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글로리’가 불러온 열풍…K복수극 톺아보기
얼굴 바꾸고, 26년 계획…‘천차만별’ 복수법
‘더 글로리’ ‘부암동’ 피해자연대
‘황후의 품격’ ‘유령’ 페이스오프
‘올드보이’ ‘악마를’ 칼부림 19금
‘재벌집 막내’ ‘26년’ 억천만겁형
‘부부의 세계’ 등 불륜 응징 통쾌
지난해 말 신드롬급 인기를 끌어모았던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 이어 넷플릭스 TV부문(비영어) ‘글로벌 톱10’ 1위에 오른 넷플릭스 ‘더 글로리’가 복수를 소재로 다루며 화제의 중심에 섰다. 최근 미국 매체 포브스는 “상처 입은 송혜교가 이끄는 케이복수극”이라며 “공포에서 멜로로, 또 살인 미스터리로 예고도 없이 스토리의 방향을 틀어버리는 매력”이라고 보도하며 관심을 드러냈다.
복수극의 인기 이유는 단순하다. 복수의 대상에게 가하는 일종의 (복수)방법이 때로는 카타르시스 등 대리만족의 쾌감을 주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사법 테두리에서의 복수가 아니라 사적복수를 다뤄 논란이 되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판타지를 자극하는 건 분명하다. 이런 점에서 복수의 방법도 비슷하게 사용해오며 오랫동안 흥행 소재로 자리매김했다.
●“손에 손 잡고”…연대형
‘더 글로리’는 학창시절 자신에게 극심한 학교폭력(학폭)을 가했던 이들에게 복수하는 송혜교가 함께 ‘칼춤’을 추려는 사람들을 통해 ‘피해자의 연대’를 강조한다. 가정폭력의 피해자 염혜란과 살인자에게 아버지를 잃은 이도현이 송혜교를 도우면서 자신만의 복수를 준비한다. 2017년 tvN 드라마 ‘부암동 복수자들’에서도 재벌 딸(이요원), 재래시장 생선장수(라미란), 고아 출신의 대학교수 부인(명세빈) 등이 오직 복수를 목표로 모인다. 가스라이팅과 폭력을 일삼는 남편, 학폭 가해자와 그의 부모, 갑질 손님 등에게 물벼락, 설사약을 이용해 망신주기 등 소소하지만 확실한 ‘현실 복수’를 선사한다. 2월 시즌2를 앞둔 SBS ‘모범택시’의 이제훈과 표예진도 택시회사로 위장한 복수대행업체 ‘무지개 운수’를 통해 노동력 착취, 보이스피싱, 불법 장기매매, 동영상 유출 등으로 고통을 겪은 사람들 대신해 칼을 빼 든다.
●“얼굴도 바꾼다”…페이스오프형
완벽한 복수를 위해 ‘예전의 나’를 버리고 새로 태어나는 이들도 있다. 다이어트는 기본, 성형수술도 마다하지 않는다. 2018년 드라마 SBS ‘황후의 품격’에서는 뚱뚱했던 남자가 엄마를 죽인 황제에게 복수하기 위해 체중을 감량하고 황실경호원이 되는 내용이다. 다이어트 전후를 각각 태항호와 최진혁이 연기했다. ‘킹덤’ ‘시그널’ 등을 쓴 김은희 작가의 2012년 드라마 ‘유령’에서는 최다니엘이 소지섭으로 ‘페이스오프’ 한다. 친구를 죽인 어둠의 세력에게 복수하기 위해 자신은 사망한 것으로 위장하고 친구의 얼굴로 다시 태어난 형사의 이야기를 그렸다. ‘부활’, ‘마왕’에 이어 복수극 3부작이라 불리는 2013년 KBS ‘상어’에서는 사랑하는 여자의 집안에 의해 아버지를 잃고 죽음의 위기에 처한 김남길이 얼굴을 바꾸고 신분을 숨긴 채 돌아와 여자의 집안에 복수의 칼을 들이민다.
●“잔혹한 칼부림”…19금형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운 잔혹한 복수도 있다. 결국 피를 보고야 마는 무시무시한 ‘핏빛 복수’가 이뤄지다 보니 ‘청소년관람불가’ 작품이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대표적이다. ‘복수는 나의 것’, ‘친절한 금자씨’ 등 박 감독의 복수 3부작 중 하나다. 어느 날 갑자기 출구 없는 방에 갇혀 15년 동안 군만두만 먹으며 살았던 최민식이 자신을 감금한 유지태를 찾아 복수하는 내용이다. 산낙지를 통째로 씹어 먹고 장도리를 휘두르며 복수를 위해 돌진하던 최민식은 ‘악마를 보았다’에서 이병헌의 약혼자를 살해해 오히려 복수의 대상이 된다. 이병헌은 최민식을 딱 죽지 않을 만큼만 고문했다 살려주기를 반복하며 악마가 되어간다.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에서는 낫을 든 서영희가 남편을 포함해 오랜 시간 자신을 착취하고 학대했던 섬마을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응징한다.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던 마을의 추악한 이면을 섬뜩하게 그린다.
●“평생을 바쳤다”…억천만겁형
제대로 된 복수를 위해 20년은 기본, 억천만겁(億千萬劫·무한하게 오랜 시간)도 견딘다. JTBC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송중기는 무려 17년 동안 복수만을 바라본다. 충성을 다했던 재벌 총수 일가 ‘순양그룹’에 의해 죽임을 당한 뒤 순양의 막내아들로 다시 태어난 그는 IMF, 2002년 한일월드컵 등 이미 이전 인생을 통해 겪었던 국가적 이벤트를 교묘히 활용해 그룹 내 절대 권력인 이성민의 환심을 사고 순양을 무너뜨린다. 영화 ‘26년’은 1980 년 5·18 민주화운동을 무자비로 진압했던 ‘그 사람’에게 26년 만에 총구를 겨누는 이들의 모습을 담는다. “요즘 젊은 친구들이 나한테 감정이 별로 안 좋은 가봐, 나한테 당해보지도 않고 말이야”라는 ‘그 사람’의 대사가 관객의 뜨거운 분노를 일으킨다. 지난해 개봉한 ‘리멤버’에서는 80대 노인으로 분한 이성민이 60 여년 만에 일제강점기에 씻을 수 없는 아픔을 안긴 친일파를 찾아 한 명씩 처단한다. ●“불륜 응징”…오뉴월의 서리형
사랑하는 남자에게 배신당한 여성의 복수는 드라마의 단골 소재다. 여성이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이 있듯 이들의 살벌하고 독한 복수는 언제나 통쾌함을 안겨준다. 1999년 최고 시청률 53.1%를 기록한 SBS ‘청춘의 덫’도 결혼을 약속했던 이종원에게 배신당한 심은하의 악에 받친 복수극이었다. ‘젊은이의 양지’에 이어 또다시 나쁜 남자 역을 맡은 이종원은 이 드라마를 통해 ‘배신의 아이콘’이 됐다. 절친한 친구와 바람이 난 남편에게 복수하기 위해 얼굴에 ‘점하나 찍은’ 장서희 주연의 2008 년 SBS ‘아내의 유혹’도 빼놓을 수 없다. 김희애의 복수극 JTBC ‘부부의 세계’도 놓칠 수 없다. 아내 김희애를 배신하고 한소희와 불륜을 저지른 박해준의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라는 대사는 불륜 캐릭터 최고의 ‘망언’으로 등극했다.
이승미 기자 s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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