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키즈존 논란 그후] ①방학때 아이와 간 카페가 하필 '아동 출입금지'
"저출산 대책 못지않게 양육하기 편한 사회적 분위기 조성 중요"
[※편집자 주 = 특정 장소에 아동의 출입을 제한하는 '노키즈존'을 둘러싼 사회적 담론이 변화, 발전하고 있습니다. 노키즈존을 둘러싼 찬반 논쟁은 여전하지만 아이를 환영하는 '웰컴키즈존' '키즈오케이존'이 속속 등장하고, 아이의 출입을 허용하면서 양육자의 적극적인 보살핌을 요청하는 '케어키즈존'을 표방한 업소도 있습니다. 이는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를 무조건 배제·차별하기보다는 상생·공존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변화들입니다. 연합뉴스는 이런 과정을 조명하면서 우리 사회의 아동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짚어보는 4편의 기사를 제작, 이틀간 2편씩 송고합니다.]
(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 정한솔 인턴기자 = 울산에 사는 신모(40) 씨는 최근 휴가를 내고 아들과 함께 고향인 인천의 한 유명 제과점 겸 카페를 찾았다. 지난해 초등학교에 입학해 첫 겨울방학을 맞이한 자녀와 소박한 추억을 쌓고, 그동안 밀린 이야기도 나누려 했다고 한다.
그러나 신씨 부자는 빵 맛을 보지 못했다. 13세 미만 아동은 입장할 수 없다는 가게 방침 때문이다. 이른바 '노키즈존'이다.
신씨는 "'인천에 빵 파는 데가 여기 밖에 없겠냐' 싶어 군말하지 않고 얼른 다른 카페를 찾아갔다"며 "아들에게 고향의 정이 아닌 현실의 냉혹함을 보여준 것 같아 면목이 없었다"고 했다.
그는 "자리가 없어서 나왔다고 아이에게 둘러댔지만 실망한 눈치가 역력했다"며 "앞으로 자녀와 나들이하기 전에 노키즈존 운영 여부를 확인하고 행선지를 정해야 허탕을 치지 않겠더라"고 한숨을 쉬었다.
방학철 맞아 '노키즈존' 인터넷 검색량 다시 늘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된 이후 처음 맞이하는 겨울방학 철과 맞물려 인터넷 공간에서는 노키즈존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커지는 모양새다.
인터넷 검색 추이를 보여주는 '구글 트렌드'에 따르면 지난 11일 '노키즈존' 키워드는 최근 1년간 최고치인 100을 기록했다. 이날 노키즈존을 키워드로 한 검색이 최근 1년간 가장 많이 이뤄졌다는 의미다.
겨울방학 직전인 지난해 12월 24일만 하더라도 노키즈존 트렌드 지수가 14에 불과했으나, 이후 전국 대부분 초·중·고교가 일제히 방학에 들어가며 3주도 안 돼 최고치에 이른 것이다.
트위터상에서도 노키즈존이 언급된 포스팅이 최근 한 달여간 1천400건이 넘었다. 전년 동기대비 곱절 이상 늘어난 수치다.
실제로 방학을 맞은 아이와 함께 나들이에 나섰다가 카페나 식당 측으로부터 입장을 거부당했다는 경험담이 최근 들어 맘카페를 중심으로 속속 올라왔다. 경북 구미 지역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맘카페의 한 이용자는 "지난해 12월 집 근처 카페를 들렀다가 아이가 있다는 이유로 입장을 제지당했다"며 "우리 동네 곳곳에 노키즈존이 있었는지 몰랐다"는 글을 남겼다.
현재 노키즈존에 대한 공식적인 통계는 없다. 이를 시행하는 곳을 일일이 집계하는 기관이 없는 데다 노키즈존 방침을 명시하지 않고 운영하는 사업장이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정확한 파악이 힘들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다만 우리 사회 곳곳에 자리한 노키즈존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구글 노키즈존 맵'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수도권과 제주도를 중심으로 최소 450여 곳에 이른다.
노키즈존 맵은 2017년부터 운영자 A씨가 소셜미디어 제보를 바탕으로 추가 확인 등을 거쳐 수시로 업데이트하고 있다.
A씨는 지난달 말 연합뉴스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신원 공개를 꺼리며 '수도권에 사는 평범한 30대 직장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사회적 차별에 해당하는 노키즈존으로 인해 불편과 피해를 겪는 이들을 위해 관련 정보를 제공하려고 이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제주도와 같은 유명 관광지를 비롯해 서울 홍대입구역 근처 등 젊은 층이 많이 찾는 이른바 '핫플레이스'에 노키즈존이 몰려있다"며 "반대로 신도시와 같이 주거 지역에서 노키즈존 빈도는 매우 낮다"고 설명했다.
"공지라도 해줬으면 헛걸음은 안 했을 텐데"
노키즈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큰 논란 중의 하나는 '아이를 동반한 방문객이 노키즈존임을 모르고 방문했다가 헛걸음하는 것'이다.
'노키즈존 맵' 운영자 A씨는 "입장을 거부당해 발걸음을 돌려야 했던 이들은 시간적·금전적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며 "온·오프라인에 노키즈존을 명기하는 데 많은 시간과 큰 비용이 들지 않는 데도 이런 문제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기도 과천에 사는 이모(41) 씨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2년 전 태어난 아들과 함께 케이크 등으로 유명한 서울의 한 카페를 찾았지만, 노키즈존이라는 이유로 매장에 들어서지도 못했다.
이씨는 "카페 인스타그램에는 이 같은 사실이 공지되지 않아서 몰랐다"며 "1시간을 넘게 걸려 갔는데 황당했다"고 말했다.
한국리서치가 2021년 11월 성인 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노키즈존에 대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11%가 '음식점(카페)에 도착하고 나서야 노키즈존을 알게 돼 입장하지 못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특히 초등학생 이하 자녀를 둔 양육자의 경우 24%에 달했다.
이 때문에 '온라인에 매장 정보를 제공할 때 노키즈존 여부를 반드시 명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한 비율도 84%에 달했다.
일부 사업주들은 헛걸음하는 고객에게 죄송스러운 마음이라면서도, 궁여지책 끝에 나온 선택이라고 해명했다.
인천의 한 신도심에서 양식집을 운영하는 한 가게 주인은 "한때 노키즈존을 운영한다고 SNS에 공지했다가 비난 댓글 수십 개가 달렸다"며 "행여나 가게 매출에 악영향을 줄까 봐 고민 끝에 공지를 삭제했다"고 털어놨다.
'노키즈존 OK' 여론에도…"양육자 배려 더 필요"
노키즈존 운영 찬반을 둘러싼 전반적인 여론은 다른 손님에 대한 배려 등을 근거로 이를 허용해야 한다는 쪽이 여전히 높게 나타난다. 하지만 저출산 현상 심화와 맞물려 이런 여론의 변화가 있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한국리서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업주가 행사하는 정당한 권리이자 다른 손님에 대한 배려라는 이유로 노키즈존 운영을 허용할 수 있다고 답한 비율은 71%에 이르렀다. '허용할 수 없다'고 밝힌 비율은 17%였다.
'노키즈존은 다른 손님에 대한 배려인가'라는 질문에 74%가 동의했다. 그러나 '노키즈존은 어린이에 대한 차별인가'라는 질문에 29%만이 동의했다.
이 조사를 진행한 이동한 차장은 "찬반이 팽팽할 거라 짐작했지만, 막상 결과는 노키즈존 운영에 대한 찬성 여론이 압도적이라 놀랐다"며 "자녀 유무에 상관없이 업장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기조가 컸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초등학생 이하 자녀를 둔 응답자 중 70%가 '노키즈존을 허용할 수 있다'고 답했다.
이 차장은 "다만 '차별로부터 모든 이는 자유로워야 한다'는 보편적 시민 윤리가 커지고 있는 데다 저출산 시대로 접어든 점을 고려했을 때 이 같은 여론이 지속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리나라의 가임기 여성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합계출산율)는 2021년 기준 0.81명까지 떨어졌다. 2022년(3분기 기준)에는 0.79명까지 감소했다. 합계출산율이 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은 국가가 된 것은 오래전이다.
최근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한 서모(35·경기도 고양시) 씨는 "나 역시 결혼 전에는 비행기 등에서 우는 아이를 보면 좋게 생각이 들지는 않았던 게 사실"이라며 "이제는 아이를 달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양육자의 입장이 이해된다"고 말했다.
서씨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지원책이 마련되고 있지만 노키즈존처럼 아이를 환영하지 않는 사회적인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고, (육아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도 중요한 게 아닐까 싶다"고 했다.
황옥경 서울신학대 보육학과 교수는 노키즈존 현상은 "매출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사업주와 매장 이용을 당연한 권리로 여기는 양육자 간에 권리가 맞부딪힌 결과"라면서 "단순히 법적인 잣대를 세워 과태료를 매기기보다는 각 집단이 만족할 절충안을 도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아울러 "저출산 고령화라는 국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회구성원이 양육자를 지지하고 지원해줘야 한다"면서 "아동의 사회화를 위해서도 사회 구성원들의 배려와 이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shlamazel@yna.co.kr
[글 싣는 순서]
①방학때 아이와 간 카페가 하필 '아동 출입금지'
②"꼬마 손님 돌려보낸 주인 맘은 편했겠어요?"
③영업자유 vs 차별행위…해법은 '상대방 존중'
④"유리창에 낙서해도 돼"…홍제동 '웰컴키즈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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