 테드가 없다면 실비아의 이야기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작폼 속 테드의 존재 가치가 분명하다는 의미다. 이규현이 그 서사에 매료돼 주저없이 이 작품을 선택했다.

"캐릭터의 크기가 고민됐다면 안 한다고 했을 거예요. 하지만 그건 중요치 않아요. 이 작품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에서 테드가 어떤 역할을 하는 지가 중요하죠. 테드를 통해 실비아가 어떻게 변화하고, 어떻게 그 이야기를 관객들께 전달할 수 있을 지를 고민했어요. 연기를 하면서 주연을 맡을 때도, 조·단역을 할 때도 있죠. 중요한 건, 그 안에서 ‘내가 어떻게 연기하고 있냐’ 아닐까요?"

이규현이 생각하는 ‘실비아, 살다’는 누구도 악인으로 만들지 않는 작품이다. 자살을 선택한 이도, 누군가가 자살 충동을 느끼게 만든 이도 각자의 사연이 있다. 그들 모두 가슴 깊은 곳에서 "살고 싶다"고 외치고 있는 셈이다. 이 작품을 통해 이규현이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세상을 살다가 지치고 힘겨울 때 생각나는 공연이길 바라요. 작품 속 넘버나 대사가 툭하고 생각나는 거죠. 결국 ‘살자’로 향하는 이야기이니까요. 그냥 길을 걷다가 ‘아, 나 저 공연 봤었지’라고 한번쯤 기억해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죠."

안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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