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발언대] "월경은 숨길 일 아녜요"
(서울=연합뉴스) 박세진 기자 = 얼마 전 일본 지역 매체인 오키나와타임스 인터넷판에 이색적인 기사가 올랐다. 23세 남성 기자가 쓴 생리 체험기인데, '새지 않을까 항상 불안, 앉을 때마다 스트레스'라는 제목부터 눈길을 끌었다. 생리 2~3일째 경혈량(30㎖) 만큼 착색된 물을 머금은 생리대와 함께 오전 10시 일과를 시작한 기자는 "내가 체험한 것은 단 하루(9시간). 실제로는 매달 일주일 가까이 지속되고 생리통과 정신적 불안감 등이 더해진다. '생리 없는 남자가 부럽다'는 말을 들은 적 있는데, 그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생리는 성숙한 여성의 자궁에서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출혈이다. 보통 12~17세 때 시작돼 50세 전후까지 임신 중이나 수유기를 빼고 3~7일간 평균 28일 간격으로 이어져 월경(달거리)이라고 한다.
2017년 7월 설립된 해피문데이는 남성들이 잘 모르는 월경을 일상 속에서 겪는 여성의 건강과 행복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는 헬스케어 스타트업이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여성 건강에 도움이 되는 월경 중심의 서비스와 제품, 콘텐츠를 종합적으로 제공하는 펨테크(FemTech) 선도 기업을 지향한다.
출범 4년 차이던 2021년 12월 프리시리즈B 단계에서 110억원을 한꺼번에 유치해 누적으로 받은 투자금을 135억원으로 불리는 등 동종 업계에서 발군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두 명의 공동 창업으로 시작해 지금은 35명이 일하는 회사로 성장했다.
지난 11일 서울 성동구 선명스퀘어 지식산업센터 내 사무실에서 김도진(32) 해피문데이 대표를 만나 창업 얘기를 들어봤다.
창업의 씨앗 '깔창 생리대' 사건…"생리대는 더 좋아질 수 없을까"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온 김 대표는 어렸을 때부터 창업가를 꿈꾸긴 했지만, 처음부터 월경 중심의 사업을 생각하진 않았다.
그런 그를 월경에 특화한 기업 창업으로 이끈 것은 운동화 깔창을 생리대로 쓴다는 저소득 가정 여중생 얘기가 알려져 2016년 한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던 이른바 '깔창 생리대' 사건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다른 일을 할 때였는데, 이 사건에 충격을 받아 월경과 여성 건강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김 대표는 생각 끝에 '걱정 없는 1년 생리대' 기부 캠페인과 초경 가이드북인 '어바웃 문데이' 출간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그 과정을 통해 월경과 관련한 많은 걸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여 왔음을 깨달았다고 돌아봤다.
해피문데이는 결과적으로 회사 창립의 주춧돌이 되어 준 '걱정 없는 1년' 생리대 기부 캠페인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개인이나 기관·단체가 형편이 어려운 수요자에게 1년간 보내주겠다고 나서면 저렴한 가격으로 생리대를 공급하는 방식이다.
2018년 이후로 작년까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총 2천843명의 저소득 청소년이 '걱정 없는 1년'을 보냈다고 한다.
"생리대는 더 좋아질 수 없는지, 선택지는 더 다양해질 수 없는지, 월경에 관한 여성 건강 정보를 정확하고 쉽게 확인할 방법은 없는지를 놓고 고민했고, 결국 생리대를 직접 만드는 일로 이어진 겁니다."
김 대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변화를 만드는 데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기업의 창의적인 활동이라고 생각했다며 그 신념이 창업에 나선 동력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월경 중심 건강 앱 '헤이문'…여성 MZ세대 넷 중 1명 이용
생리대로 출발한 해피문데이의 사업 영역은 제품을 직접 만들거나 조달해 고객에게 공급하는 커머스(상거래), 서비스, 콘텐츠 등 세 갈래로 나뉜다.
커머스 영역에선 직접 개발한 생리대와 탐폰(삽입형 생리용품), 월경컵(컵 모양 용품), 아랫배 온열팩, 여성청결제 등 다양한 제품을 선보인다.
서비스로는 주기 예측, 용품 구입, 궁금증 문답 등 월경을 겪는 여성의 건강관리에 필요한 항목들을 한곳에 모아 놓은 애플리케이션(앱) '헤이문'이 주목받고 있다.
김 대표는 "헤이문은 월경을 중심으로 일상 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전무후무한 여성 전용 앱"이라고 자부했다.
단순히 다음 월경일이나 가임기를 계산해 주는 수준을 넘어 월경 주기에 따른 몸과 기분의 변화를 관찰하고 기록하면서 건강을 관리해 주는 혁신적인 모바일 서비스라는 것이다.
2020년 9월 아이폰용으로 먼저 출시된 이 앱의 내려받기는 누적으로 150만 회를 넘었다고 한다.
김 대표는 여러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비교해서 더 좋은 것을 찾아 쓰는 경향이 강한 MZ세대(10~20대)의 헤이문 이용이 두드러진다며 국내 15~24세 여성의 경우 4명 중 1명꼴로 가입했다고 말했다.
해피문데이는 또 콘텐츠 영역에선 전문가 도움을 받아 여성 건강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소개하는 소식지(28레터)와 블로그, 유튜브 등을 운영한다.
김 대표는 증상을 제대로 알고 대처하는 시기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것이 여성 건강 문제라며 정확한 정보 제공의 중요함을 강조했다.
월경용품 구독 서비스 첫 도입…특허도 받아
해피문데이는 기획, 개발, 생산과 원부자재 수급 관리 등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 배송을 완료하기까지의 과정을 총괄한다.
생산 방식으로는 최상의 품질로 제품을 구현할 수 있는 파트너를 찾아 협업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 때문에 생리대, 탐폰, 월경컵 등의 제조 파트너가 다르고, 특히 몸 안에 넣는 탐폰은 독일에서 만들어 들여오고 있다.
김 대표는 더 좋은 제품을 공급하려다 보니 생리용품 제조 기술 분야에서 앞서가는 독일 파트너랑 손잡게 됐다고 말했다.
해피문데이가 국내에 유기농 순면 제품을 선보이고 보급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김 대표는 생리용품은 혈을 잘 흡수하는 기능성과 착용감이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에 유기농 순면을 우선 재료로 고려한다고 설명했다.
해피문데이는 국내에서 최초로 월경 용품을 개인별 주기에 맞춰 사전 배송해 주는 구독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이 서비스는 어느 정도 규칙적이긴 하지만 변동성을 띠게 마련인 월경 날에 생리대가 없으면 당황할 수 있고, 매번 미리 사두는 게 귀찮을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김 대표는 "내가 쓸 용품을 필요한 만큼 월경주기에 맞게 받으면 불편함을 해소할 수 있겠다 싶었다"며 제품의 품질뿐만 아니라 전달 과정에서도 한층 발전된 서비스를 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이 주기 구독 서비스라고 말했다.
해피문데이는 '월경 날이 조금 더 편안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관점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이 서비스 관련 기술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쿠웨이트에 첫 수출…무작정 샘플 들고 가 판로 개척
해피문데이는 업력이 그리 길지 않지만 해외시장으로도 눈을 돌리고 있다.
창업 이듬해인 2018년 쿠웨이트로 생리대를 처음 수출한 이후 아랍에미리트(UAE), 인도네시아로 해외시장을 넓혔다.
첫 수출은 김 대표의 대담한 도전으로 성사됐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사업 시작하기 전에 해외시장을 조사했는데, 미국이나 유럽, 아시아 국가 정보는 어느 정도 확인되는데 중동 국가의 정보는 찾아보기가 힘들었어요. 그래서 무작정 샘플 제품을 들고 몇 번 중동으로 날아가 현지 여성들을 만나보고, 데모데이(시연 행사)도 참석하고 하다 보니 저희 제품을 사고 싶다는 사람들이 나타났어요. 그렇게 중동 현지에서 파트너를 만나 수출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김 대표는 수출 대상국이 모두 보수 성향의 이슬람권인 것에 대해선 "해피문데이의 가치가 필요한 시장이라고 생각한다"며 아직은 걸음마 단계이지만 점진적으로 글로벌 시장을 키워나가겠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2021년 4월 부혜은 CTO(최고기술경영자)와 함께 유력지 포브스 아시아가 선정하는 '30세 이하 리더'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는 월경 관련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고 다른 데서 볼 수 없었던 구독 서비스를 내놓는 등 펨테크 영역에서 도전하고 발전하는 것을 알아봐 준 것 같다고 했다.
"'더 많은 여성의 건강한 삶'을 구현한다는 미션에 공감하면서 열정을 불태우는 동료들이 있기에 혁신을 거듭할 수 있었죠. 그런 노력을 알아봐 주시는 누군가 있음에 감사하며 매일 조금씩 더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이런 맥락에서 해피문데이는 원칙적으로 모든 신제품을 내놓을 때 '꼭 필요한지'와 '고객이 언제, 어떻게 사용할지'를 자문해 보고 그 물음에 충족하는 것만을 직접 만들거나 아웃소싱해 공급한다고 한다.
김 대표는 여성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도와주는 제품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 해피문데이의 제품 철학이라고 말했다.
"발전하려면 활발한 논의 이뤄져야"
해피문데이는 자사 홈페이지에 '월경은 숨길 일이 아니다'라는 문구를 올려놓고 있다.
여성들만이 겪는 불편·고통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을 높여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김 대표는 "어떤 영역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관심과 대화가 필요하고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져야 한다"며 더 많은 여성이 자신의 월경 얘기를 주변에 할 수 있게 되고 그 대화가 사회 전반으로 서서히 확장해 가는 과정에 힘을 보탠다는 마음으로 그 문구를 썼다고 말했다.
그는 월경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 수준에 대해 "스펙트럼이 진짜로 넓다"며 이해도가 높은 사람도 많지만, 창피하게 그런 얘기를 하느냐는 시각이 공존한다고 언급했다.
"월경은 여성 건강의 중요한 지표입니다. 월경주기는 곧 여성의 호르몬 변화 주기이기도 하고요. 월경을 중심으로 여성 건강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 공감하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음에 감사하고 있어요."
parks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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