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키즈존 논란 그후] ②"꼬마 손님 돌려보낸 주인 맘은 편했겠어요?"
절충안 찾는 영업점들…양육자도 자녀 공공교육 필요성 인식
(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 정한솔 인턴기자 = "이 가게에서 커피를 마시고 싶은데 아이와 함께 들어가지 못해 너무 아쉬워요."
자녀와 같이 온 손님들이 남긴 이 말 때문에 정지호(25) 씨는 2021년 봄 개업 이후 1년 넘게 고수해오던 카페 운영 방식을 '노키즈존'에서 지난해 가을 '케어키즈존'(Care Kids Zone)으로 바꿨다.
케어키즈존은 아동의 출입은 가능하지만, 양육자의 더욱 적극적인 보살핌을 부탁한다는 의미다.
이달 8일 찾은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정 씨의 카페 입구에는 이를 알리는 안내문과 함께 자녀를 동반한 고객에게 안전사고 예방과 기물 사용 주의를 당부하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정씨는 "노키즈존을 안타까워하는 고객의 소리가 꾸준히 이어지면서 '어리다는 이유로 한 공간을 누릴 자유를 차단하는 게 잘못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매번 어린이 손님을 돌려보내는 것도 못내 맘에 걸리고 죄송했다"고 말했다.
영업 방침을 바꾸기로 한 데에는 실리적인 면도 작용했다. 카페 주변 단독주택과 대형 아파트 단지에서 가족 단위 고객이 주말과 평일 저녁을 이용해 카페를 많이 찾았기 때문이다. 카페는 2층 단독 건물로 이뤄진 대형 매장이다.
정씨는 "다만 카페 내부에 계단이 높은 탓에 꼬마 손님들이 다칠까 걱정이 됐다"며 "양육자에게 아이 안전에 신경을 써주기를 당부한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큰 사고만 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이 같은 방식을 유지해나갈 생각"이라고 했다.
'아동 출입금지' 떼고, 규칙 만들고…대안 찾는 매장들
영유아와 어린이의 매장 출입을 제한하는 이른바 노키즈존을 둘러싼 사회적 담론이 10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현장 곳곳에서는 변화의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노키즈존 초창기에는 '사업주의 권리'라는 의견과 '사회적 약자인 아동을 향한 차별'이라는 지적이 팽팽하게 맞섰으나 차츰 일종의 절충안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6일부터 9일까지 '구글 노키즈존 맵' 상에 공지된 서울 종로구와 마포구, 서대문구 등 주요 도심의 카페와 식당 10곳을 둘러본 결과 매장 입구에 노키즈존을 공지하고 아동의 출입을 전면 제한하는 매장은 1곳에 불과했다.
정씨의 카페처럼 나름의 규칙을 정해 운영하는 매장이 6곳, 아예 나이 제한 없이 손님을 받는 곳도 3곳으로 파악됐다.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근처에서 이탈리안 식당을 운영하는 한 점주는 "원래 미취학 아동을 손님으로 받지는 않았다"면서도 "현재는 노키즈존으로 못 박은 가게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과거 매장을 뛰어다니거나 소란을 피웠던 일부 아이들로 인해 다른 고객이 항의하는 일이 생기면서 노키즈존으로 운영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무조건 출입 금지가 능사는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식당 이용 여부는 아동의 나이가 아닌 양육자의 결정에 달려 있다"며 "양육자께서 '내 자녀가 어느 정도 사회적 예절을 지킬 수 있다'는 판단이 선다면 언제든 오셔도 된다"고 말했다.
홍익대 근처에 있는 고양이 카페를 운영하는 점주도 "특별히 연령 제한을 두고 손님을 거르지 않기로 했다"며 "이제까지 어린이 고객으로 인해서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기에 내린 결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 고양이 함부로 들어 올리지 말기 ▲ 큰소리 내지 않기 ▲ 고양이 쫓아다니지 말기 등 매장 운영 규칙을 입구에 공지했다.
그는 "이것(규칙)만 지켜준다면 언제든, 누구나 환영"이라고 말했다.
"카페는 아이의 사회화 교육장"…'룰' 따르는 양육자들
지난 8일 정지호 씨의 매장에서 만난 전병욱(41) 씨는 자녀에게 "여긴 공공장소이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 돼"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13세 미만인 아들·딸, 아내와 함께 카페를 찾은 전씨는 "안내문을 봤을 때 좀 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녀에게도 주지시켰다"며 "크게 떠들거나 뛰어다니는 행동은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일이라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낯선 이와 공간을 공유하는 카페야말로 아이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예의나 질서, 배려 등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교육장이라는 게 전씨의 생각이다.
그는 "단순히 책이나 유튜브로 배우는 게 아닌 실제로 경험할 기회"라며 "만약 노키즈존이었으면 그럴 기회조차 없지 않았겠느냐"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날 30여 명의 손님 가운데 아동을 동반한 이는 10명 정도였지만, 크게 소란스럽지 않은 분위기가 유지됐다.
전씨의 옆 테이블에 앉은 황수연(30) 씨는 "케어키즈존은 아이가 시끄럽게 굴거나 문제를 만들면 쫓아낼 수 있다는 일종의 조건부 입장이나 마찬가지"라면서도 "아동 출입을 전면 제한한 노키즈존보다는 진일보한 모습이라 본다"고 말했다.
2017년부터 '구글 노키즈존 맵'을 운영하는 A씨는 "기간 별로 데이터를 관리하지 않아서 노키즈존 매장의 변화 추이는 알 수 없다"면서도 "(노키즈존이) '아이를 차별하고 사회 공동체에 해가 되는 곳'이라는 인식은 이전보다 분명히 늘었다"고 강조했다.
미취학 아동의 출입을 제한했던 기존 운영 방침을 최근 없앤 마포구의 한 카페 점주도 "장기적으로 매출에 큰 득이 되지 않는다고 봤다"며 "가족 단위 손님을 받되 주의 사항을 공지하는 게 수익성에 더 낫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노키즈존 고수' 이유도 있다…"공공장소 이용교육 필요"
역설적으로 노키즈존을 고수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결국 실리적인 부분에 있었다.
취재진이 둘러본 매장 10곳 가운데 유일하게 입구에 노키즈존임을 알리고 운영하는 카페 주인은 "행여나 아이들이 여기서 다쳤을 때 피해 보상을 논의해야 하는 단계로까지 번진다면 난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과거 어린이 손님이 사고가 날 경우 업주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판결이 몇 차례 있었다.
2015년 8월 춘천의 한 식당 종업원이 뜨거운 국물을 쏟아 유모차에 타고 있던 아기에게 화상을 입혔다면 식당 측에 70%의 책임이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당시 부모 등은 식당 주인과 종업원을 상대로 아기의 치료비와 향후 수술비, 아기와 일가족 4명의 위자료 등을 지급하라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식당 측이 가족 측에 위자료와 치료비 등 1천17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2011년에도 부산의 한 음식점에서 뜨거운 물을 들고 가던 종업원과 부딪힌 10세 아이가 화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법원은 종업원의 부주의와 식당 주인의 직원 안전 교육 미흡을 이유로 4천1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경기연구원은 2016년 2월 '노키즈존 확산, 어떻게 볼 것인가' 보고서를 통해 "매장에서 (아동과 관련한)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업주에게 배상 책임을 묻는 판결이 잇따르면서 노키즈존 도입을 고려하는 영업점이 증가하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김도균 연구위원은 "노키즈존이 불가피한 경우 '아이의 출입을 통제한다'는 관점이 아니라 '아이를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캠페인을 통해 공공장소 이용과 예절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해내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2017∼2021년 숙박·음식점에서 발생한 어린이 안전사고는 3천189건에 이르렀다. 주택과 도로·인도, 교육시설, 놀이시설에 이어 5번째로 많은 건수다. 2021년 한 해에만 350건이 넘는 어린이 사고가 숙박·음식점에서 났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제까지 아동으로 인한 사고가 났을 때 양육자보다 업주에게 책임을 묻는 경우가 많았던 게 사실"이라며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양육자의 더 적극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shlamazel@yna.co.kr
[글 싣는 순서]
①방학때 아이와 간 카페가 하필 '아동 출입금지'
②"꼬마 손님 돌려보낸 주인 맘은 편했겠어요?"
③영업자유 vs 차별행위…해법은 '상대방 존중'
④"유리창에 낙서해도 돼"…홍제동 '웰컴키즈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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