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는 차가운 길바닥에 누워 몇 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이상현 기자(shyun@pressian.com)]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지 석달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 유가족과 생존자들의 상처난 마음은 치유되지 않고 있다. 국무총리를 비롯해 장관, 국회의원들은 이들의 상처를 보듬어주기 보단 아픈 상처부위를 건드리고 헤집기 일쑤다. 일부에서는 "놀러 가서 그렇게 된 일을 왜 국가의 책임으로 돌리느냐"고 그만하라고 이들의 등을 떠민다. 그럼에도 이들은 여전히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길거리, 국회, 대통령실을 부유한다. 세상을 떠난 이들이 어떻게, 언제, 왜 죽어야만 했는지 알고 싶다는 이유가 이들의 등을 떠밀고 있다.
12일 이태원 참사 유가족 8명, 생존자 2명, 지역상인 1명은 국회 국정조사 2차 공청회에 참석해 참사에 대해 증언했다.이들의 이야기는 하나하나가 구구절절했다. <프레시안>에서는 이들의 발언 전문을 싣는다. 이들이 겪는 슬픔, 그리고 아픔을 공유하고자 하는 취지다. 아래는 참사 희생자 고 유채화 씨 유족 발언 전문.
※기사를 보기 전 유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아래의 진술서 전문은 10.29 이태원 참사 당시의 현장과 참사 경험 등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29살 고 유채화 동생입니다.
저희 언니는 정기후원하는 아프리카 아이의 편지를 받고 진심으로 기뻐하던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본인이 무리를 해서라도 입을 것, 먹을 것 아껴가며 부모님 환갑 선물을 준비하고 꿈에서도 가족을 걱정할 만큼 가족을 아끼고 사랑하던 집의 대들보였습니다.
성실하던 저희 언니는 낮에는 회사일과 밤에는 자기계발을 위해 스스로 공모전을 나가 학회에서 우수 논문상을 타기도 했습니다. 논문의 주제는 국민의 건강하고 행복한 일생을 위한 디자인이었습니다. 저희 언니는 항상 사회의 안녕과 정의로운 삶에 대해 고민하며 틈나는 대로 철학책을 통해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위해 고민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습니다.
저희 언니는 남자친구와 오랜만에 데이트를 갔다 참사를 당했습니다. 참사 현장에서 언니와 같이 있던 남자친구의 증언을 대신 읽겠습니다.
(아래는 고 유채화 씨 남자친구 증언 대독)
2022년 10월 29일 저녁 10시경 저와 채화는 이태원 메인 스트리트를 둘러보고 집에 가기 위해 해밀톤호텔 골목으로 들어섰습니다.
많은 인파에 불안한 마음이 들어 오른쪽 벽 너머 클럽이 있던 빈 공간으로 몸을 피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당도하기 전 위에서 사람들이 위에서 아래로 무너지면서 저와 채화는 사람들 사이에 끼이게 되었고 그 상태에서 약 1시간 정도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여기저기서 비명소리와 절규소리가 난무했습니다. 근육들이 기형적으로 휘는 느낌이 들고 정신을 잃어갈 때쯤 위에서 구급대원들이 보였습니다. 구급대원들이 사람을 한 명, 한 명 빼내 가면서 조금씩 압박이 풀렸고 채화와 저는 클럽 쪽으로 옮겨졌습니다.
채화는 바로 구급대원이 붙어서 CPR을 시행했습니다. 그러나 구급대원은 집중하지 못하였고 다른 쪽을 여기저기 둘러보면서 제대로 CPR을 하지 않았고 보다 못한 제가 채화를 CPR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고 구급대원들이 누워있는 사람들을 데리고 나가 아스팔트 위에 임시로 눕혀두었고 이후 근처 빈 상가와 건물로 옮겨졌습니다. 그때부터 상가 안쪽 접근이 제한되었습니다.
저는 건물 안에 여자친구가 있고 신원 증명을 해야 하니 같이 있겠다고 경찰에 사정을 말하였으나 경찰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저는 채화와 최대한 가까이 있기 위해 계속 상가 문 바로 앞에 기다렸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그제서야 상가 앞쪽에 임시본부와 구급의료소가 세워지고 많은 구급차, 소방대원들, 경찰들이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응급조치가 한시가 급한 사람들이 엄청 많았을 텐데 왜 바로 병원으로 옮기지 않고 구급차들이 대기하고만 시간을 오래 끌고 있었는지 저는 아직도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 후로 몇 시간을 기다렸는지 모르겠습니다. 부상자가 거의 다 병원에 보내진 시간은 체감상 약 2시간에서 3시간이 지난 새벽 2시경이었는데 그때까지도 상가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동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중간중간 현장에 계신 분에게 상가 안에 있는 사람들은 언제 병원으로 가냐 물었으나 계속 기다려야 한다 답할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순서대로 처리해서 그런지 여기 상가에 있는 사람들이 마지막이라 오래 걸릴 것 같다 말했습니다.
그러다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상가 안에 있는 사람들이 옮겨지기 시작했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내 여자친구가 여기 있으니 신원증명을 해야하니 같이 가게 해달라고 말했고 분명 그렇게 해준다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채화를 따라가겠다고 하자 다른 사람은 갈 수 없다고 길을 막았고 결국 저는 구급차를 함께 타지 못했습니다.
(대독 끝)
저희 언니는 CPR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차가운 길바닥에 누워 몇 시간을 병원에 이송되기를 기다렸습니다. 고통스러웠던 언니의 마지막 순간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픕니다.
미디어에 공개된 압사사고 영상은 머리속에 잊혀지지 않고 그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눈물이 멈추지 않습니다.
이러한 참사가 있을 줄 알고 죽으려고 이태원에 간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이태원은 매년 핼러윈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그전까지 정부는 안전을 위해 경찰을 배치했었고 이번 참사와 같은 사고는 없었습니다. 정부를 믿고 올해도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잘못일까요?
만약에 저희 언니가 그 참사의 현장에 있지 않더라도 저희 언니가 아닌 그 자리에 있던 또 다른 소중한 생명이 희생됐을거라 생각합니다.
이태원 참사 이후 희생자와 유가족을 향한 무차별적인 인격 모독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저는 심적으로 버티지 못할 것 같아 뉴스도 인터넷 댓글도 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2차 가해는 포털사이트와 SNS를 보지 않아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최근 업무적으로 만나오던 분께서 저에게 '나는 더 이상 TV를 믿지 않는다. 이태원 참사에 대해서 아느냐' 물었고 당시 저는 유가족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자 그분이 '일을 너무 크게 부풀려서 말하는 것 아니냐. 사고로 죽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다들 가만히 있지 않냐. 가만히 있는 유가족들도 많은데 왜 이렇게 나대는지 모르겠다' 등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하였고 저는 그 말에 큰 충격과 큰 트라우마를 받았습니다.
참사 당시 길바닥에서 차가운 언니의 시체를 끌어안고 있던 언니의 남자친구는 하루하루 고통 속에 살고 있고 참사의 트라우마로 인해 사람이 많은 곳에 가지 못합니다. 저는 참사 이후 정신건강이 많이 안 좋아져서 현재 심리상담과 정신과 치료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저희 유가족은 사회의 시끄러운 존재들이 아닙니다. 그냥 한 국민으로서 억울한 목소리를 내는 것뿐입니다.
네티즌과 정치인분들의 2차 가해. 왜 본인들은 이러한 사건을 당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저도 평화롭고 평범하기만 하던 저희 가족이 이러한 참사로 사랑하는 언니를 떠나보내게 될 줄 몰랐습니다.
자식 잃은 부모로서 형제 잃은 동생으로서 억울한 부분이 있다면 원인을 밝혀 지적하고 사과 받고 싶은 게 당연한 마음 아닐까요?
지금이라도 다시 바로잡지 않으면 본인의 가족이 참사의 희생자가 될 수 있습니다. 제발 2차 가해를 멈춰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유가족들이 피해보상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사과, 책임은 뒤로 하고 다급히 언론에 보상금을 지급했다 보도한 정부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습니다.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민들의 안녕과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그 자리에 서겠다고, 자신 있다고 한 표 달라고 외쳤던 정치인분들은 왜 상황해결은커녕 오히려 앞장서 2차 가해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책임자들의 무능함에서 오는 창피함과 책임감을 잊고자 그저 피해자 잘못으로 돌려버리면 마음의 무게가 가벼워져서 편하신가요?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도 위령비는 세워졌습니다. 국가는 더 안전해졌나요? 진상규명 거부와 책임회피 그리고 2차 가해. 앞으로 무엇을 더 계획하시나요?
여론 조작으로 시민 갈등, 유가족 분열 그리고 극우집단 지원 등 비겁한 레퍼토리 재생할 생각하지 말고 정부다운 행동 부탁드립니다.
[이상현 기자(shyun@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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