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지키는 크루즈여행 가능할까

2023. 1. 20.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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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대화 7첩반상

다시 설입니다. 코로나19가 여전하고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도 해제되지 않았지만, 얼굴을 맞대기조차 어려웠던 지난 3년과 비교하면 이번 설은 그래도 오랜만에 가족, 친지들이 한자리에 모일 소중한 기회입니다. 독자 여러분은 설 제사상을 물리고 마주 앉아 무슨 이야기를 나눌 계획인가요. 아마 아이들은 오랜만에 어른들이 흰 봉투에 넣어줄 세뱃돈에 마음이 설레겠지요.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전 세대가 어울려 희망의 이야기꽃을 피우는 명절 연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주간경향 기자들이 각 분야에서 설 밥상에 올라올 법한 이야기 반찬을 차려봤습니다. 정치 분야에선 이재명 대표의 검찰수사와 여전히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수행능력에 대한 이야기 이외에 연초부터 급작스레 여의도를 휩쓸고 있는 선거구제 개편 논란을 다뤄봤습니다. 여기에 무인기 소동과 미사일 발사로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남북관계 전망도 빠질 수 없을 것 같고요. 이제 막 초입에 들어섰다는 불황과 경제위기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세대 문제도 빠지지 않을 이슈입니다. 일각에서 대안으로 제시하는 정년 연장은 급물살을 타고 있는 초고령화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요. 윤석열 정부가 야심 차게 내놓은 공공주택, ‘뉴홈’의 앞날은 어찌 될까요. 대통령이 바뀌니 전임 대통령의 복지정책도 뭇매를 맞고 있습니다. 현 정부의 건강보험 정책을 짚었습니다. 어느 곳 하나 녹록지 않지만, 주위가 어둡기만 한 건 아닙니다. 시니어 한류에 도전하는 노익장들, 기후위기 시대의 친환경 크루즈여행 이야기도 이번 설 연휴 특집에 담았습니다.

하나같이 정답을 내기 어려운 주제들입니다. 모쪼록 부족하나마 이야기 나누는 데 길잡이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주간경향이 정성껏 마련한 ‘설 대화 7첩반상’ 맛있게 드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5첩 친환경 여행
대기오염 주범이라는 따가운 눈총…업계 자정 노력

이탈리아 조선업체 핀칸티에리는 스위스 크루즈 선사 바이킹에 수소연료전지를 탑재한 신형 크루즈선 ‘바이킹 넵튠’을 인도했다. / 핀칸티에리 제공


코로나19의 긴 터널을 지나 여행업계가 기지개를 켜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일본과 베트남을 중심으로 해외여행 수요가 급증해 여행업계는 올해 본격적인 회복세를 보이리라고 기대하고 있다. 크루즈선을 이용한 해외여행도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닫혀 있던 한·일 바닷길이 지난해 12월 열렸다. 일본·대만을 경유하는 전세선 크루즈도 오는 6월 출항한다. 국제크루즈선사협회(CLIA)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2020~2021년 500만명 수준까지 떨어졌던 전 세계 크루즈 승객 수가 지난해부터 반등해 올해는 2800만명으로 예년 수준을 회복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후엔 2030년까지 연간 6.4% 상승해 4600만명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바다 위의 호텔에서 보내는 세계 일주는 분명 낭만적이다. 환경에는 그렇게 좋지 않다. 독일자연보호협회(NABU)가 2017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크루즈선의 경우 6000명 승선을 기준으로 하루 자동차 8만4000대 수준의 이산화탄소가 나온다. 자동차에 한 명이 탄다고 가정하면, 승객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크루즈선이 자동차의 14배 수준이다. 물론 항공여행에 비할 바는 아니다. 유럽환경청에 따르면 승객 1명이 항공기로 1㎞를 이동했을 때 배출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85g으로 버스(68g)의 4배, 기차(14g)의 20배 이상이다. 프랑스에서는 2021년 5월 고속철로 2시간 30분 이내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는 국내선 항공편 취항을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되기도 했다.

친환경 압박에 크루즈 업계도 변화 움직임 크루즈여행의 환경 훼손이 온실가스에서만 나오는 건 아니다. NABU 조사에 따르면 매일 150t의 중유(벙커C유)를 사용하는 중형 유람선이 내뿜는 미세먼지와 질소산화물, 이산화황의 양은 각각 자동차 100만대와 43만1000대, 376만대에 달한다. 항해할 때나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나 크루즈선은 24시간 운영되기 때문이다. 운송 수단일 뿐 아니라 숙박 시설이라 작은 도시가 쓰는 정도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크루즈선을 비롯해 중유를 사용하는 배들은 오염물질 배출이 많다. NABU 조사에 따르면 크루즈선 승객들이 배 위에서 호흡하는 배기가스의 양은 공해가 심한 주요 도로보다 20배 이상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윤경준 배재대 무역물류경영학과 교수는 “크루즈선은 선박 자체의 출력이 커서 항구에 정박했을 때 발전기를 돌리면서 배출되는 배기가스와 미세먼지가 문제가 된다”면서 “항만에 들어올 땐 최대한 속도를 줄여서 미세먼지 배출량을 줄이도록 하고 있지만 벙커C유라는 근본적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국제해사기구(IMO)가 2020년 도입한 환경규제에 따라 선사들은 의무적으로 선박 연료유의 황산화물 배출량을 3.5%에서 0.5% 이하로 줄여야 한다. 이 기준을 맞추려고 선사들은 배기가스 내 황산화물을 해수를 이용해 씻어내는 스크러버를 달고 있지만 사용한 해수를 바다로 배출하는 개방형의 경우 해수오염의 우려가 있어서 사용을 금지하는 나라가 많다.

이렇게 환경규제가 강화되면서 크루즈선을 운영하는 선사들은 에너지 소비를 절감하는 노력과 함께 장기적으로는 친환경 추진선으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 세계 2위의 크루즈 선사인 로얄캐리비안크루즈 한국총판 관계자는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완전히 없애는 걸 목표로, 선사에 속한 70% 이상의 크루즈선에 아황산가스를 98%까지 제거하는 정화 시스템을 갖췄다”면서 “2024년 1월부터 운항하는 아이콘호(Icon of the Seas)의 경우 액화천연가스(LNG) 추진과 함께 정박 시 육상 전력을 사용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춰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탄소 발자국을 줄이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한 크루즈 여행사 관계자는 “선사들은 최신 배가 취항하면 LNG 추진과 오염물질 정화 시설 등 친환경을 내세우면서 홍보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LNG는 탄소를 적게 함유해 공해 저감 장치나 필터 없이도 질소산화물과 황화합물이 크게 줄어든다.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20% 감소한다. 그래서 당장은 LNG 추진을 대안으로 삼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메탄올과 수소, 암모니아 같은 저탄소·무탄소 연료로 가야 한다. 세계 4위 조선사인 이탈리아의 핀칸티에리가 지난해 11월 수소연료전지를 장착한 신형 크루즈선을 스위스 크루즈업체 바이킹에 넘긴 사실이 이런 변화를 보여준다.

로얄캐리비안 인터내셔널이 운용하는 세계 최대 크루즈선인 ‘원더 오브 더 시즈’가 항해하고 있다. / 로얄캐리비안크루즈 제공


녹색해운 구축 본격화 녹색 바람은 크루즈선을 넘어 전체 해운 산업으로 확대되고 있다. 장기적으로 큰 배는 LNG 추진에서 수소 추진으로 발전하고, 작은 배는 전기 배터리나 암모니아 쪽으로 바뀔 것으로 전망된다. 이향숙 인천대 동북아물류대학원 교수는 “배는 보통 30년의 수명을 갖기 때문에 지금 있는 배는 스크러버나 촉매 변환기를 달아 오염물질 배출량을 줄이면서 버티고, 새로 수주하는 대형 선박은 LNG 추진선으로 만들면서 수소와 암모니아 추진선을 개발하는 방향으로 전환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배가 운항할 때뿐만 아니라 배가 정박해 있을 동안에도 무탄소·저탄소로 운영해야 한다. 이를 목표로 ‘녹색해운항로’ 논의가 지난 2년 사이 부상했다. 2021년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회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2026년까지 6개의 녹색항로를 구축하기로 한 ‘클라이드뱅크 선언’이 이뤄진 후 지난해 열린 COP27에서는 미국 주도의 그린쉬핑챌린지(Green Shipping Challenge)가 출범했다. 염정훈 기후솔루션 연구원은 “2020년 IMO가 국제해운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2050년까지 2008년 대비 50%까지 줄이기로 했지만, 이걸로는 파리협약에서 제시한 1.5℃ 목표 달성에 많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면서 “이런 배경에서 IMO와 별도로 녹색항로를 개발하자는 논의가 가속화됐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11월 그린쉬핑챌린지 참여를 선언하면서 미국 시애틀 타코마항과 부산항 사이에 녹색항로를 구축하기로 했다. 로스앤젤레스-상하이, 싱가포르-로테르담에 이은 세계 세 번째 녹색항로다. 해수부 해운정책과 관계자는 “무탄소·저탄소 선박 개발과 건조 능력의 확보, 운항 기술 개발과 함께 무탄소·저탄소로 벙커링(연료 주입)할 수 있는 기반 시설을 갖춘 일련의 사이클을 녹색해운이라고 한다”면서 “선사에서 메탄올 추진 선박을 건조해서 그냥 운영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양쪽 항만에서 이 선박을 수리하고 벙커링할 수 있는 제반시설을 갖춰야 한다”고 설명했다. 녹색항로를 구축한다는 건 두 항만 사이에 이런 인프라를 갖추겠다는 의미다. 이 관계자는 “올해 1월부터 미국과 녹색해운 관련 공동연구를 추진해 구체적인 내용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항만에서 온실가스와 대기오염 물질을 저감하려는 움직임은 크게 3방향으로 이뤄지고 있다. 하나는 대기오염물질 배출규제다. 정부는 2020년 9월부터 ‘항만대기질법’에 따라 부산항·인천항 등 국내 5대 항만을 배출규제해역(ECA·Emission Control Area)으로 설정해 연료에서의 황 함유량을 0.1% 이하로 규제하고 있다. 이 교수는 “처음 시행할 땐 선사들의 부담을 고려해 접안했을 때만 규제했는데 이젠 거의 100% 적용하고 있다”면서 “초미세먼지와 황산화물 등 오염물질을 줄이는 데 큰 효과를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하나는 선박저속운항 프로그램(VSR)이다. 항만 안에 들어올 때 속도를 줄이면 항만시설의 사용료를 감면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자발적 참여인데 선사의 부담이 적어 참여율이 최대 90%까지 높아졌다. 앞의 두 제도는 안착하는 모양새이지만 육상전원공급시설(AMP)을 사용하는 건 아직 개선해야 할 사항이 많다. 선박이 항만에 정박했을 때 화석연료로 발전하지 않고, AMP로 육상전력을 사용하면서 온실가스와 미세먼지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선박마다 규격이 다르고, 대형 선박의 경우 고압선이 필요하지만 갖추고 있지 않은 곳이 많다. 의무사항도 아니라 사실상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다. 이 교수는 “고압선을 더 많이 확보해 원래 취지대로 외항선 등 큰 배가 쓰도록 해야 효과적인데 지금은 작은 배, 관공선 위주로만 쓰고 있다”면서 “전기요금을 감면하는 혜택을 주거나 안 쓰면 페널티를 주는 식으로 제도를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정기 컨테이너선은 일주일에 한 번이나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오가니 AMP를 쓸 이유가 있지만, 부정기선인 크루즈 선박에 맞춰 AMP 설비를 갖추기는 아직 어렵다”면서 “결국 선박을 친환경적으로 바꾸는 게 제일 중요한데 친환경 추진체만 신경 쓸 게 아니라 촉매를 활용해 오염물질을 저감하는 기술을 연구·보급해 당장의 선박에서 나오는 오염물질을 줄이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탈탄소 대응 못 하면 해운강국 지위 흔들려 선박과 항만을 녹색으로 바꾸려는 노력은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추후엔 ‘탄소세’처럼 무역장벽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녹색항로 구축을 위한 각국의 움직임 속에는 차세대 연료와 표준을 선점하려는 의도도 있다. 세계 2위와 4위인 우리 조선업과 해운업이 녹색항로 구축에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다. 염정훈 연구원은 “지금은 IMO랑 보폭을 맞추는 정도인데 우리 조선업과 해운산업의 경쟁력을 유지·강화하려면 좀더 적극적으로 차세대 연료 기술과 공급망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제해운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규제하려는 흐름도 주시해야 한다. 유럽연합은 내년부터 탄소배출권 거래시장에 해운 분야도 포함시키기로 했다. 단계적으로 도입하는데 선사에 일정량의 배출권을 할당하고, 그보다 많이 배출하거나 적게 배출할 경우 시장에서 배출권을 거래할 수 있다. 배출권 거래시장에서 확보한 기금 일부를 선박 청정 연료에 지원해 중유와의 가격 차를 해소하고, 선박 에너지 효율 향상과 항구의 친환경 인프라 구축에 사용한다. 염 연구원은 “국제해운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에 가격이 매겨지면, 그만큼 우리나라 선박이 운항할 때 비용이 올라가게 된다”면서 “한국도 적극적으로 비슷한 제도를 도입해 세계적인 추세에 맞춰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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