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김경수·이낙연 역할론… ‘포스트 이재명’ 담론 실체

김성곤 이데일리 기자 2023. 1. 20.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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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스케줄 역산하면 민주당 최대 분수령은 8·9월”

● 원로 문희상이 꺼낸 교토삼굴 플랜B
● 박지원·김부겸·정세균 비대위원장 하마평
● ‘사면’ 김경수, 지도부 공백 시 親文 구심
● ‘라이벌’ 이낙연, 국내 복귀 시 역할론
● 李, 무혐의 자신하나 주도권 쥔 건 검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성남FC 후원금 의혹 사건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1월 10일 경기 성남시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위태롭다. '사법 리스크' 파문 여파다. 전당대회 출마 선언 때부터 불거진 우려다. 대선 경쟁자에 대한 정치 보복이라는 항변에도 혐의 입증을 자신하는 검찰의 칼끝은 매섭다. 최고조의 위험수위다. 민주당은 표면적으로는 일사불란한 단일 대오를 강조한다. 반면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플랜B 마련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핵심은 '이재명 체제'로 내년 4월 22대 총선 승리가 가능한지다. '적전 분열은 곧 공멸'이라는 인식 속에서 '현재까지는 이재명 체제가 최선'이라는 판단이 우세하다.

문제는 그 반대다. 이재명 체제로는 '총선 필패'라는 판단이 내려질 경우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의 크고 작은 실정에도 반사이익을 누리지 못했다. 미래 비전 제시라는 대안 세력으로서의 존재감마저 상실했다. 이 과정에서 '포스트 이재명' 담론이 분출했다. 이 대표의 낙마를 전제한다는 점에서 극도로 예민한 소재다. 수면 아래서는 '박지원 차출론, 김경수 역할론, 이낙연 복귀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 대표가 특유의 승부사 기질로 정면 돌파에 성공하리라는 관측도 없지 않다. '포스트 이재명' 담론의 실체를 짚어봤다.

위기의 이재명 체제… 교토삼굴의 등장

여야 정당의 대표 임기는 2년이다. 선거에서 이기면 임기를 보장받지만 지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되는 게 일반적이다. 민주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은 노무현 정부 시절 잦은 지도부 와해 속에 사실상 비대위 체제로 일관했다. 국민의힘 전신인 새누리당·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 역시 국정농단·탄핵사태 이후 연이은 선거 패배로 비대위라는 인공호흡기에 의존했다.

때로는 불투명한 선거 전망에 선제적 '비대위 전환'도 이뤄졌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둔 새누리당 '박근혜 비대위'와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둔 민주당의 '김종인 비대위'가 대표적이다. 박근혜 비대위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레임덕이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과반 승리를 거뒀다. 김종인 비대위 역시 국민의당 창당에 따른 호남 참패 속에서도 수도권 승리를 발판으로 원내 제1당의 드라마를 완성했다. 박근혜·문재인 전 대통령은 각각 총선 승리를 발판으로 대권을 거머쥐었다.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출범을 전후로 추미애→이해찬→이낙연→송영길 대표 체제를 거쳤다. 대선 패배 이후 윤호중·박지현 공동비대위원장 체제가 들어섰지만 대체로 안정적 지도체제를 유지했다. 최근 상황은 달라졌다. 이재명이라는 직전 대선후보가 당의 얼굴로 나섰지만 취임 6개월 만에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 성남FC 후원금 의혹(제3자 뇌물수수 혐의)을 시작으로 △대장동 의혹(직권남용·배임 혐의)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변호사비 대납 의혹(뇌물수수 혐의) △불법 대선자금 수수 의혹(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등 사법 리스크의 여파다.

이 대표의 어려운 처지는 여론조사에서 극명히 드러난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은 수도권 폭우 피해, 해외순방 논란, 비속어 파문 등 메가톤급 악재로 20%대 중반으로 추락했다가 최근 39~40%선을 보이고 있다.(리얼미터 조사 기준) 민주당 지지율은 요지부동이다. 핵심 지지층 결집에도 중도층으로 외연 확장은 언감생심이다. 텃밭 민심도 안심할 수 없다. 2022년 6월 지방선거에서 광주의 최종 투표율은 역대 최저인 37.7%를 기록할 정도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 원로인 문희상 전 국회의장이 민주당 신년인사회에서 '교토삼굴(狡兔三窟·교활한 토끼는 숨을 굴을 세 개 파놓는다)'을 언급한 게 눈길을 끌었다. 원론적 발언이지만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대비해 플랜B를 마련해야 한다는 뉘앙스로도 해석됐기 때문이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은 "민주당 지지율이 25% 미만으로 떨어지면서 국민의힘보다 10% 포인트 열세를 보인다면 '이재명 교체론'이 힘을 얻을 수밖에 없다"며 "총선 필패론에 직면하면 당장 수도권 지역구 의원들부터 바꾸라고 이야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이 대표의 생존은 사법 리스크 해소 여부에 달려 있다"면서도 "최측근인 정진상 전 당대표 정무조정실장과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1심 재판에서 실형을 받는다면 사법 리스크 해소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빅마우스' '친문적자' '최장수 총리'

사법 리스크에 직면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낙마할 경우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물망에 오르는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김경수 전 경남지사,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왼쪽 부터) [동아DB]
이에 '포스트 이재명' 다시 말해 플랜B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 대응은 당과 분리하고 전열을 새롭게 가다듬어 총선을 준비하자는 것이다. 공개적인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비명계(非明系) 이원욱 의원은 당 지지율 하락과 관련해 '이재명 탈당'이라는 금기어를 꺼내 들었다. 비주류 이상민 의원도 "플랜B, 플랜C가 필요하다는 걸 지도부가 명심하고 이재명 대표의 사법적 의혹에 당의 총력을 쏟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말에는 '정치 9단'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의 비대위원장 차출론이 등장했다. 풍부한 경륜을 바탕으로 이슈몰이와 판 읽기에 능한 박 전 원장에 대한 기대감이다. 물론 박 전 원장은 "지구가 멸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오늘 이재명 대표와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어야 한다"며 "플랜B(비대위원장)를 벌써 이야기하면 싸움에 지고 가는 것"이라 일축했다. 당 일각에서는 문희상 전 의장, 김부겸 전 총리, 정세균 전 총리도 비대위원장 후보로 거론한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특임교수는 "이재명 대표가 본인 스스로 내려오지 않는다면 플랜B의 현실화는 어렵다"고 전제하면서도 "정세균 전 총리, 이낙연 전 대표, 김경수 전 지사가 구심점이 되면 당의 혼란이 더 커질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분당이라는 최악의 위기를 피하기 위해 친명·비명이 타협점을 찾을 가능성이 높다. 문희상·박병석 전 의장을 앞세워 무색무취한 관리형 비대위를 선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돌아온 '친문적자' 김경수 전 경남지사의 역할론도 나온다. 김 전 지사는 2017년 19대 대선 당시 '드루킹 댓글 여론조작'으로 유죄가 확정됐다. 5월 형기 만료를 앞두고 윤석열 정부의 복권 없는 사면으로 풀려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 타이틀과 문재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을 지냈다는 점에서 친노·친문적자로서 정치적 상징성이 크다. 대권주자 반열에 오른 김 전 지사의 향후 행보는 일거수일투족이 관심사다. 당분간 정치 휴지기를 갖겠지만 이재명 체제가 흔들릴수록 구원등판론은 더 힘을 얻을 전망이다. 차재원 교수는 "복권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역할은 제한적"이라면서 "김 전 지사의 스타일을 고려하더라도 전면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문재인 정부 초대 국무총리를 지낸 이낙연 전 대표의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다. 지난해 6월 출국해 1년 일정으로 미국에 체류 중인 그는 윤 대통령의 대북 강경 기조를 비판하는 등 현안에 대한 언급을 늘려가고 있다. 현실적인 플랜B는 이 전 대표밖에 없다는 판단하에 정치 일선 복귀를 위한 몸풀기에 나섰다는 것이다.

이 전 대표는 87년 체제 이후 최장수 국무총리, 21대 총선 180석 대승을 이끈 차기 주자, 전남지사에 5선 중진을 거친 풍부한 경륜을 갖고 있다. 절제된 언어 사용으로 안정감이 강점이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은 "김경수 전 지사는 아무래도 '드루킹'이라는 데미지가 해소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연말에 구원투수가 나온다면 이낙연이다. 총선을 겨냥한 수도권의 호남표 결집을 위해 이낙연 비대위가 힘을 얻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결국 찻잔 속 태풍?

"이재명 이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 민주당 안팎에는 △비대위 전환 △김경수 역할론 △이낙연 복귀설 등이 찻잔 속 태풍이 그치고 말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현 단계 민주당 최고의 정치적 자산은 이 대표라는 것이다. 20대 대선에서 보여준 1614만여 표의 득표력과 지난해 8월 전대에서 기록한 80%에 육박하는 득표율이 상징적이다. 이들은 '포스트 이재명' 담론이 여권의 정치공학적 노림수에 놀아나는 자충수라고 본다. 정치적 흠집에도 이 대표는 여전히 윤석열 정부를 겨냥한 최적의 대항마라는 반론이다. 이 대표 본인이 위기 때마다 오뚝이처럼 일어서는 정치역정을 그려오기도 했다.

이 대표의 선택은 민주당 전통적 지지층의 복원으로 보인다. 그는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을 키워드로 통합과 단결을 호소했다. 전직 대통령 묘소 참배와 예방은 민주당 지도부의 관례였지만 검찰발 사법 리스크의 칼날을 고려하면 꽤나 의미심장하다. 다만 사법 리스크 이외에도 난관이 적지 않다. 22대 총선은 지역(자유민주연합·국민의당) 또는 이념(민주노동·통합진보당·정의당)을 기반으로 한 제3당이 사라진 가운데 '국민의힘 vs 민주당' 양당 체제로 치러진다. 민주당이 지난 총선에 이어 180석 압승의 영광을 재현하는 건 쉽지 않다. 게다가 윤 대통령이 승자독식 방지와 지역구도 타파를 목적으로 띄운 중대선거구제 개편이 현실화할 경우 민주당의 수도권 싹쓸이는 불가능하다.

일단 이 대표는 정면돌파를 택한 모양새다. "윤석열 정권의 망나니 칼춤을 좌시하지 않겠다"→"민생은 안중에도 없는 검찰 독재정권의 실체"→"뻔뻔하고, 대책 없고, 기가 막힌다는 뻔대기 정권" 등 반발 수위를 높이다가 1월 10일 성남FC 의혹과 관련해 검찰에 전격 출석했다. 이 대표는 "검찰 소환은 없는 죄를 조작하는 사법 쿠데타"라면서 "검찰공화국의 횡포를 이겨내고 당당하게 정치검찰에 맞서 이기겠다"고 했다.

이 대표는 무혐의 입증을 자신하지만 주도권을 쥔 쪽은 여전히 검찰이다. 검찰은 내년 총선 직전까지 이 대표를 괴롭힐 가능성이 크다. 수사의 폭과 시기를 여론의 향방과 정치권의 움직임에 따라 조정할 수 있다.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된 당직자의 직무를 정지한다"는 민주당 당헌 80조도 부담이다. 지난해 민주당 비대위가 당헌 개정을 통해 안전장치를 마련했지만 검찰의 기소가 되풀이될 때마다 적용하면 '방탄용'이라는 여론의 비판이 따라올 수 있어 부담이다. 민주당 처지에서는 플랜B 없이 이재명 체제가 총선을 앞두고 붕괴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는 셈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 대표 본인이 물러나지 않는다면 비대위 구성은 어렵다. 사법 리스크와 관련한 각종 1심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는 어정쩡한 상태의 혼란상이 지속될 것"이라면서 "이 대표의 거취는 결국 여론에 달렸다. 총선 스케줄을 역산하면 늦어도 8·9월경에 민주당은 최대 분수령을 맞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울러 "친명·비명 가릴 것 없이 이재명 체제로 총선이 어렵다는 판단이 나오면 이 대표의 백의종군을 압박하고 다른 대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동아 2월호 표지.

김성곤 이데일리 기자 skzero@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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