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금리에 취한 ‘빚잔치’… 언제나 재앙으로 끝났다[북리뷰]

2023. 1. 20.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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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리의 역습 | 에드워드 챈슬러 지음 | 임상훈 옮김 | 위즈덤하우스
18세기 佛 ‘금리 2%’ 금융실험
투기광풍 일으키며 실패로 끝나
저금리 ‘이지머니’ 불평등 강화
자산 폭등 속 부자들만 큰 수익
거시 경제에도 심각한 혼란 초래
지난 15년간 기록적 양적완화
세계경제 붕괴 시한폭탄 ‘경고’
게티이미지뱅크

국가 부도 사태 이후 스물다섯 해 만에 금리의 힘이 무섭다는 걸 생생히 느끼는 중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밀어붙이는 고금리 쓰나미가 전 세계 경제를 휩쓰는 중이다. 주식과 부동산이 폭락하고 경기가 악화하면서 불황과 실업의 공포가 사람들을 움츠리게 만들고 있다.

“모든 신용 호황은 재앙으로 끝났다.” ‘금리의 역습’에서 영국 금융사 전문가 에드워드 챈슬러는 이야기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파멸의 공포에 사로잡힌 전 세계 정부는 양적 완화를 통해 통화를 대량으로 공급하고, 제로에 가까운 금리를 유지함으로써 억지로 경기를 부양했다. 그 결과, 부동산·주식 등 모든 종류의 자산가격이 비합리적으로 치솟고, 실물경제와 통화경제 사이에 극단적 괴리가 생겨났다. 역사상 이토록 많은 자산가격 거품이 동시에 부풀어 오른 적은 없었다.

챈슬러에 따르면, 저금리는 생산성 붕괴, 구매 불가능한 주택, 불평등의 심화, 시장 경쟁 소멸, 금융 취약성 등을 유발함으로써 거품 붕괴와 사회 혼란으로 이어진다. 18세기 스코틀랜드 출신의 존 로는 지폐를 도입하고 금리를 2%로 낮추어 프랑스 경제에 투기 광풍을 일으켰다. 저금리와 양적 완화라는 현대 중앙은행의 기본 수단을 탄생시킨 이 위대한 금융 실험은 재앙으로 끝났고, 시민 반란과 프랑스 대혁명으로 이어졌다.

모든 경제 활동은 시간의 변화에 따른 차이를 반영한다. 돈의 시간적 가치, 즉 시간의 가격인 이자는 이러한 활동을 조절한다. 돈의 수요공급에 따라 조절되는 금리는 투자와 저축을 결정하고, 정책을 수립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한다.

이 책은 금리의 탄생에서 현재에 이르는 긴 역사를 다룬다. 챈슬러는 태초에 대출과 이자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고대인들은 가축과 씨앗을 빌려주면서 이자를 받았다. 이자를 뜻하는 수메르어 낱말 ‘mas’는 원래 어린 염소 또는 양을 뜻했다. 5000년 전 수메르 문명이 남긴 점토판엔 가축을 빌려준 후 나중에 새끼를 붙여 돌려받는 이자 관련 기록이 자주 등장한다. 금리는 가난한 사람의 자립 기회를 제공한다. 이자는 동시에 부자가 가난한 이들을 착취하는 속성도 있다. 너무 높은 이율로 빌린 이들은 아무리 애써도 이를 갚을 수 없었기에 자기 몸을 팔 수밖에 없었다. 히브리인들이 이자를 ‘뱀에 물림’이란 뜻의 단어 ‘nescheck’로 표현한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경제는 이자의 성격을 상당 부분 바꾸었다. 16세기 영국에서 채무자는 주식 투자나 양모 직물을 매점하려고 돈을 빌리는 상인들로, 채권자는 안전 투자처를 모색하는 경제적으로 순진한 이들로 변했다. 금리는 중세 때처럼 단순히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반영하기보다 시장의 힘이 작용하는 실물경제의 복잡한 균형 상태를 반영했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자본가들은 다른 사람들의 돈을 이용해 돈을 벌고, 이에 대한 비용을 적게 낼수록 이익이 커진다. 저금리에 따른 이지 머니는 서민 고통을 덜어주기보다 불평등을 강화하는 경향이 있다. 부자들은 쉽게 돈을 빌려서 수익 좋은 곳에 투자하고, 신용이 모자라는 약자들은 어차피 돈을 빌리기 어려운 까닭이다. 비정상적으로 금리가 낮은 시기에 엄청난 재력가가 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저금리는 분배 정의에 자주 역행한다. 알뜰살뜰 저축한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수익을 받지 못하는 동안, 그들의 돈을 빌린 투기꾼들은 공짜에 가까운 비용으로 엄청난 부를 쌓기 때문이다. 16세기 말 신성로마제국의 은행가 야코프 푸거는 2% 이자율로 돈을 빌려 합스부르크 황제들에게 10% 이상의 이자율로 돈을 대부해 역사상 가장 부유한 사람이 됐다. 저금리는 서민 지갑에서 몰래 돈을 빼가고, 노인 등 연금생활자의 미래에서 자금을 훔쳐내 부자를 돕는 수단으로 작용하곤 한다. 복지 정책으로 해소할 문제를 경제 정책으로 해결하려 하면 부작용을 피할 수 없다.

인위적 저금리가 지속되면 이러한 사회적 역효과와 함께 심각한 거시경제적 혼란도 일어난다. 부동산 같은 생산성 낮은 분야에 대한 과도한 투자, 손쉬운 자금 조달로 인한 잦은 인수합병과 그에 따른 시장 독점, 돈놀이에 불과한 금융업이 인간 삶을 실제 개선하는 제조업을 압도하는 현상, 정상적 금리 환경에서는 파산했을 좀비기업의 존속, 현재 수익보다 미래 성장 가능성에 과도하게 내기를 거는 벤처 열풍, 거대한 국가 부채로 인한 세금 인상 및 공공투자 저하 등이 그 예다. 부적절한 저금리는 자본의 효율적 배분 과정을 왜곡하고 창조적 파괴를 억제한다. 이자는 자본의 효율성을 촉진하는 힘이고, 투자 실행 여부를 결정하는 장애물이기 때문이다.

챈슬러는 금융위기 이후 지난 15년 동안, 각국 중앙은행의 잘못된 정책 집행, 즉 제로금리와 기록적 양적 완화가 가져온 화려한 빚잔치는 세계 경제를 붕괴시킬 시한폭탄이나 마찬가지였다고 선언한다. 술을 들이붓다 보면 숙취가 약화하듯, 저금리는 현재의 고통을 미래에 떠넘겼을 뿐이란 뜻이다. 저자는 세계화 추세가 역전되고 중국 노동력이 감소하면서 물가상승이 빨라지고, 이를 막기 위해 고금리 시대가 오리라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지금 그 한복판에서 휘청이고 있다. 616쪽, 3만3000원.

장은수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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