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와 전남도의 ‘통합합의문’, 휴지조각 되었다
광주광역시와 전남도를 행정통합해 지역 발전을 도모해보자는 주장이 급속하게 사라지고 있다. 광주와 전남은 원래 한 뿌리였다는 점을 지역에서는 부정하지는 않으면서도, 지역을 합치자는 행정통합논의는 민선 8기에 접어들어 갈수록 힘을 잃고 있는 분위기이다.
20일 광주광역시와 전남도에 따르면, 강기정 광주시장과 김영록 전남지사는 지난 9일 광주전남연구원의 시·도 행정통합방안 연구용역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부울경(부산·울산·경남), 대구·경북의 행정통합이 물 건너간 상황에서 광주·전남의 행정통합은 당장 실익이 없다”며 “시·도는 경제공동체로서 시너지효과방안을 적극 모색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시·도는 이달말 최종 연구보고서를 제출받기로 했다.
이러한 시·도지사의 입장은 민선7기 분위기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지난 2020년 당시 이용섭 광주시장과 김영록 전남지사는 행정통합에 관한 추진일정까지 제시하며 통합방안을 찾겠다며 광주전남연구원에 연구용역을 의뢰했었다. 현재 시·도 행정통합은 사실상 폐기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번 보고회에서 시·도는 “논의중인 행정통합은 큰 틀에서 향후 유기적 관점에서 접근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했지만, 한 고위공직자는 “시·도가 각자도생(各自圖生)하자고 했다”고 상황을 전했다.
시·도행정통합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은 지난해 7월 민선8기가 시작되면서부터 나왔다. 통합을 적극 주창했던 이용섭 광주시장이 재선에 실패하고, 통합에 소극적이었던 김영록 전남지사가 재선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이 시장을 이은 강기정 시장이 취임하면서 “광주와 전남은 한 뿌리지만, 지금은 경제통합을 우선할 때”라고 했고, 김영록 지사는 “행정통합은 바람직하지 않고, (남해안권까지 포괄하는) 초광역권통합이 필요하다”고 밝혀 초점이 애매해졌다.
지난 2020년 11월 2일 이용섭 시장과 김영록 지사는 ‘광주·전남 행정통합 논의를 위한 합의문’에 서명했었다. 시·도지사는 당시 “두 지역 정치, 경제, 문화적 역량을 강화하고 지역 균형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행정 통합 논의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한다”며 추진 일정과 방식에 합의한 것이었다. 1단계로 광주전남연구원이 통합의 내용, 방법, 절차 등에 관한 연구 용역을 수행하고, 그 내용에는 경제공동체 구축 등 다양한 방안의 장·단점을 포함키로 했다. 용역이 완료되면 검토와 준비기간 6개월을 거쳐 시·도통합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하여 진행하기로 했다. 또한 통합단체장의 권한을 강화해 통합과 조정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도록 충분한 권한과 재정지원 확보 등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 제도 개선이 이뤄지도록 협력키로 했다.
그러나, 이러한 추진일정과 방식은 이제 휴지조각이 되고 있다. 시·도의 입장이 연구용역결과와 무관하게 행정통합을 추진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최근 서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행정통합을 강하게 주장해온 학계 등에서는 매우 실망스런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인구감소 등으로 지방소멸로 가는 상황에서 행정통합은 필연이라는 시각이다. 과거 지리적 개념에서 나눈 행정구역은 이제 지도상에만 있고, 의미가 없는 선(線)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지금은 90분이 통근권(通勤圈)으로 광주·전남에선 이 통근권을 벗어나는 곳은 전남 고흥·진도·신안군 세 곳에 불과하다. 중심도시를 놓고 중·소도시가 큰 통근권(메트로폴리탄)을 이룬다는 것이다. 거리가 중요하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이 뿐 아니라 행정구역별로 세분되다보니 물(수자원갈등), 쓰레기매립장·소각장(입지갈등), 공항입지 등 도시생활인프라와 관련한 갈등이 오히려 증폭된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지역개발분야를 집중해온 이정록 전남대명예교수(지리학)는 “정치권과 행정·의회 등 관(官)쪽 사람들이 ‘경제통합’을 운위하며 행정통합을 반대하는 기묘한 상황”이라며 “행정통합은 오히려 갈수록 필요해지므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말했다. 지역정치권의 논리나 단체장의 논리 등에 쉽게 좌우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다.
광주와 전남에서는 나주공동혁신도시(빛가람혁신도시)관리, 광주민간공항과 군공항의 전남이전, 나주고체연료소각장가동 등을 놓고 갈등을 보여왔다. 정부공모사업에도 시·도가 중복응모해 행정력을 낭비하는 등의 문제를 보여온 것도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도 소모적, 갈등적 관계는 청산돼야 한다는 것이다.
전남에서는 과거 여수, 여천시, 여천군이 통합(3려통합)해 세계엑스포를 유치하고 지역발전에 호기를 가져온 선례가 있다. 반면, 무안과 목포, 신안은 ‘무안반도통합’이 필요한데도 갈등을 지속하고 있다.
이처럼, 시·도 ‘통합의 기세’는 이제 ‘분리의 기세’로 바뀌었다. 이번 연구용역을 진행한 광주전남연구원의 향후 운영방안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시·도가 함께 출연한 연구기관인 광주전남연구원은 광주시연구원과 전남도연구원으로 다시 쪼개질 것으로 예상된다. 최초 1991년 전남발전연구원으로 출범했다가, 1995년 광주시가 출연하면서 광주전남발전연구원으로 확대됐다. 지난 2007년에는 광주발전연구원과 전남발전연구원으로 분리됐다가, 2015년 민선 6기 당시 다시 통합돼 지금에 이르렀다.
통합할 때는 “각기 출연한 광역자치단체에 매몰된 연구를 진행해 광주·전남 공동의 발전과제에는 등한시하는 점을 극복한다”는 등의 논리로 통합필요성을 제기했다. 지금은 강 시장이 “현행 운영방식을 고려해보아야 한다”고 말했고, 전남도의회 의원들은 “산업구조, 생활환경 등이 다른 광주와 전남의 정책과제를 동시에 수행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분리를 의도하는 목소리들이다. 조만간 분리를 위한 절차를 시작할 것으로 예상된다. 광주·전남의 행정통합론은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힘을 얻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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