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슬보다 반짝이는 물방울 그림
물방울 그림을 보면 ‘김창열’이란 화백의 작품인지는 모를지라도, 우리나라 유명 작가의 작품이라는 것은 아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의 유명세는 2016년 제주시 한경면 저지문화예술지구에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이 개관한 것만으로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올해 1월 타계한 김 화백의 생전(生前) 일이니 그 얼마나 영광스럽고 대단한 일인가.
김창열 화백은 1929년 북한 맹산 에서 태어났으며, 해방 후 월남해 서울대학교 미대에서 그림을 공부했고 한국전쟁 때 1년 6개월을 제주도에서 살았다. 한국전쟁은 스무 살 김창열에게 고통을 주었지만, 제주도의 아름다운 자연은 그의 마음을 치유했다. 김창열이 제주를 ‘제 2의 고향’이라고 부르고, 그의 작품 220점을 기꺼이 기증할 수 있는 연유이다.
1972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살롱전 ‘살롱 드 메’에서 그는 처음으로 ‘물방울 회화’, ‘밤의 행사(Event of Night)’를 공개했다. 1973년엔 놀 인터내셔널 프랑스에서 물방울 회화만을 모은 첫 프랑스 개인전을 개최하고 이에 ‘물방울 화가’로 명성을 얻게 되었다. 프랑스에서 먼저 이름을 알린 그는 한국에서는 1976년 갤러리 현대에서 처음 물방울 회화를 선보였다. 50년 넘게 물방울이라는 소재에 천착한 그는 생전 인터뷰에서 “초기 물방울 회화에서 물방울은 전쟁으로 인한 작가의 상실감과 정신적 고통을 극복하는 정화와 치유의 수단이었다”고 밝혔다.
1980년대는 캔버스가 아닌 거친 마대를 사용해 표면의 직물성을 강조하며 물방울을 극사실적으로 묘사하였고, 날것의 바탕과 그려진 물방울의 이질감이 강조되어 실제 물방울의 물질성은 사라지는 효과를 얻었다. 80년대 중반 이후엔 마대 자체를 여백으로 남긴 이전 작품과는 달리 한자의 획이나 색점, 색면 등을 연상시키는 ‘해체’ 연작을 통하여, 보다 직접적으로 구체적인 동양의 정서를 표현하였다.
1980년대 후반부터 한자를 물방울 회화에 도입한 ‘회귀’ 연작을 본격적으로 그리면서 천자문과 도덕경을 통해 철학의 핵심적 사상을 담아내려는 의지를 보였다. 1990년대에 만발한 ‘회귀’연작은 돌과 유리, 모래, 무쇠, 나무, 물 등을 재료로 물방울 회화를 설치미술과 확장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다양한 색상을 캔버스에 도입하여 또 다른 시도를 하며 붓을 놓지 않았다.
50년 넘게 물방울이라는 소재에 천착한 그는 “물방울을 그리는 행위는 모든 것을 물방울로 용해 시키고, 투명하게 ‘무(無)’로 되돌려 보내기 위한 행위이다. 분노도 불안도 공포도 모든 것을 ‘허(虛)’로 돌릴 때 우리들은 평안과 평화를 체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은 하늘에서 보면 중정을 기준으로 거대한 큐브형 건물 8개가 둘러싸여 있는 독특한 구조로 홍재승 건축가에 의해 설계되었다. 이는 김창열이 추구한 회귀의 철학을 건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관람자의 동선 역신 ‘회(回)자형’을 따른다. 사각형 전시실을 한 바퀴 둘러보고, 로비에 있는 중정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 미술관 밖으로 나가는 동안 관람자는 김창열의 물방울 그림과 설치 작품을 만나고, 작가의 예술 세계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깊어가는 겨울의 정점에서 무엇을 할까 고민하는 당신이라면, 이런 제안을 해보고 싶다. 이번 겨울은 제주에서 김창열 작가의 마음 결을 보듬어보며 그의 작품을 음미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게 어떨까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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