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보증사고 터지고 나서야… HUG 사후약방문
2015년부터 발생한 보증사고
수십개 상품 한꺼번에 위험 진단
보증보험 문턱 높이고 있지만
이미 커져 있는 위험 줄일 수 있나
49조원. 2022년 11월까지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발급한 전세보증보험 금액이다. 보증금을 돌려줄 여력이 없는 집주인은 보험을 가입한 임대사업자 중 절반을 넘는다. 수십조원의 돈이 위험해지자 HUG는 최근에야 대비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HUG는 전세보증보험의 위험도를 별도로 확인하지 않았다.
전세보증금이 집값보다 커지는 '깡통 전세' 불안이 확산하자 안전 대비책에 눈길이 쏠렸다. 전세보증보험이다. 이 보험은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할 상황에 대비해 가입하는 상품이다.
일단 세입자에게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먼저 보증금을 주고(대위변제) 나중에 집주인에게 구상권을 청구해 돌려받는다. '깡통 전세' 위험이 커질수록 보증보험을 발급하는 HUG의 재정 안정성에도 우려가 더해질 수밖에 없다.
지나친 우려가 아니다. 걱정할 만한 이유가 있다. 박상혁 의원(더불어민주당)이 HUG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임대사업자의 전세보증보험 가입을 의무화한 2020년 8월 18일부터 2022년 11월까지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한 개인ㆍ법인사업자의 54.0%는 부채가 집값의 80.0%를 차지했다. 부채에는 주택담보대출과 전세보증금 등이 모두 포함돼 있다.
법원경매 전문기업 지지옥션의 자료를 보면, 2022년 12월 서울 아파트 경매 낙찰가율은 76.5%다. 부채율이 80%라면 아파트가 경매에 넘어갔다고 가정했을 때 집값은커녕 집을 담보로 잡은 빚도 상환하기 어렵다는 거다. '부채율 80%'는 그만큼 위험한 수치다.
그렇다면 의문이 생긴다. 지금까지 HUG는 전세보증보험의 위험을 측정하고 대비해왔던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HUG 관계자는 "(우리가) 취급하는 보증상품만 수십개에 달하기 때문에 별도로 전세보증보험의 위험성을 떼 내서 확인하진 않았다"며 "위험성은 모든 보증상품을 총합해서 판단한다"고 말했다.
현재 HUG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개인ㆍ기업 보증상품은 30여개에 달한다. 2013년 9월부터 발급됐던 전세보증보험은 운영 10년째를 맞은 최근까지 개별 위험 측정을 하지 않았다. 별도로 위험성을 파악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는 거다.
실제로 대위변제가 이뤄지기 시작한 2015년부터 2021년까지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가 HUG에 신고한 보증사고 및 대위변제 금액은 전체 보증보험 발급 규모의 1.50%를 넘지 않았다.
문제는 HUG는 위험이 커지는 순간에도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는 점이다. 2022년 들어 전세보증사고 규모는 발급 규모(49조9280억원) 대비 1.97%(9854억원)로 증가했고, 대위변제 금액 비중도 1.54%(7690억원)로 커졌다. 이마저도 11월 누적치여서 12월 통계까지 쌓이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그러자 HUG는 대응 방안을 내놨다. 1월 16일부터 선순위채권(주택담보대출 등)과 전세보증금을 합쳐 집값의 90%를 넘는 경우에는 보증 한도를 80%에서 60% 수준으로 조정하기로 했다. 이전부터 제기돼온 신축 빌라의 가격 조작 가능성도 최근에야 없앴다.
1월 31일 이후엔 한국감정평가사협회의 추천을 받은 40개 법인만 빌라의 가격을 평가할 수 있다. 신축 빌라 건축주와 감정평가사가 결탁해 감정가를 산정하던 위험이 이제야 사라진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같은 조치에도 보증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전세 주택은 숱하게 남아있다. 전세기간이 통상 2년이란 걸 감안하면 최근 '깡통 전세' 사고가 터진 곳 대부분은 2020년 12월께 전세 계약을 맺었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2020년 12월 이후 20 22년 7월이 될 때까지 전셋값이 지속해서 올랐다는 점이다. 전세 시세가 떨어지는 지금의 추세가 이어진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보증사고가 터졌을 때 부담해야 할 금액도 더 커진다. 이제야 문턱을 높인 HUG의 대책이 '사후약방문'이란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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