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선흘리 동백동산 - 겨울, 원시림의 침묵[정태겸의 풍경](40)

2023. 1. 20.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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곶자왈은 제주의 속살이다. 흘러내린 용암 위에서 자라난 숲이기도 하다. 지역 방언인 곶자왈은 두 개의 단어를 합친 말이다. ‘곶’은 산 아래 숲이 우거진 곳, ‘자왈’은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엉클어진 곳을 의미한다. ‘밀림’의 순수 제주어라고 봐도 되겠다.

동백동산이라는 이름처럼 이곳에는 동백나무가 많았다. 이제는 울창하게 뻗은 난대 수종의 가지가 경쟁하는 사이 동백나무가 볕을 덜 쬐게 됐다. 그 결과 동백꽃을 보기 어려워졌다. 그럼에도 숲 사이로 난 길을 걷다 보면 드문드문 동백꽃이 눈에 띈다.

이 숲에 아픈 기억도 남았다. 1948년 4월 3일의 대규모 학살. 미 군정과 극우 무장단체인 서북청년단은 ‘빨갱이 사냥’을 명목으로 학살을 자행했다. 봉기에 관여한 무장대는 무장대대로, 토벌대는 토벌대대로. 칼부림은 1만명의 죽음으로 이어졌다. 그때 그 죽음의 파도를 피해 사람들이 이 숲으로 숨어들었다. 학살은 무려 7년 7개월간 이어졌다. 오랜 시간 숨죽여 숲속에서 지낸 흔적이 지금도 이 숲의 곳곳에서 보인다. 기억의 파편을 목도하는 순간 가슴속에 묵직한 납덩이가 들어간 듯 먹먹해진다. 가만히 서서 그 자리를 본다. 겨울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지만, 숲은 침묵을 지킨다.

글·사진 정태겸 글 쓰고 사진 찍으며 여행하는 몽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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