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브스夜] '꼬꼬무' 비운의 복서 김득구…"그는 용기 있는 도전자였다" 최후의 도전 '조명'

김효정 2023. 1. 20.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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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연예뉴스 | 김효정 에디터] 김득구는 포기를 모르는 도전자였다.

19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내 꿈은 가난하지 않았다 - 1982 최후의 도전'라는 부제로 김득구 선수를 조명했다.

1970년대, 대한민국은 복싱에 열광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경기에 집중한 한 소년 김득구는 꿈을 키웠다.

유난히 가난했던 그는 초등학교 졸업 후 일을 했고, 그래도 집안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리고 15살 가족들 몰래 상경을 계획했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어머니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돈 3천 원을 쥐어주며 아들의 안녕을 빌었다.

상경 후 닥치는 대로 일을 하던 그는 당대 최고의 복싱 명문 체육관, 동아체육관을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패기 있게 복싱을 시작했다.

프로 데뷔전에서 승리 후 승승장구했던 김득구. 하지만 그 후 잠시 해이애진 그를 관장은 다그쳤고, 다시는 체육관에 나오지 말라고 했다.

복싱만이 전부였던 그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선고였고, 이에 김득구는 모든 것을 잃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리고 3일 만에 깨어난 김득구. 이에 관장은 그의 진심을 깨달았고 다시 한번 그에게 기회를 주었다.

동양 챔피언에 도전한 김득구, 그는 당시 챔피언이었던 김광민과 대결을 했다. 모두가 김광민의 승리를 예상했지만 김득구는 공격적인 성향의 왼손으로 김광민을 압도하며 심판 전원일치의 판정승을 거두었다.

이후 금의환향한 김득구. 그는 경기 대전료와 고등학교 졸업장을 가지고 어머니에게 전했다. 그는 운동하는 틈틈이 검정고시까지 쳐서 부모님이 기다린 졸업장을 선물한 것이다.

이제 김득구에게 남은 것은 세계챔피언. 이에 관장은 미국 원정 경기를 제안했다.

상대는 WBA 라이트급 세계챔피언 레이 '붐붐' 맨시니. 맨시니는 24전 23승 1패의 엄청난 전적을 가진 세계 최강의 복서였다.

하지만 김득구는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에 감사하며 그와의 대결을 하겠다고 결정했다. 곧 태어날 아이를 생각하며 그는 자신의 아이에게는 절대 가난을 물려주지 않겠다며 큰 마음을 먹은 것.

그리고 김득구는 경기에 앞서 관을 직접 만들어 오는 각오를 보였다. 맨시니를 죽이든 내가 죽든 승부를 보겠다는 것.

1982년 11월 13일, 세계 챔피언 레이 '붐붐' 맨시니와 동양 작은 나라의 무명 복서 김득구가 라스베이거스 특설링에 올랐다.

8천 명의 관중 속에 대부분이 맨시니를 응원했다. 하지만 그 안에 김득구를 응원하는 태극기들이 보였다. 교민들이 그를 응원하기 위해 현장에 왔던 것.

맨시니의 일방적인 승리가 될 것이라 예상되었던 경기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접전이 되었다.

9라운드까지 팽팽했던 경기, 10라운드 갑자기 김득구의 반칙이 선언됐다. 감점까지 당한 김득구에 문제가 생겼다. 체력이 떨어진 김득구에 맨시니는 맹공을 가했다.

경기는 계속됐고 13라운드까지 갔다. 김득구는 정신력으로 버티고 또 버텼다.

14라운드가 시작된 지 단 19초 만에 김득구가 쓰러졌다. 그런데 그는 로프를 잡고 겨우 다시 일어났다. 하지만 심판은 경기 종료를 선언했다.

그리고 김득구는 다시 쓰러졌다. 고통스러워하던 김득구는 다시 일어나지 않았고 곧바로 긴급 수술이 진행됐다.

2시간 반에 걸친 뇌수술, 하지만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 일정상 관장은 김득구를 두고 먼저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리고 이틀 후 김득구의 뇌사 판정 소식이 전해졌다. 이 소식을 들은 그의 어머니는 미국으로 향했고, 어머니는 의료진의 설득에 호흡기를 떼고 그의 죽음을 받아들였다.

김득구 선수의 모든 장기는 미국에 기증되었고, 시신은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본인의 꿈에 절박했던 젊은이의 최후는 너무나 안타까웠다.

사망 후 큰돈이 가족들에게 남겨졌다. 이에 사람들은 죽어서야 큰돈을 만지게 됐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김득구를 보내고 죄책감과 그리움으로 힘들어하던 어머니는 그가 세상을 떠나고 2달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또한 경기 후 맨시니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의 잘못이 아니었지만 그는 살인 복서라는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다.

그는 김득구와의 경기에 대해 처음으로 포기할 수도 있었던 경기였다고 떠올렸다. 그리고 뒤늦게 그의 사망 소식을 알고 죄책감에 시달렸다.

방송에 직접 모습을 드러낸 맨시니는 "심장에 칼을 맞는 기분이었다. 내 손에 죽은 거다. 경기 후 다시는 싸우기 힘들었다. 난 계속 왜 내가 아니라 그에게 일어났나 생각했다"라며 힘들어했다. 결국 그도 24살 이른 나이에 은퇴를 선언했다.

맨시니는 김득구에 대해 "링에서 그는 궁극의 전사였다"라며 "내가 죽은 뒤 언젠가 그와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했다. 그리고 다시 만난다면 친구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방송에서는 많은 이들이 김득구 선수를 경기하다 죽은 비운의 복서가 아닌 용기 있는 도전자, 투지의 사나이로 기억해 주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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