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어느 축산인의 부고

박하늘 2023. 1. 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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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예천에서 한우농가 한분이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다네요."

출입처에서 동료 기자들과 점심을 먹다 어느 축산인의 부고를 들었다.

이름도 나이도 모르고 일면식조차 없는 사람의 부음이 이렇게 마음 아프게 다가올지 몰랐다.

남은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숟가락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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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예천에서 한우농가 한분이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다네요.”

출입처에서 동료 기자들과 점심을 먹다 어느 축산인의 부고를 들었다. 이름도 나이도 모르고 일면식조차 없는 사람의 부음이 이렇게 마음 아프게 다가올지 몰랐다. 남은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숟가락을 놓았다.

생전 번식우 150마리를 키웠다는 고인은 13일 우시장에서 결과를 보고 귀가해 유명을 달리했다고 한다. 이날 우시장에서 거래된 수송아지 평균값은 295만원. 해당 송아지들이 막 태어났을 시점인 지난해 7월 수송아지 평균값이 403만원이었던 걸 고려하면 가격이 26.8%나 폭락한 셈이다. 이미 지난달부터 수송아지값이 250만∼290만원대로 떨어졌는데, 이런 흐름이 새해에도 이어지면서 고인에게는 절망으로 다가왔을지 모른다. 각종 시설 투자로 부채까지 쌓인 상황에서 희망을 잃고 극단적 선택을 했을 것이라는 게 관계자 전언이다.

‘소가 소를 잡아먹는 세상(소를 팔아서 다른 소의 사료값을 겨우 번다는 말)’을 넘어서서 소가 사람까지 잡아먹는 세상이 도래하고 만 걸까. 그간 한우산업을 취재하며 목도한 여러 장면이 겹치면서 심란해졌다. 지난해 7월 물가안정이라는 명목 아래 쇠고기에 할당관세를 적용해 연말까지 무관세로 쇠고기를 수입하겠다던 기획재정부의 발표(실제로 지난해 쇠고기 수입량은 역대 최대치였다). 수입 축산물로 범벅이 된 식단을 군급식 개선 대책이라며 내놓은 국방부. ‘남들이 암소를 감축할 때 송아지를 더 입식해야 돈을 번다’며 수급조절에 참여한 농가를 비웃던 대농. 한우고기값 폭락 기사에 ‘대형마트에선 가격이 여전히 비싸서 한우고기를 살 엄두가 안 난다’는 누리꾼들의 댓글까지.

앞으로 한우산업이 마주할 미래는 더욱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산(2026년)·호주산(2028년) 무관세 쇠고기 공습이 예고됐고, 대체육 시장도 크게 성장했다. 각종 환경과 관련한 규제는 지속해 농가를 옥죌 것이고 동물복지를 향한 대중 잣대도 엄격해졌다. 각종 질병 문제는 말할 것도 없다.

비극이 재발하지 않으려면 한우산업계 전체가 뭉쳐 현안에 대응해야 한다. 최근 강원 원주에서 전국한우조합장협의회 소속 조합장들과 전국한우협회 임원진이 한자리에 모여 토론하며 한우고기값 안정화 대책을 마련한 것은 좋은 출발이다. 한우산업을 이끄는 두 조직이 계속해서 합심한다면 앞으로 닥칠 위기도 이겨낼 것이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부디 이번 부음이 마지막이 되길 바란다.

박하늘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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