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길의 부동산 톡!] "세금 털어서 미분양 아파트 매입하겠다고요?"
정부가 주택 시장 연착륙과 취약계층 보호를 명목으로 민간 미분양 아파트 매입에 속도를 내려고 하자 시장의 반발이 거셉니다. 정부는 최근 '빌라왕' 사태에서 촉발한 전세사기 피해자와 취약계층의 주거안정, 주택시장 경착륙을 막기 위한 선제대응 차원에서 미분양 아파트 매입을 추진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이를 경계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습니다. 일각에서는 건설사의 높은 분양가와 수요 예측 실패의 책임을 정부가 대신 떠안는다며 도덕적 해이 논란도 불거졌습니다. 정부가 집값 하락 시기에 집값을 떠받치는 정책으로 무주택자들에게만 희생을 강요한다는 불만도 터져 나왔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국토교통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정부 공공기관이 미분양 주택을 매입하거나 임차해 취약계층에게 다시 임대하는 방안도 검토해달라"고 주문하면서 정부의 미분양 대책 마련 움직임은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정부는 현재 기존 매입임대사업을 확대해 민간 준공후 미분양을 매입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입니다. 매입임대사업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도심 내 신축 또는 기존주택을 공공임대주택으로 매입해 무주택 청년·신혼부부·취약계층 등에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임대하는 것입니다. 주로 1인 가구를 위한 다가구·다세대 등이 많고, 아파트 매입 비중은 10% 미만입니다. 국토교통부는 이 방식으로 현재 7000여 가구가 넘는 준공후 미분양의 일부를 매입할 계획입니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이 냉랭합니다. 아직 미분양 물량이 정부가 위험선으로 보는 6만2000가구에 한참 못 미치기 때문에 시기적으로 이르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실제로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말 기준 전국의 미분양 주택 수는 5만8027가구로 위험선(6만2000가구)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12월 통계에서는 6만 가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부가 나서서 미분양 아파트를 매입할 정도로 위험 수준은 아니라는 분석이 대세입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미분양이 겨우 6만 가구를 넘어서는 수준이라 시기적으로 조금 빠른 것 같다"라며 "정부가 시장 경착륙을 막기 위해 내놓은 고육지책으로밖에 안 보인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전문가는 그러면서도 "미분양이 단기적으로 크게 증가하면서 건설사는 유동성 리스크가 커졌고 이 문제가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보니, 미분양 매입을 통해 건설사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완공된 주택을 임대주택으로 활용하며 임대시장의 공급 확대도 병행하자는 의미로 해석된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정부의 미분양 아파트 매입은 시기도 시기지만 예산이 관건입니다. 정부는 올해 매입임대주택 3만5000가구를 사들이기 위해 주택도시기금 6조763억원을 편성했는데, 가구당 매입 예산이 평균 1억7000여만원으로 올해 목표치인 3만5000가구를 매입하기도 빠듯합니다. 이 때문에 기금 예산을 증액할 가능성이 큽니다. 국민주택기금 예산은 20% 이내에서 국회 동의 없이 증액이 가능해 최대 1조2000억원가량을 정부 합의로 더 늘릴 수 있는데 이 경우 1조원 이상을 미분양 아파트 매입에 투입 가능하게 됩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2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30조원 규모의 '긴급 민생 프로젝트'에서 미분양 주택 매입을 통한 공공임대를 확대하자고 밝힌 만큼 국회 논의를 통해 예산이 대폭 늘어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무주택자들은 정부가 집값 하락을 방지하기 위해 무리하게 혈세를 투입한다고 비판합니다. 무주택자 카페에서는 "기업은 재고가 남으면 헐값에 떨이 판매를 하고, 농가는 안 팔리면 폐기처분도 하는데 왜 아파트만 국가가 세금으로 재고를 매입해 주나?", "국민 혈세를 들여 수요 예측에 실패한 건설 재벌들의 재고를 사주라는 대통령. 이런 논리면 반도체, 조선, 화학, 전자, 자동차 등 안 팔리면 전부 세금으로 사줘야 한다"라는 등 날 선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무주택자들의 이같은 반응은 기준 금리 인상과 집값 하락 등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정부가 비싼 가격에 미분양 주택을 매입하면 그 부담을 이들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이를 반영하듯 수도권 생애 첫 집 매수자는 작년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부동산 정보제공 업체 경제만랩이 법원 등기정보광장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작년 수도권 지역에 생애 처음으로 집합건물을 산 매수자는 16만634명으로 집계됐는데, 2010년 관련 통계가 공개되기 시작한 이래 가장 적은 수치이며 2021년(30만2261명)과 비교하면 46.9%나 급감했습니다. 집합건물은 한 동의 건물에서 구조상 구분된 부분이 독립적으로 사용될 수 있어 구분 소유권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아파트, 빌라, 오피스텔 등을 말합니다. 30대 이하 수도권 생애 첫 집합건물 매수자는 8만7928명으로, 역시 통계 집계 이후 역대 최소치를 기록했습니다. 집값 급등기 20·30세대의 '패닉 바잉'(공황매수) 현상이 일었던 2021년 17만6794명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입니다. 박상길기자 sweats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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