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아니, 연진아?'…투자 큰손들의 하얀 거짓말[마켓인]

김대연 2023. 1. 20.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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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불황에 '자산 리스크 관리' 강조해도
대부분 펀드 통한 간접 운용…관리 어려워
해외 네트워크도 자산 규모 '큰' 기관 유리
"선언적인 의미일 뿐…CIO 상투어인 셈"

[이데일리 김대연 기자] “시장 위기 상황에서 각별한 리스크 관리를 통해 손실이 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할 예정입니다.”

“해외 네트워크를 강화함으로써 좀 더 넓은 투자 환경에서 좋은 투자 건을 모색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새해에 시장 위기를 딛고 부진한 성과를 극복할 방안을 묻는 기자의 말에 공제회 최고투자책임자(CIO)들이 당연하다는 듯이 한 대답이다. 당분간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새해 들어 국내 연기금과 공제회 등 기관투자가의 수장들은 ‘리스크 관리’와 ‘네트워크 구축’에 더욱 신경 쓰겠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업계에 정통한 사람이라면 사실 그 말은 허울뿐인 약속이라는 것은 모두 다 아는 공공연한 사실이다. 수조원의 자산 운용을 총괄하는 한 기관의 대표로서 회원들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다짐이지만, 전문 운용사(GP)를 통해 간접 투자하는 기관들의 특성상 의례적인 말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속 장면. (사진=넷플릭스)
‘연진이’는 모르는 큰손들의 새해 약속

지난해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급격한 금리 인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경기 침체 우려 등으로 투자업계에 한파가 몰아닥친 해였다. 각종 악재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면서 시장 분위기를 반전시킬 생각은 꿈도 꾸지 못했다. 주식과 채권 시장은 동시에 무너졌고, 하반기엔 강원도 레고랜드 사태까지 맞물리면서 불안감은 한층 고조됐다.

혼란한 시장 여파는 국내 기관투자가들의 수익률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쳤다. 지난 2021년 풍부한 유동성에 힘입어 역대 최고 수준의 성과를 기록한 연기금과 공제회들은 지난해 불안정한 시장 흐름에 휩쓸려 수익률도 한없이 내리막길을 걸었다. 특히 부동산 경기가 위축되고 부실자산이 속속 드러나는 등 자산건전성에 빨간불이 켜지자 자본시장 큰손들은 실물자산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프로젝트 투자보다 블라인드 펀드(투자처를 정해놓지 않고 운용사가 자유롭게 투자하는 펀드)를 조성해 간접 투자를 선호하는 기관투자가 특성상 자산 리스크를 직접 관리할 여건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기관마다 직접운용과 간접운용 비율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최근 들어선 대부분 기관이 직접 투자하기보다 전문 운용사를 통해 안정적으로 투자하는 것을 선호하는 추세다.

이 때문에 “자산 관리를 어떻게 해야 잘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대다수 자본시장 큰손들은 대답을 망설이다 머쓱하게 웃었다. 한 공제회 CIO는 “사실 대부분 자산은 국내외 전문 운용사를 통해 간접투자를 하고 있어 운용사가 일차적으로 위험 관리를 한다”며 “기관들은 투자하고 나서는 손 쓸 여력이 없어 손실이 발생하면 어떻게 매각하면 좋을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운용구조상 지키기 어려운 CIO들 상투어”

투자를 잘하려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로 시각을 넓혀 우수한 투자 기회를 발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글로벌 굴지의 운용사들과 긴밀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큰손들은 일종의 환상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약 900조원에 육박하는 자산을 굴려 세계 3대 연기금으로 꼽히는 국민연금처럼 곳간이 넉넉하지 않다면, 해외 운용사와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 연기금 관계자는 “실질적으로 국민연금 외에 자산 규모가 상대적으로 적은 국내 기관은 글로벌 주요 GP와 만날 기회가 부족하다”며 “해외 네트워크를 쌓기 위해선 기관들이 직접 투자하는 비율이 높아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물론 CIO들이 회원들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저조한 성적표를 뒤엎고 새해엔 높은 수익률을 달성하기 위해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는 등 발전된 투자전략을 구축하는 데 한창이다. 다만, 기관투자가 운용 체계 특성상 부딪힐 수밖에 없는 한계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다른 공제회 관계자도 “사실상 펀드에 투자할 땐 네트워크가 탄탄한 것보다 자금 여력이 풍부한 게 더 중요하다”며 “CIO들이 의례적으로 ‘해외 네트워크 역량을 강화하겠다’, ‘리스크 관리에 힘쓰겠다’고 하지만, 간접 운용까지 하는 마당에 이러한 신년사들은 선언적인 의미”라고 밝혔다.

김대연 (bigkit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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