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주도로 사퇴 종용·면접 관여·인사 번복…'文정부 블랙리스트'
기사내용 요약
백운규 산업·유영민 과기·조명균 통일장관 등 전직장관 기소…조현옥 인사수석도
검찰 "산하기관장들 호텔 등 불러 '이번 주까지 사직해달라' 요구해"
내정자에 면접 특혜…이미 했던 종합감사 다시 벌여 압박한 정황도
[서울=뉴시스] 위용성 기자 = 검찰이 문재인 정부 당시 부처 장관들과 청와대 고위공직자 등 5명을 재판에 넘긴 것은 당시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직권을 남용해 공공기관 인사 등에 개입한 것이 명백하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들은 산하기관장의 사퇴를 종용하기 위해 종합감사를 벌여 압박하거나, 내정자를 앉히기 위해 면접 예상 질문과 답변을 제공하기까지 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있다.
20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부장검사 서현욱)는 전날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조명균 전 통일부 장관, 유영민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조현옥 전 청와대 인사수석비서관, 김봉준 전 인사비서관 등 문재인 정부 인사 5명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산업부 등 문재인 정부 중앙행정부처 전반에서 이전 정권 인사들에 대한 부당한 사퇴 종용이 있었다는 '블랙리스트 의혹'은 지금으로부터 4년 전인 2019년 3월 당시 야당이었던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이 고발하면서 제기됐다.
검찰은 사실상 3년간 수사를 진행하지 않다가 지난해 3월 대선이 끝난 후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했고, 10개월 만에 해당 의혹이 사실이라는 취지로 판단했다.
검찰은 문재인 정부 초기인 2017년 9월부터 이듬해 4월께까지 산업부 산하 11개, 과기부 7개, 통일부 1개 공공기관장을 정당한 사유 없이 사직하게 했다고 보고있다. 사퇴를 종용받은 기관장들은 모두 지난 정권에서 임명된 인물들이었다.
특히 검찰은 이 같은 과정에 청와대가 개입했다고 결론냈다.
검찰은 조 전 수석이 백 전 장관과 함께 산업부 주무 국장을 통해 한국서부·남동·중부·남부발전 등 산하 발전자회사 4곳의 각 기관장들을 서울 소재 호텔과 식당으로 한 명씩 불러 잔여 임기나 실적과 상관없이 '이번 주까지 사직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봤다.
발전자회사 4곳 외에도 한전KPS, 한국광물자원공사, 한국지역난방공사, 한국에너지공단, 한국무역보험공사, 한국세라믹기술원,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등 7개 기관장들에게 유사한 방식으로 사퇴 압력이 가해졌다고 한다.
공공기관장에 원하는 인사를 앉히기 위해 후보자에게 특혜를 제공했다는 정황도 포착됐다.
청와대 인사수석실은 지난 2018년 6월께 정치권 인사를 후임 한국지역난방공사 사장 자리에 앉히기 위해 공사 기관 직원을 시켜 내정자가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도록 직무수행계획서를 대리 작성토록 한 것으로 조사됐다.
심지어 면접 예상 질의와 모범 답안을 각각 만들어 면접위원들과 내정자에게 제공한 것으로 검찰은 의심하고 있다. 한국지역난방공사 외에도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과 석유공사 등에서도 유사한 작업이 이뤄진 것으로 보고 있다.
백 전 장관의 경우 2018년 2∼3월께 산업부 산하기관인 한국디자인진흥원장 자리에 사적으로 추천받은 인사를 앉히려 했다는 혐의도 있다. 임원추천위원회에 당연직 위원으로 참석하는 산업부 직원에게 '내정자가 있다'는 의사를 전달해, 최고점수를 부여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유 전 장관은 과기부 산하 기관장을 교체하기 위해 이미 실시했던 종합감사를 다시 벌이는 방식 등으로 총 7개 산하 기관장으로부터 부당하게 사표를 제출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조 전 장관은 통일부 산하 북한일탈주민지원재단 이사장의 사직을 종용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기관장 인사 외에 공공기관 임원이나 직원 인사에 장관이나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의혹도 공소사실에 포함됐다.
검찰은 백 전 장관이 한국판유리산업협회, 한국태양광산업협회, 한국윤활유공업협회 등 소관 비영리법인(민간단체) 3곳의 상근부회장 등 임원 자리를 대선캠프 출신 인사로 부당하게 교체한 것으로도 보고 있다.
산업부 산하기관인 한전KPS는 지난 2017년 12월 관련 규정에 따라 직원 86명에 대한 인사를 단행했는데, 청와대 인사수석실이 원하는 후임 기관장 임명 전이라는 이유로 인사를 번복·취소한 의혹도 있다. 실제 취소된 인사는 새 기관장이 임명되고 나서인 이듬해 6월에서야 이뤄졌다고 한다.
한편 검찰은 이 같은 의혹에 연루된 차관이나 실무자들은 대부분 기소하지 않았다.
차관들에 대해서는 장관의 지시에 따라 수동적·소극적으로 관여했다고 보고 기소유예 처분을, 김우호 전 인사비서관, 박상혁 전 행정관을 비롯해 박성택 당시 산업부 에너지산업정책관 등 각 부처 실무자들은 또 상급자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보고 불기소 처분했다.
검찰은 유사한 방식으로 인사권 남용이 이뤄진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에서 유죄 판단이 나온 만큼 조 전 수석 등의 직권남용 혐의가 인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대법원은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사표를 제출하지 않는 공공기관 직원에 대해 표적 감사를 지시하거나, 사표를 제출하게 한 혐의 등을 유죄로 판단해 징역 2년의 실형을 확정했다. 다만 환경부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들에게 '사표를 받아내라'고 지시한 혐의는 법리적인 이유로 1·2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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