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생폼사' 결혼식, "니가 내라 식사비"
[정희준 전 동아대 교수]
최근 온라인상 뜨거운 이슈 중 하나는 축의금 액수로 얼마가 적절하냐는 것이다. 직장 선배 결혼식에 축의금 10만원 내고 아내와 참석했다가 면박 받았다는 어느 직장인의 하소연에서 비롯된 듯하다. 장례식 때 유족에게 조의를 표하는 돈인 조의금과 달리 축의금은 경우에 따라 우리를 고민에 빠지게 한다.
축의금은 오랜 풍습인 품앗이의 일종이다. 과거 동네 사람들끼리 힘든 일을 서로 거들어주면서 품(일이나 수고)을 지고 갚았는데 이는 부족한 노동력을 해결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중 잔칫집이나 상가에 돈이나 물건을 보내 도와주는 부조(扶助)가 현금화 되며 지금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장례식 때의 조의금은 유족과의 친분관계나 나의 경제적 능력으로 판단하면 간단한데 유독 축의금만 복잡해지는 것은 결국 우리의 허례허식과 특히 그중에서도 밥값 때문이다.
축의금이 정녕 밥값이던가?
결혼식엔 돈이 많이 든다. 한 결혼정보회사 자료에 따르면 예식장 대관(200만~1000만원), 예단(789만원), 웨딩패키지(307만원), 결혼식 신랑·신부 상호 선물(717만원), 이바지(86만원), 혼수(1471만원), 신혼여행(379만원) 등의 기본비용만 따져도 4~5000만 원을 넘나든다. 그러나 막상 결혼준비에 들어가면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 비용이 숨 가쁘게 들어간다.
사진만 해도 본식사진, 야외사진, 스냅사진에 본식영상도 있고 부모님 한복, 형제자매 메이크업, 브라이덜샤워, 드레스샵 투어가 기다리고 있다. 이 번잡함을 해결하기 위해 플래너를 고용하기도 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모든 것을 합쳐도 당해내기 어려운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신혼집 마련이다. 평균 2억4000만원을 쓴다고 한다.
결혼준비에 있어서 모든 항목이 비용면에서 천차만별이다. 그 중에서 시대적 변화를 많이 겪으면서도 편차가 큰 것이 식사비이다. 우리 부모 세대엔 육개장에 떡, 과일이 일반적이었고 갈비탕이 나오면 대접 받는 기분이었다. 그러던 것이 1980년대 경제성장과 함께 소비사회로 진입하면서 뷔페가 등장했고 잠시 햄버거스테이크가 자리를 잡는 듯했으나 곧 스테이크가 이를 대체했다. 최근엔 전복이나 랍스터를 곁들인 스테이크 코스요리가 품격 있는 결혼식의 상징이 되었다. 여기에 5만원 안팎의 와인이 빠지면 쌓아놓은 품격 다 무너진다. 일반예식장 뷔페 평균 식대가 7만원이고 호텔의 경우 14만원이라는데 일부 특급호텔의 경우 30만원대까지 준비되어 있다. 식대 10만원에 500명이면 5000만원이다.
그래서 이은희 인하대 교수는 CBS와의 인터뷰에서 적어도 자기의 식대보다 좀 더 많은 축의금을 내든지, 10만원이 부담스러우면 5만원 내고 '노쇼'가 어떻겠냐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렇다면 결혼식 참석 전에 그 식장의 식사비를 미리 파악하고 가야 하나? 무엇보다 친구나 동료의 결혼을 축하하면서 5만원을 송금하고 나타나지 않는 것이 과연 축하의 범주에 해당하는 것일까? 지혜를 발휘하는 것은 좋으나 축하하고 감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자리에 이유야 어떻든 돈만 보내고 나타나지 않는 것이 과연 결혼식이라는 잔치에 온당한 것일까? 헤어진 옛 애인도 아닌데.
전형적인 '비용 떠넘기기'
온라인에서 축의금을 주제로 벌어지는 토론을 보면 결혼식의 의미가 많이 엇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결혼식을 흑자냐, 적자냐로 계산'하는 풍토가 스며들면서 '본전을 건지려는 사람들' 때문에 논란이 커졌다고 한다. 돈 쓸 곳은 많은데 밥값이 부담이 되니 그 밥값을 축하객들에게 전가하려는 모습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혼주인 부모와 신랑, 신부가 그들의 품격을 과시하기 위해, 또 '한 번 하는 결혼'이니까 사진과 드레스는 양보할 수도 없고, 또 좋은 혼수를 장만하기 위해서 돈도 아낄 수는 없다. 그러다보니 결국 그 부족분을 하객들의 축의금에서 벌충하려는 것 아닐까. 그 비싼 메뉴도 결국 자신들의 품격을 위해 결정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그 부담은 당연히 혼주가 져야 하는 것 아닐까?
결혼식은 잔치다. 잔치란 기쁜 일이 있어 음식을 차려 놓고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 즐기는 것이다. 그런데 집안에 경사가 있어 잔치를 벌여 사람들을 초대해놓고는, 잔치에 오는 하객들이 문턱을 넘을 때 입장료를 받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 뿐 아니라 그건 잔치도 아니다. 오시는 손님들을 좋은 음식으로 대접하고 싶다면 좋은 음식일수록, 즉 감사할수록 그 추가 부담은 혼주가 감당하는 게 상식이다. 축의금이나 부의금은 집안 큰일에 돈이 많이 들어갈 테니 보태라는 돈이지 빌려준 돈 갚는 게 아니다. 이제 축의금은 상부상조의 좋은 풍습에서 밥값으로 전락했다.
한국사회의 결혼식은 독특하면서도 왜곡된 방향으로 진화했다. 결혼식장이 이렇게 많이, 따로 있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주말이면 촘촘한 스케줄로 앞뒤로 빽빽하게 차있는 결혼식장은 사실상 결혼을 찍어내는 공장과 다를 바 없다. 결혼산업은 학원산업과 마찬가지로 욕망과 불안감을 넘나들며 자극하는 일종의 협박마케팅을 활용한다. 결국 "그 20분을 위해 몇 천만 원을 태웠다"는 사람이 여기저기서 나오는 것이다.
결혼산업의 작동 기제는 우리의 체면과 본전 생각
가장 큰 원인은 그 놈의 체면이다. 우리는 '폼생폼사'의 민족 아니던가. 체면 때문에 혼인을 위한 예식이 '돈 지르기'로 가게 된다. 과거에도 없지는 않았지만 결혼식장이 어디인가, 식사메뉴가 무엇인가로 나의 부를 드러내는 문화가 자리잡았다. 과시욕 때문인지 축의금 보다는 화환을 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지방 소도시에 예식장이 있어도 굳이 인근 광역시 예식장을 택해 결혼식을 올리고야 만다.
두 번째는 부모들의 고집이다. 사실 결혼식의 주체는 부모다. 그래서 청첩장도 부모 명의이다. 이들 입장에선 "내가 여태까지 쓴 돈이 얼마인데!"라는 생각에 결혼식을 안 할 수도, 작게 할 수도 없다. 결국 결혼식이 이제까지 부조금 뿌린 것 회수하는 시간이 되는 것이다. 최근 결혼식을 올리지 않거나 가까운 사람들만 불러 '작은 결혼식'을 하려는 신랑, 신부가 꽤 있음에도 제동이 걸리는 이유는 부모들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래도 인생에 한 번 뿐인데"라는 주변의, 특히 결혼업자들의 권유 때문에 고민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고작 30분짜리 행사 때문에 나중에 입지도 않을 한복과 드레스를 구입하고 세 번 다시 안 볼 앨범에 돈을 붓는다. 그렇지만 실제는 어떠할까. 우리는 살면서 결혼을 몇 번 할지 모른다. 온라인 커뮤니티 '이혼소송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모임'엔 "저희 집안 결혼한 부부가 네쌍인데 그 중 셋 이혼했어요"라는 사람도 있다.
'결혼식'보다 중요한 건 '결혼생활'
비판을 넘어 생산적 고민이 필요하긴 하다. 비용을 줄일 생각은 않고 폼은 있는 대로 잡으려 하면서 돈도 남기려니 문제가 된다. '폼생폼사'의 민족인 것까지는 좋은데 잔치집에 사람들을 초청해놓고는 "니가 내라 식사비"라며 축의금의 크기로 하객들을 품평하고 끝내 면박을 주는 풍경은 사라져야 한다. 이러한 모든 결혼식 악습을 MZ세대가 끝장내기를 바란다면 무리일까.
우선 일회성 비용을 줄이고 혼수비용의 비중을 높이는 것이 실제 결혼생활에 도움이 될 것이다. 써야 할 돈이 있다면 '결혼식' 보다는 '결혼생활'에 쓰자는 것이다. 그리고 요즘은 결혼식을 생략하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는데 이는 양가 부모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사실 부모 입장에선 결단(?)을 내려야 할 사안이다. 정답은 없다. 상의해서 결론을 내면 된다. 다만 큰 결혼식을 할 경우 축의금 액수로 축하의 크기를 판단을 하는 풍토만큼은 사라져야 한다. 잔치를 벌인다는 것은 감사한 마음으로 손님들을 대접하는 자리이지 돈을 버는 기회가 아니다.
[정희준 전 동아대 교수]
Copyright © 프레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尹대통령, 문 정부 비판하며 "우리나라 원전 추가 건설할 것"
- '폼생폼사' 결혼식, "니가 내라 식사비"
- "전장연으로 손실 4450억" 발생했다는 서울시, 교통약자의 '손실'은?
- 최연소 여성 뉴질랜드 총리 전격 사임…"결혼식 올리고 딸 첫 등교 함께"
- 인하대 성폭력·사망 사건 가해자, 살인죄는 적용되지 않았다
- 민주노총 압수수색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지키기'?
- 대통령 '말'로 덜컹거리는 한-이란 관계, 수습 바쁜 정부
- "춤춰봐라", "남친과 진도는?" 반복되는 면접 성차별, 왜?
- 159명 사망한 이태원 참사, 이 나라였다면 달랐다
- 김기현, '통합' 강조하면서도 "羅 한쪽 치우쳐", "安 타지 살던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