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방방곡곡 국수맛집…귀성·귀경길에 떠나는 ‘누들로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녀노소 누구나 면 요리를 즐겨 먹었다. 우리나라에도 삼시 세끼 밥 대신 면을 먹겠다는 이가 많다. 맛은 물론이고 별다른 반찬 없이 속을 든든히 채울 수 있으니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전국 방방곡곡 개성 있는 면 요리를 찾아 ‘누들 로드’를 떠나보자.
◆인천 강화 메밀 칼싹두기= 인천 강화에서 즐겨 먹던 향토 음식이다. 소설가 박완서는 “울고 싶도록 청승 떨고 싶은 비 오는 날에 핑계를 대서라도” 먹고 싶은 음식으로 꼽았다. 박완서는 강화도에서 뱃길로 2㎞여 떨어진, 지금은 북녘땅이 된 옛 경기도 개풍군 출신이다.
칼싹두기는 칼국수와 비슷하다. 다른 것은 면이다. 찰기가 없는 메밀로 반죽을 빚으면 홍두깨로 얇게 밀기가 어려워 도톰하고 넓적하게 만든 후 칼로 싹둑싹둑 썰어 면을 뽑았다고 한다. 자연히 면발 길이와 두께가 들쭉날쭉해 매끈하고 긴 면발을 자랑하는 칼국수와 달리 부를 수밖에 없는 생김새다. 칼싹두기를 맛보려면 강화군 길상면에 있는 식당 ‘대선정’에 가면 된다. 깔끔한 바지락 육수에 배춧잎을 넣어 달콤하고 구수하다.
◆경기 용인 들기름 막국수=용인시 수지구 고기동에 있는 식당 ‘고기리막국수’ 사장이 개발한 국수다. 메밀면을 들기름·들깻가루·김가루에 비벼 먹는다. 2012년에 문을 연 곳으로 비교적 역사는 짧지만 명성은 남다르다. 가게에서 들기름 막국수를 먹으려면 평일·주말을 가리지 않고 짧게는 1시간 길게는 서너시간 기다려야 한다.
처음 국수를 받아 들면 생김새에 놀란다. 메밀면 위에 검정 김가루와 들깨가 수북이 쌓여있다. 이어 들기름 향기에 놀란다. 고소하면서 담백한 들기름 향기가 후각을 사로잡고 담백하면서도 짭조름한 김 맛이 입맛을 계속 당기게 한다. 직접 가서 맛보자니 긴 대기시간이 걱정이다. 그렇다면 밀키트 제품을 사 집에서 만들어 먹자. 2021년 오뚜기가 식당의 비법을 고스란히 담은 들기름 막국수 제품을 내놓았다. 지난해엔 식당의 또 다른 인기 메뉴인 ‘고기리 수육’도 출시했다.
◆강원 춘천 막국수=면하면 빼놓을 수 없는 요리가 막국수이고 막국수 하면 빠지지 않는 곳이 춘천이다. 막국수는 거창한 재료 없이 집에 있는 것들로 대충 만들어 먹었다고 해서 막국수라는 설, 갓 뽑은 면으로 말아먹었다고 해서 막국수라는 설 등 유래에 관한 이야기가 여럿이다. 막국수는 고추장을 기본으로 한 비빔막국수와 맑은 동치미 국물에 만 물막국수 등 두가지다. 김가루와 깨소금, 삶은 달걀, 집에 있는 김치 등을 고명으로 올려 먹는다. 춘천에는 직접 막국수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는 막국수체험박물관이 있다.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 장소인 평창군 봉평면도 막국수 맛으로 둘째가라면 서럽다.
강원도에는 이외에도 재밌는 국수가 많다. 정선 오일장에선 콧등치기국수를 맛볼 수 있다. 역시 메밀면인데 젓가락으로 집어 후루룩 들이키면 뻣뻣한 면발이 콧등을 친다고 해서 이름 붙었다. 강릉은 고추장을 풀어 얼큰하게 끓인 장칼국수가 유명하다. 김가루와 깨소금을 넉넉히 쳐서 매콤달콤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경북 안동 건진국수=면발을 끓는 물에 삶은 다음 곧바로 찬물에 담갔다가 건졌다고 해서 ‘건진’ 국수다. 건진 면은 따로 준비해둔 육수를 부어 먹는다.
건진국수는 안동 양반가 음식이다. 밀가루와 콩가루를 7대3으로 섞어서 제면하고 육수는 은어를 달인 장국을 썼다. 내륙 지방인 안동에서 신선한 바닷고기를 구하기 어려웠다. 은어는 여름이 제철인데 과거에 6월이 되면 “두 손으로 낙동강 물을 뜨면 은어가 잡혔다”고 할 만큼 흔했다. 은어는 민물고기지만 비린내가 없고 국물을 내면 맛이 담백하고 개운하다.
차갑게 씻은 국숫발에 뜨끈한 장국을 부으면 금세 국물이 미지근하게 식는데 여기에 얼음까지 동동 띄워냈다고. 어찌 보면 양반가 냉면이자 피서 음식이었던 셈이다. 요즘은 은어가 귀해진 탓에 멸치로 육수를 낸 건진국수 집도 꽤 있다.
◆경남 진주 진주냉면=슴슴하고 담백한 맛이 평양냉면 특징이라면 진주냉면은 화려하고 다채로운 맛이 매력이다. 쇠고기를 도톰하게 잘라 달걀물을 입혀 부친 육전이 고명으로 올라간다. 지단 한움큼, 삶은 달걀 반쪽, 절인 무, 채 썬 오이·배를 듬뿍 넣고 마지막으로 깨소금까지 팍팍 친다. 육수도 호사스럽다. 바다를 접한 고장답게 고기 육수에 해물 육수를 섞어 맛을 낸다. 생선이 주는 짭짤한 감칠맛이 깊다. 국물 간이 센 편인데 건더기는 살짝 싱겁다. 면과 고명을 한번에 집어 푸짐하게 씹다가 국물을 한술 떠먹으면 간이 딱 맞다.
진주냉면은 본래 기방에서 먹던 별식이었다. 술 마시고 쓰린 속을 달래줘야 했으니 해장에 좋은 해물을 썼고 고관대작을 대접해야 했으니 좋다는 것은 죄 넣어 조리한 것은 아닐까.
◆충북 옥천 생선국수=여름날 강변에서 잡은 잡어를 푹 끓인 다음 곱게 갈아 국물에 소면을 말아 먹던 것이 생선국수의 유래다. 갓 잡은 생선으로 요리해 비린 맛이 없다. 고춧가루를 풀어 국물 맛이 칼칼하다. 그래서 해장국으로도 인기다. 지역 사람들은 들깻가루를 뿌려 구수하게, 또는 산초가루를 넣어 톡 쏘는 향미를 더해 먹기도 한다.
생선국수를 먹으면서 빠뜨리면 안 되는 것이 지역 향토 음식인 도리뱅뱅이다. 피라미 같은 생선을 프라이팬에 뱅뱅 돌려놓고 튀긴 것으로 생선국수와 찰떡궁합이다.
지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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