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겨눈 민간단체 보조금 퇴직 공직자도 받아간다

공성윤 기자 2023. 1. 20.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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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고보조금 받는 민간단체 3만 곳의 정체
수령액 200위권에 헌정회·경우회·군인회 포함돼

(시사저널=공성윤 기자)

정부가 민간단체 보조금을 전면 손보겠다고 밝힌 가운데, 퇴직 공직자로 구성된 민간단체의 보조금도 감시망을 피하기 힘들 전망이다. 전직 국회의원과 경찰·군인 등의 모임은 매년 친목과 복지, 공익사업을 목적으로 수십억~수백억원의 국고보조금을 받고 있다. 모든 보조금 수령 단체를 통틀어 200위 안에 드는 규모다.

정부는 최근 민간단체의 국고보조금 수급 실태에 대해 대대적인 감사를 예고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27일 "사적 이익을 위해 보조금을 취하는 행태를 묵과할 수 없다"고 경고한 데 이어 대통령실이 근거 자료로 정당성을 부여했다. 대통령실은 일부 시민단체의 보조금 부정 수급 사례를 언급하며 "2016~22년 7년간 민간단체에 지급한 정부 보조금이 총 31조4000억원 규모"라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보조금을 받은 단체의 명단을 밝히지 않았다. 시사저널은 국고보조금 관리 시스템 'e나라도움'을 통해 2022년도 보조사업자 2만9651곳(중복 수령 제외)의 현황을 전수 수집해 들여다봤다. 여기에는 국고보조금을 받는 각종 시민단체부터 협회, 재단, 연맹, 복지시설 등이 전부 나열돼 있다. 대통령실이 보조금 부당 사용 단체로 지목한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와 4·16재단 등도 나온다.

서울 마포구 재향경우회, 서울 영등포구 헌정회, 서울 서초구 재향군인회 현판 사진 ⓒ시사저널 박은숙

헌정회, 보조금·사업수익 75% 회원 연금으로

보조사업자 중에는 법적으로 민간단체지만 특수한 위상을 가진 곳도 있다. 전직 국회의원으로 이뤄진 사단법인 대한민국헌정회가 그 예다. 이곳은 1991년 만들어진 헌정회 육성법에 따라 국고보조금을 받고 있다. 그 규모는 2022년 61억원이다. 국가대표가 합숙훈련을 하는 태릉선수촌 운영비(61억원)와 비슷한 수준이다. 전체 보조사업자 중 60억원 이상 보조금을 받은 단체는 173곳이다. 헌정회 보조금은 2018년 70억원에서 점차 줄어들었지만, 국회를 주무부처로 둔 민간단체 13곳 중에서는 여전히 가장 높다.

국민권익위원회는 2015년 "퇴직 공직자 단체에 일반 운영비로 포괄적 지원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권고했다. 그러나 헌정회는 2018년부터 줄곧 '단체 지원금 및 연로회원 지원금'이란 단일 명목으로 보조금을 받아오고 있다. 회원 연금은 1인당 월 120만원으로 알려져 있다. 한때 세금으로 전직 의원을 돕는 게 과도한 특혜라는 지적이 불거져 19대 의원부터는 연금 지급이 중단됐다. 하지만 18대 이전 의원들은 계속 연금을 받고 있다.

e나라도움에서 조회되는 최근 공시 내역에 따르면, 헌정회는 2021년 보조금(60억원) 및 사업수익(3억원) 63억원 중 47억원을 연금으로 썼다. 74.6%에 해당한다. 헌정회 관계자는 "연금 수령 회원들이 많이 별세하시고 현재 300명 정도 남아있다"며 "시간이 지나면 연금 지급액은 계속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했다. 그 외에 헌정회는 인건비와 운영비를 빼고 사업 관련 업무추진비 4억8000만원, 비품 등 자산 구입비 1000만원, 일반 업무추진비 900만원 등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사무처 관계자는 "법정 공시 내역 이상의 보조금 사용 내역은 정보공개법상 비공개 사항"이라고 했다.

그 전인 2019년 녹색당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헌정회의 보조금 사용 내역을 입수해 공개한 적이 있다. 여기에 따르면 헌정회는 2018년 연금 54억여원을 포함해 △경조사·생일축하·병문안·기념행사비 2억220만원 △식대 8800만원 △해외여행 7000만원 △친목단체 지원 2200만원 등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헌정회와 같이 퇴직 공직자가 결성해 만든 민간단체는 또 있다. 전직 경찰관의 친목과 복리 증진 목적으로 설립된 사단법인 대한민국재향경우회다. 퇴직 경찰관인 정회원만 135만 명에 이른다. 경우회는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법정단체다. 하지만 2020년 전까지 중앙회 차원에서 보조금을 받지 않았다.

대신 그동안 전국 18개 시·도회 및 255개 지회 중 일부가 경찰청으로부터 수탁한 사업('아동안전지킴이 민간경상보조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중앙회를 통해 보조금을 받아왔다. 그 총액은 2020년 384억원, 2021년 577억원, 2022년 82억원이다. 경찰청 소관 민간단체 중 보조금 규모가 가장 크다. 신경문 경우회 중앙회 사무총장은 시사저널에 "해당 보조금은 중앙회와 전혀 관련 없는 돈"이라며 "이 돈은 아동안전지킴이 사업을 수행하는 회원들의 통장에 입금된다"고 설명했다.

퇴역 군인의 친목단체인 대한민국재향군인회도 보조금 지급 대상이다. 군인회는 헌정회나 경우회와 달리 특수법인이자 공직유관단체다. 반면 군인회 산하의 각 지회는 민간단체로 분류된다. 군인회 지회는 2020년부터 매년 총 61억원의 보조금을 받고 있다. 지회 보조금은 때로 불미스러운 일에 휩싸이곤 했다. 지난해 1월에는 충남 당진시 군인회 임원이 보조금 부당 사용 의혹을 받아 사퇴했다. 앞서 부산진구 군인회는 2020년 4월 보조금 유용 의혹으로 경찰 압수수색을 받았다.

2021년 11월8일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헌정회를 방문해 회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공직자 단체 설립 근거 만드는 국회가 문제"

향후 퇴직 공직자 민간단체의 보조금 수령액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2020년 3월 20대 국회는 막바지에 이르러 지방행정동우회법을 통과시켰다. 전직 지자체 공무원의 모임인 지방행정동우회의 설립 근거가 되는 법안이다. 이후 각 지방의회는 해당 법안을 토대로 동우회 지원 조례안을 앞다퉈 내놓았다. 이미 2021년 울산·경남·강원 등 14개 지자체가 지방행정동우회에 예산 1억7000여만원을 책정했다.

그 외에 퇴직 공직자가 주축인 단체로는 대한민국재향소방동우회(소방관)와 대한민국재향교정동우회(교도관)가 있다. 소방동우회는 민간단체, 교정동우회는 공직유관단체다. 법인격은 서로 다르지만 둘 다 근거법상 보조금 수령이 가능하다. 국회 보좌관 출신의 서인석 AP입법교육원 원장은 "퇴직 공무원 단체의 설립 근거 법률을 국회가 무분별하게 만드는 게 문제"라며 "국고보조금은 공익성을 갖췄지만 재정적 한계에 부닥친 단체에 한해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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