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기부했는데 답례품이 ‘중국산 참기름’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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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지방자치단체가 100% 수입 원재료로 만든 가공식품을 고향사랑기부제(고향기부제) 답례품으로 선정해 논란이 예상된다.
박상헌 한라대학교 고향사랑기부제지원센터장(ICT융합공학부 교수)은 "고향사랑e음에서 수입 원재료로 만든 물품을 답례품으로 취급하는 건 제도 취지에 어긋날 뿐 아니라 일반 쇼핑몰과 다를 것이 없다"며 "정부가 지자체의 답례품과 답례품 선정 기준 등을 조사·분석해 제도를 시행하는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품목은 시정하도록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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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지자체 제도 취지 ‘무시’
행안부 조례안은 강제성 없어
외국산 재료 활용 사례 늘듯
“정부, 품목선정 대책 마련을”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100% 수입 원재료로 만든 가공식품을 고향사랑기부제(고향기부제) 답례품으로 선정해 논란이 예상된다.
18일 기준 고향기부제 누리집 ‘고향사랑e음’의 답례품 검색창에 ‘수입’을 검색하면 2개의 상품이 뜬다. 이는 A광역시의 B자치구가 답례품으로 등록한 참기름·들기름으로 모두 100% 중국산 참깨·들깨로 만들었다. 제품을 생산한 지역 식품업체는 답례품 설명에 ‘100% 최상급 참깨·들깨만’ 사용해 만들었다는 점을 자랑처럼 올려놨다. 이 자치구는 또 다른 식품업체가 호주산 소갈비와 중국산 대파·생강으로 만든 왕갈비탕 제품도 답례품으로 등록해놨다.
이처럼 지역 업체가 생산했다는 이유만으로 수입 원재료를 쓴 답례품을 용인하는 사례는 대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외국산 호박씨·해바라기씨·귀리·아몬드·마카다미아 등으로 만든 수제 그래놀라 선물세트, 중국·칠레·이집트산 원재료로 생산한 블렌딩차, 외국산 원두를 쓴 커피 등 종류도 다양하다.
당초 고향기부제는 열악한 지방 재정을 확충하고, 답례품으로 우리 농축산물의 소비를 촉진해 농촌 등의 소멸위기를 막겠다는 목표로 출발했다. 그러나 뚜렷한 지역 농특산품이 없는 도시에서 무분별하게 수입 원재료로 만든 제품을 답례품으로 선정하면서 제도 취지가 무색해졌다.
이처럼 지자체가 수입 원재료를 쓴 제품을 답례품으로 정한 건 제도적인 규제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고향사랑기부금에 관한 법률’은 ▲지역특산품 등 해당 지자체의 관할 구역에서 생산·제조된 물품 ▲지자체가 해당 지자체의 관할 구역에서만 통용될 수 있도록 발행한 상품권 등 유가증권 ▲그밖에 해당 지역의 경제 활성화 등에 기여할 수 있는 것으로서 조례로 정하는 것을 답례품으로 선정하도록 했다.
이에 관해 행정안전부는 고향기부제 참고 조례안에 친환경농수산물, 무항생제 축산물 등과 함께 ‘농수산가공품 등의 제조품은 관할 구역 안에서 생산하는 원재료의 사용 비율이 50% 이상인 품목’을 우선 선정하도록 명시했다. 이 내용대로라면 수입 원재료로 만든 제품이 답례품으로 선정될 가능성은 낮다. 문제는 정부의 참고 조례안엔 강제성이 없는 만큼 지자체 조례에서 해당 항목을 뺀 곳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수입 원재료를 활용한 제품을 답례품으로 정한 도시 대부분이 고향기부제 조례에 지역 생산 원재료를 50% 이상 사용한 농산가공품을 우선 선정하는 내용을 명시하지 않았다.
이렇게 규제가 미비한 상황에선 수입 원재료로 만든 답례품을 선정하는 사례가 더욱 빈번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특별한 농특산품이 없는 대도시는 수입 원재료를 쓴 답례품을 선정하는 데 있어 지역경제 활성화와 값싼 가격을 명분으로 삼는다.
B자치구 관계자는 “농축수산물 등 특산품이 적은 도시라 답례품을 정할 때 지역에 기반을 둔 업체가 생산·제조한 물품에 중점을 뒀다”면서 “수입 원재료를 사용한 제품을 답례품으로 선정하는 데 부담은 있었지만 가격 등을 고려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선 더 늦기 전에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박상헌 한라대학교 고향사랑기부제지원센터장(ICT융합공학부 교수)은 “고향사랑e음에서 수입 원재료로 만든 물품을 답례품으로 취급하는 건 제도 취지에 어긋날 뿐 아니라 일반 쇼핑몰과 다를 것이 없다”며 “정부가 지자체의 답례품과 답례품 선정 기준 등을 조사·분석해 제도를 시행하는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품목은 시정하도록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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