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래층서 남편은 위층서 글을 쓰며 각자의 외로움 견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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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나서 가장 기뻤던 때는 그에게 원하는 서재를 만들어주던 때였다. 이어령 씨는 좋은 것을 다 주고 싶은 남편이었다."
문학평론가이자 국문학자인 강인숙(사진) 영인문학관장은 최근 출간한 에세이 '글로 지은 집'(열림원)에서 세상을 떠난 남편인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에 대한 기억을 이렇게 회고한다.
'글로 지은 집'은 이 전 장관의 투병과 함께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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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 골짜기 단칸방 신혼집서
평창동 주택까지‘주택 연대기’
“남편,끝내지못한 글 많아 조급
항암치료 거부하고 집필 갈망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함께한 세월 담을 책주제 고민”
“세상에 나서 가장 기뻤던 때는 그에게 원하는 서재를 만들어주던 때였다. 이어령 씨는 좋은 것을 다 주고 싶은 남편이었다.”
문학평론가이자 국문학자인 강인숙(사진) 영인문학관장은 최근 출간한 에세이 ‘글로 지은 집’(열림원)에서 세상을 떠난 남편인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에 대한 기억을 이렇게 회고한다. 책은 강 관장과 이 전 장관이 단칸방 신혼집에서 시작해 책을 마음껏 펼쳐놓고 공부할 수 있는 서재를 마련한 과정을 담은 ‘주택 연대기’다. 책 속 문장처럼 “한 신부가 ‘나만의 방’이 있는 집에 다다르는 이야기”이자 “한 여자가 새로운 가족과 만나 동화되는 이야기”다.
‘글로 지은 집’은 이 전 장관의 투병과 함께 시작됐다. 2015년 대장암에 걸린 이 전 장관은 허락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고 조급해졌다. 언제 떠날지 모르는데 쓰다가 끝내지 못한 글이 많았던 탓이다. 이에 그는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혼자 글 쓸 수 있는 시간을 갈망했다. 강 관장 역시 자연스럽게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부부가 함께한 세월을 정리할 책의 주제를 고민했다. 글 쓰는 부부로서 각자 서재가 있는 집을 갖기 위해 분투한 ‘이사의 역사’를 돌이키자 이야기가 술술 풀려나갔다. “구십이 되어가는 동갑내기 부부가 하나는 아래층에서 ‘집 이야기’를 쓰고, 하나는 위층에서 ‘한국인 이야기’를 쓰면서, 각기 자기 몫의 아픔과 외로움을 견뎠다.”
책은 신혼 시절 살던 성북동 골짜기 단칸방, 4·19 혁명과 5·16 군사쿠데타를 눈앞에서 지켜본 청파동·한강로 집, 부부의 마지막 쉼터인 평창동 주택을 차례로 조명한다. 부부가 거쳐 간 8곳의 집을 중심으로 직업인으로서의 삶과 가족의 일상이 교차한다. 세 아이를 낳고 키우며 ‘방이 아주 많은 큰 집을 갖고 싶다’는 마음을 품은 기억, 집을 드나들었던 문인들과의 추억, 대학교수로 일하며 겪은 여성 차별, 부부 곁을 먼저 떠나간 친척과 지인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부부는 정년퇴직을 한 2000년 무렵 두 사람이 살기엔 너무 커진 집을 허물고 그 자리에 문학관을 세우기로 했다. 평생 글 쓰고 강의해 번 돈을 쏟아붓고, 부족한 돈은 은행 대출로 메웠다. 2001년 첫 설립 후 2008년 부부의 평창동 집으로 옮겨온 영인문학관은 책 제목처럼 ‘글로 지은 집’이었던 셈이다. 이 전 장관이 마지막 순간에 그랬듯 강 관장 역시 이제 ‘더블 클릭’이 힘들어 컴퓨터를 하기 힘든 시기가 가까워졌다. 강 관장은 홀로 죽음을 기다리는 세상 모든 사람이 마주했을 두려움과 외로움을 생각하며 남편을 축복과 함께 떠나보낸다. “이어령 씨가 선택한 마지막 날의 고독했던 시간을 축수(祝手·두 손바닥을 마주 대고 빎)하고 싶어진다. 원하는 일을 하며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것은 모든 인간의 꿈이기 때문이다.”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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