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바이오파운드리' 베타시설...박테리아 합성부터 대량생산까지 '원스톱'

이영애 기자 2023. 1. 20.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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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합성생물학연구센터가 구축 중인 바이오파운드리 베타시설의 모식도. 생명연 합성생물학연구센터 제공

대전 유성구 한국생명공학연구원(생명연)의 가장 안쪽 연구동에는 합성생물학연구센터가 있다. 지난 10일 방문한 이곳에서는 생물학과는 거리가 먼 반도체 연구소를 연상케 하는 자동화된 장비들이 제각기 분주하게 작업을 하고 있는 장면이 시선을 압도했다. 

"나노그램 수준의 적은 DNA를 증폭할 수 있는 유전자증폭(PCR) 장비, 수십 개의 시료를 한번에 분사해주는 장비, 세포에서 DNA를 자동으로 추출하는 장비들입니다. 이 장비들을 모두 연결하고 통합해 자동화 시스템을 갖추면 염증성 장질환 치료물질을 생산하는 박테리아를 만들어내 대량 생산까지 이곳에서 원스톱으로 진행됩니다."

늘어선 장비들 앞에서 만난 이대희 생명연 합성생물학연구센터장은 "이곳은 국내 최초의 '공공 바이오파운드리' 구축 사업을 위한 사전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베타시설"이라며 이같이 설명했다. 공공 바이오파운드리는 2028년 구축을 완료해 인프라가 부족한 국내 혁신 바이오기업들을 지원하는 게 목표다. 

● 원스톱 인공 생물체 공장 '바이오파운드리'로 합성생물학 구현

정부는 지난해 말 바이오 분야 핵심기술로 꼽히는 합성생물학 육성을 본격화하기 위한 '국가 합성생물학 이니셔티브'를 공개했다. 합성생물학은 생명과학에 공학적 기술 개념을 도입해 인공적으로 생명체의 구성 요소를 설계, 제작, 합성하는 기술 분야다. 유전자 설계도를 기반으로 생명체를 만들어 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메신저 리보핵산(mRNA) 백신 개발 속도를 단축하는 데 활용되면서 바이오분야 신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이 센터장은 "1980년대 중반 주목받던 생명공학 기술이 생물학적 관점으로 접근했다면 합성생물학은 공학적 관점으로 접근하는 개념"이라며 "마치 코딩을 하듯 AI나 빅데이터 분석을 활용해 DNA 설계도를 바꾸는 식"이라고 말했다.

세포 공장으로 불리는 바이오파운드리는 합성생물학을 구현하는 필수요소다. 생물학의 '바이오'와 반도체 산업에서 반도체 위탁생산을 전담하는 기업을 의미하는 '파운드리'를 합쳤다. 다품종 소량 산업인 바이오산업에서 중요한 자동화가 가능하다. 자동화를 통해 원료 물질을 빠르게 생산할 수 있다.

의학 분야 외에도 산업계는 이미 합성생물학을 활용하고 있다. 대체육 스타트업 '임파서블 푸드'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레그 헤모글로빈을 생산하도록 변형된 맥주 효모로 소고기 맛을 내는 대체육을 만들어낸다. 이 센터장은 "국내에서도 아미노산 생산기업이 유전자변형 박테리아로 생산성을 두 배 이상 높인 사례가 있다"며 "합성생물학이라는 아예 새로운 접근법을 통해 수십 년간의 연구개발 성과를 뛰어넘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대전시 유성구 생명연에 구축 중인 바이오파운드리의 일부 시설. 수백 개의 생물학 시료를 한 번에 분사하는 장치다. 대전=이영애 기자 yalee@donga.com

● 공공 바이오파운드리 구축에 쏠린 '눈'

바이오파운드리는 바이오산업의 연구개발 속도를 획기적으로 앞당길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문제는 개별 기업이 고가의 장비를 여럿 사들여 연결하고 자동화한 인프라를 갖추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 센터장은 "나노리터 수준의 적은 양의 DNA를 다루는 음파이용 분주장비 가격만 4억원에 달한다"며 "바이오 스타트업이 설비투자를 하기에는 쉽지 않아 공공 바이오파운드리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기업에서 자체 바이오파운드리를 운영하는 경우는 있지만 정부 출연연구기관이 바이오파운드리를 구축하는 것은 생명연이 처음이다. 바이오기업들에게 최적화된 시설을 제공하기 위해 지난해에는 수요조사도 진행했다. 국내에는 발효공학을 활용하는 기업이 많아 균주개발 자동화나 발효조건 최적화 등의 요청사항이 많았다.

바이오파운드리를 구축하기 위한 생명과학 외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날 방문한 연구실은 생명과학 연구실인지 컴퓨터공학 연구실인지 헷갈릴 정도로 자동화된 장비와 컴퓨터가 여러 대 설치돼 있었다. 이 센터장은 "반도체를 만드는 회사와 함께 자동화 실험 장비를 만들기도 하고 기존 실험장비에 머신러닝을 적용하거나 데이터를 저장·처리하는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면서도 "합성생물학 연구 진행 속도에 비해 바이오파운드리 연구는 기술 성숙도가 아직 부족하다"고 말했다.

비교적 후발주자인 한국은 향후 구축될 공공 바이오파운드리를 활용하는 데도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 센터장은 "환경오염 물질을 감지할 수 있는 박테리아를 개발 등 한국이 강점을 보이는 대사공학, 유전자회로 기술을 합성생물학에 적용해 선도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영애 기자 ya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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