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436) 음덕암
숨은덕 베풀 후계자 찾았으니
구월산 속의 음덕암은 부처님보다 삼신할미를 더 섬긴다. 산 아래 은율 고을에서 음덕암은 용하기로 소문이 나 있다. 산을 내려오면 개울을 건너야 한다. 개울가에는 세칸 너와집이 산자락에 붙어 있다.
“게 있느냐∼.”
찌그덕 문이 열리고 덕보가 나왔다. “스님, 은율 가세요?” “그려.” 열여덟살 덕보는 심마니다. 구월산을 타지 않을 때는 월천(越川)꾼이 된다. 업어서 내를 건네주고 몇푼 챙긴다. 덕보가 스님을 업고 냇물을 건넌다. “스님, 작년보다 좀 가벼워지신 것 같아요.” “야 이놈아, 내가 가벼워진 게 아니라 네놈의 힘이 더 붙은 게야.”
은율로 간 허몽스님은 삼대독자 백일잔치가 한창인 천석꾼 부자 유 초시 집으로 들어가 상석에 앉았다. 백일 삼대독자를 허몽스님이 꼭 껴안았다. 어린 아기도 스님에게 찰싹 달라붙어 목을 껴안았다. 아기 엄마인 유 초시 며느리는 보이지 않았다.
허몽스님이 아기를 안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만감이 교차했다. 큰상에 놓인 갈비나 너비아니엔 손도 못 대고 나물에만 손이 가고, 약주·청주·매실주는 보기만 하고 감주·수정과만 마셨다. 엽전이 가득 찬 비단 주머니를 받아 유 초시 집을 나온 허몽스님은 걸음을 재촉하여 어둠살이 내릴 때 냇가에 다다랐다.
“게 있느냐∼.”
덕보가 첨벙첨벙 건너왔다. 스님은 덕보에게 업히지 않았다. 유 초시한테서 받은 돈주머니를 덕보에게 주고 손수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린 뒤 개울을 건너 덕보네 집으로 들어가 부싯돌로 호롱불을 켰다.
두어 식경이 지나 덕보가 소갈비 한 짝을 메고 왔다. 스님이 부엌 아궁이에 피워놓은 벌건 참나무 숯불에 갈비를 굽고 덕보는 술독에서 술을 걸렀다. 곡차에 떡이 된 두 사람은 삼경이 지나서야 덕보네 너와집 단칸방에 널브러져 코를 골았다.
음덕암 허몽스님은 돈이 넘쳐났다. 덕보는 부업이 월천꾼이고 주업은 심마니다. 구월산이 손금 보듯 훤해 심심찮게 산삼을 캐낸다. 은율 시내로 가서 한의원과 산삼값을 두고 옥신각신할 필요가 없어졌다. 허몽스님이 모두 사들였다.
덕보가 툇마루에 걸터앉아 하염없이 흐르는 개울물을 바라보고 있는데 건너편에서 아낙네가 소리쳤다. 첨벙첨벙 건너갔다. 양반댁 마님이 월천을 부탁했다. 덕보가 고개를 저으며 “못합니다. 양반댁 마님들은 엉덩이에 제 손을 못 대게 하니 월천을 할 수가 없어요. 강바닥이 얼마나 미끄러운지 알아요?” 볼멘소리를 하니 마님이 “해봤어?” 당차게 쏘아붙인다. 덕보가 어부바를 하자 마님이 떡판 같은 덕보의 등에 찰싹 달라붙어 두 손으로 덕보의 목을 감았다.
덕보의 두 손이 마님의 두쪽 엉덩이를 움켜잡자 마님의 몸은 불덩이가 되고 뜨거운 입김이 덕보의 몸도 달궜다. 개울을 건너자 차양막을 친 덕보의 젖은 바지를 본 마님이 냉수를 찾았다. 둘이서 방으로 들어갔다. 한 몸이 되어 방아를 찧는데 절에서 내려와 개울을 건너려던 다른 마님이 들창문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밑에 깔렸던 마님은 영리했다. 귓속말로 “나도 구경하도록 해줘” 하니 덕보가 알아차렸다. 구경하던 마님은 업자마자 불덩어리였다. 개울을 건너 숲속으로 들어가 치마를 깔아 놓고 뒹굴고 있을 때 먼저 일을 치른 마님이 개울을 건너와 숲속에 나타났다. 서로서로 약점이 잡힌 양반네 마님들은 굳게 입을 다물었다.
비가 추적추적 오던 밤에 허몽스님이 도롱이를 쓰고 덕보네 너와집에 내려와 방구들이 꺼져라 한숨부터 토했다. 잔뜩 곡차를 마시고 나서 “덕보야 너는 알고 있지?” 또 한잔 마시더니 “음덕암에서 백일기도를 드리면 삼신할미가 틀림없이 점지하는 걸.” 덕보가 술 한잔 마시더니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습니다, 스님.” “그런데 큰 문제가 생겼어. 그 비싼 산삼을 먹어도 도대체 일어설 줄 모르네.” “크크크크∼.”
덕보가 웃자 허몽스님은 버럭 화를 내더니 “한평생 월천꾼을 할 게야? 삭발하고 올라와.” 얼마 후 덕보는 입산하여 허몽스님의 상좌가 되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십년이 지났다. 두 스님이 삿갓을 푹 눌러쓰고 은율에 나타났다. 아이들이 동네 골목마다 놀고 있었다. “인중이 긴 걸 보니 자네 아들일세” 허몽스님이 말하자 “쟤는 미간이 넓은 걸 보니 스님 아들이네요” 덕보스님이 말하며 웃었다. “열살보다 나이 많은 아이는 내 아들, 아홉살 아래는 자네 아들이야, 풋풋풋프프.”
그때 열두어살 먹은 한 녀석이 다가오는데 미간도 넓고 인중도 길었다. “홍 진사네 손자야. 낮에는 월천하여 자네 씨를 받고 밤에는 내 씨를 받았어. 헐헐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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