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아래 사장이 둘일 수는 없다?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노동조합법은 노동조합에 가입한 근로자와 사용자 사이에 반드시 직접적인 근로계약관계가 존재하는 경우에 한하여 단체교섭과 단체협약 체결이 가능함을 전제로 하고 있지 않다."
서울행정법원이 지난 1월 12일 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들의 사용자가 맞다는 판결을 내리며 몇 번이나 반복해서 판결문에 담은 내용이다. 소름 끼치는 일이었다. <세상 변하는데 언제까지 20세기 개념 '근로계약' 붙잡고 있나>라는 제목으로 인사이드경제가 나온 바로 다음날이었으니까 말이다.
시대 바뀌는데 변하지 않는 노조법 2조
판결문에는 시대가 바뀌고 기업의 형태와 노무관계, 서비스·유통 등 모든 것이 변화하는데 언제까지 근로계약을 체결한 ‘원사업주’에게만 사용자책임을 지울 것인지 법관들이 가진 답답함이 잘 표현되어 있다.
“복합적 노무관계가 확산됨에 따라 해당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한 지배·결정권도 다면적으로 분화하고, 다층적 사업주 간의 종속성의 정도에 따라 근로조건에 대하여 온전히 책임을 져야 할 원사업주임에도 근로조건 일부에 대하여만 권한과 책임을 갖게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기업은 필요할 때마다 언제든 회사를 분할하기도 하고 자회사를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은 그럴 때마다 노사관계의 엄청난 격변을 겪게 된다. 어제까지 사용자이던 자가 모기업이라며 교섭을 거부하고, 방금까지 작동하던 단체협약은 휴지조각이 되어버린다.
근로계약관계만 붙잡고 있을 경우 자본가들은 외주화·기업분할·특수고용 등 사용자책임을 면제받을 특권이 생기게 되고, 노동자들은 노조·단협이 무력화되며 임금과 노동조건 하락이라는 희생을 혼자 뒤집어써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지금까지 통용되어 왔던 것이다.
EU와의 무역분쟁과 ILO 협약 비준
조금 느리긴 해도 세상의 변화는 법에 반영되는 게 정상이다. 노동자의 형태도, 사용자의 형태도 그동안 엄청난 변화를 겪어왔고 노사관계의 복잡성과 다양성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어찌된 게 노동조합법 2조의 ‘근로자’ ‘사용자’ 개념은 1953년 제정 이후 화석처럼 굳어 있다.
시대의 변화에도 잘 적용될 수 있도록 완벽하게 잘 만들어진 조항이어서 그럴까? 안타깝지만 한국의 노동법은 국제기준에 한참 미달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오죽했으면 노동조합법 2조의 1호 ‘근로자’ 개념이 너무 협소하다는 바로 그 이유로 EU가 문재인 정부 시절 무역분쟁을 제기했겠는가 말이다.(관련 기사 : [인사이드경제] 후진적 한국 노동 정책, 결국 무역분쟁까지 일으키다)
한나라·새누리·국힘 계열의 정권이 들어서도, 민주당 계열의 정권이 들어서도 노조법 2조 개정은 추진되지 않았다. EU가 무역분쟁을 제기하자 문재인 정부는 ILO 결사의 자유 협약 비준에 나섰다. ILO 협약에 담긴 ‘근로자’ ‘사용자’ 개념은 후진적인 한국 노동법에 비해 훨씬 넓은 것이기에 EU의 양해를 얻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보다 못해 나선 법원과 노동위원회
그런데 협약이 비준된 뒤에도 한국 정부는 국제 노동기준에 맞추어 노조법 2조를 비롯한 법제도 정비에 나서지 않았다. ILO 협약 비준은 그저 EU와의 무역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쇼에 불과했던 것일까? 하지만 비준된 협약은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게 되어, 비록 법제도가 개정되지 않더라도 재판과 심판회의 등에서 판단의 근거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보수 양당이 지배하는 국회가 책임을 방기하는 동안, 보다 못해 법원과 노동위원회가 나서게 된다. 지난번 글에서는 특수고용과 플랫폼 부문에서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아도 사용자책임을 인정한 사례들을 소개했는데, 이번 글에서는 원청-하청 관계에서 원청사업주에게 사용자책임을 인정한 사례들을 모아보았다.
한국 정부가 ILO 협약을 비준한 것이 2021년 4월이며,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게 된 것은 그로부터 1년 뒤인 2022년 4월부터이다. 하지만 위 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법원과 노동위원회에서 진일보한 판결·판정이 나온 것은 그보다 앞선다.
거슬러 올라가면 업체 폐업이라는 수단으로 사내하청노조를 탄압한 것을 원청 현대중공업의 부당노동행위로 인정한 2010년 대법원 판결이 있었다. 이처럼 시대의 변화를 적극 반영하려 했던 시도가 10여년 전부터 시작되었고, ILO 협약 비준 이후 이러한 법 해석론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잡은 것이다.
함수도 아닌데 일대일대응 고집
그런데 중노위 판정내용들을 보면 흥미로운 공통점이 발견된다. 인덕대 사건을 제외하면 CJ대한통운·현대제철·대우조선 모두 단체교섭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하나같이 원청사업주와 하청사업주가 ‘함께(공동으로)’ 교섭에 응해야 한다는 판정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CJ대한통운의 경우 ‘대리점주와 함께’, 현대제철의 경우 ‘원청과 하청이 공동으로’, 대우조선의 경우 ‘원청사업주가 하청사업주와 함께’ 사용자로서 교섭에 나서라는 문구를 사용하고 있다. 원청이 책임져야 할 부분은 원청이 교섭에 나서고, 하청이 책임져야 할 부분은 하청이 교섭에 나서면 되지 왜 굳이 ‘함께(공동으로)’ 하라는 걸까?
바로 여기에 ‘근로계약관계’처럼 박물관으로 보내야 할 고정관념이 녹아 있다. “노동자에게 책임을 져야 할 사용자는 하나여야 한다"는 것이다. “하늘 아래 섬겨야 할 임금이 둘일 수 없다”는 왕정시대 고리타분한 관념을 닮은 이 논리는, 놀랍게도 지난 70여년간 한국의 보수적인 노동법 학계를 지배해온 관념이었다.
노사관계 성립에 (명시적이건 묵시적이건) 근로계약관계를 요구해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근로계약서에 ‘갑(甲)’과 ‘을(乙)’ 칸에 이름을 적은 당사자가 각각 노동자, 사용자로 특정된다는 것이다. 근로계약서에 이름도 적지 않은, 아예 근로계약을 체결하지도 않은 이를 사용자로 볼 수는 없다는 것.
그러다가 시대의 변화와 ILO 협약 비준이라는 계기점이 발생하자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어도 지배력·영향력이 있는 이들을 사용자로 확장하긴 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 사용자는 분리된 것이 아니라 원사업주(하청사업주)와 ‘함께(공동으로)’ 사용자 지위에 있다는 것. 여전히 “사용자는 하나여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벗어나진 못한 것이다.
(아직 대우조선 관련 중노위 판정문이 나오지 않아 속단하긴 어렵지만, 예상컨대 바로 이 문제 그러니까 “사용자는 하나여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문제가 되었을 것이라 추정해본다. 하청과 원청이 ‘공동으로’ 사용자가 되니까 쟁의권도 하나, 그러니까 하청사업주를 상대로 한 쟁의권으로 만족하라는 것.)
문제의 노동행정 편의주의
대체 어떻게 이런 고리타분한 관념이 통용되어 온 것일까? 답은 정부의 행정편의주의에 있다. 노사관계, 고용관계가 발생할 경우 정부는 노동자들에게 근로소득세를 비롯해 국민연금·건강보험·고용보험 등의 사회보험료를 징수해야 한다.
한국의 경우 보험료 징수 시스템이 어떻게 되어 있을까? 고용노동부나 근로복지공단이 직접 노동자에게 징수하지 않는다. 사용자인 기업들이 노동자들의 임금에서 세금과 보험료를 원천징수하여 국세청과 공단에 납부하는 방식, 즉 사용자가 보험료 징수업무를 대리하고 있다.
그런데 만일 사용자가 하나가 아니라 둘 또는 셋이라면? 노동행정을 편하게 하고 싶어하는 관료들 입장에서는 머리를 쥐어뜯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절대 안 돼! 사용자는 반드시 한 명이어야 해! 안 그러면 우리가 일일이 보험료 걷으러 다녀야 한단 말이야. 그건 정말 끔찍한 일이지!”
사실 끔찍한 일은 노동자들이 겪어왔다. 이 어처구니없는 행정편의주의 발상 때문에 사용자는 반드시 하나여야 한다는 어이없는 고정관념이 통용되어 왔으니 말이다. 이 고리타분한 개념은 단체교섭을 둘러싼 사용자책임만이 아니라 고용보험·산재보험 영역에서도 수많은 문제를 일으킨 바 있다. 그 내용은 다음 글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지배력 행사하는 노동조건에 대해 책임져야
다행스럽게도 CJ대한통운 관련 서울행정법원 판결은 중노위가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고정관념을 벗어나고 있다. 앞에서 인용한 판결문 내용을 다시한번 읽어보자.
“복합적 노무관계가 확산됨에 따라 해당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한 지배·결정권도 다면적으로 분화하고, 다층적 사업주 간의 종속성의 정도에 따라 근로조건에 대하여 온전히 책임을 져야 할 원사업주임에도 근로조건 일부에 대하여만 권한과 책임을 갖게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렇기 때문에 원사업주(하청사업주)에게만 단체교섭의무를 부담시키면 노동기본권을 온전히 보장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여러 가지 노동조건 중 임금·노동시간·휴가에 대해 각각 A, B, C라는 사용자가 지배·결정하고 있다면, 임금에 대해서는 A가 사용자책임을 지고, 노동시간과 휴가에 대해서는 각각 B, C가 사용자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판결문이 얘기하고 있는 것처럼 복합적 노무관계가 확산되며 시대가 변화하고 있다. 노동과 고용의 형태, 노무제공의 방식도 요동을 치고 있다. 판결의 대상이 된 택배처럼 원·하청 관계도 복잡해지고 있지만, 여러 플랫폼에서 동시에 일감을 얻는 플랫폼노동처럼 사용자는 하나둘이 아니고 서넛 이상이 되는 경우도 자주 볼 수 있다.
“그럼 노사관계는 어떻게 규율합니까? 사회보험 관련해서도 복잡해지지 않나요?” 시대의 변화를 법제도가 따라가려 하면 뭔가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라고 걱정하시는 분들이 있다. 하지만 걱정 붙들어매셔도 된다. 전혀 복잡해지지 않으며 어떤 의미에서는 매우 명쾌하고 단순해지니까 말이다. 다음 글에서 그 메커니즘이 어떻게 가능한지 자세히 얘기해보도록 하자.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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