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尹발언 논란 속 '은근슬쩍' 동결자금 압박… 갈등 재점화 양상
정부 , '제2의 한국케미호' 사태 벌어질까 관련 동향 예의주시
(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의 최근 '아랍에미리트(UAE)의 적은 이란' 발언을 계기로 우리나라와 이란 외교당국 간에 심상찮은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특히 이란 당국은 윤 대통령의 해당 발언뿐만 아니라 미국의 대(對)이란 제재 때문에 국내에 동결돼 있는 이란의 원유 수출 대금(70억달러) 문제까지 거론하며 우리 측을 압박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이란 양국 간 외교 갈등이 앞으로 본격화될 수 있단 전망이 나오고 있다.
조현동 외교부 제1차관은 19일 사이드 바담치 샤베스타리 주한이란대사를 청사로 초치해 논란이 된 윤 대통령 발언은 △'UAE 아크부대 장병 격려 차원'에서 한 것으로서 △'한·이란 관계와 무관하다'는 정부 입장을 재차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UAE를 국빈방문 중이던 지난 15일 현지에 주둔 중인 우리 군 UAE 군사협력단 '아크부대' 장병들을 만난 자리에서 "우리의 형제 국가 UAE의 안보는 바로 우리 안보"라며 "UAE의 적은, 가장 위협적인 국가는 이란이고 우리 적은 북한이다. 우리와 UAE가 매우 유사한 입장에 있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는 윤 대통령의 해당 발언이 보도된 뒤 이란 측에서 그 배경 설명을 요구하는 등 논란이 일자 서울과 이란 테헤란의 외교채널을 통해 그 취지와 배경, 그리고 한·이란관계 등에 대한 입장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후에도 이란 측은 주한대사관을 통해 우리 측에 윤 대통령 발언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는가 하면, 이란 외교부는 윤강현 주이란대사를 초치해 항의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였다.
조 차관이 이날 샤베스타리 대사를 초치한 건 일단 이란 외교부의 우리 대사 초치에 따른 '비례적 대응'에 해당한다.
다만 외교부 내부적으론 이란 당국이 우리 대사 초치 과정에서 윤 대통령의 'UAE의 적은 이란' 발언과 무관한 동결자금 문제나 윤 대통령의 우리 국방부 연두 업무보고 당시 발언까지 문세삼았단 점에서 이란 측의 추가 행동 가능성을 주시하는 분위기다.
특히 레자 나자피 이란 외교부 법무·국제기구 담당 차관은 윤 대사를 상대로 국내 동결자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유효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양국 관계를 재검토할 수 있다"고 '위협'하기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측은 지난 2021년에도 동결자산을 문제삼아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던 우리 선박 '한국케미호'를 95일간이나 억류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란의 동결자산 문제는 미국 등 국제사회의 대이란 제재와 맞물려 있기 때문에 우리 정부 노력만으론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는 게 우리 외교부의 설명이다.
미 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 시절이던 2018년 이란의 비밀 핵개발 의혹을 이유로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탈퇴를 선언하고 대이란 경제제재를 복원했다. 이후 미 정부는 2021년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JCPOA 복원 협상에 나섰지만 대이란 제재는 아직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우리 외교부는 그간 이란 측과 외교적 협의가 진행될 때마다 동결자금 해제를 위핸 JCPOA 복원과 제재 해제가 선행돼야 한다는 점을 누차 설명해왔으며, 작년 1월엔 미국·유엔 등과 협의를 거쳐 이란의 미납 유엔 분담금을 국내 동결자금을 활용해 납부해주는 등의 편의도 제공했다.
그러나 이란 측의 동결자금 해제 압박은 이후에도 계속돼왔으며, 이번 윤 대통령 발언 논란을 계기로 그 강도가 더 세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선 이란 핵문제가 결국 제재 복원을 불러왔단 점에서 이란 당국이 윤 대통령의 최근 국방부 업무보고 당시 발언을 두고 "핵확산금지조약(NPT)에 위배" 운운한 건 적반하장에 가깝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 대통령은 이달 11일 국방부로부터 연두 업무보고를 받은 뒤 "북핵 문제가 더 심각해질 경우"란 전제 아래 "대한민국에 전술핵 배치를 한다든지 우리 자신이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는 등의 발언을 했다.
이에 대해 조 차관은 이날 샤베스타리 대사에게 윤 대통령 발언이 'NPT 위반'이란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는 문제 제기"라며 "대통령 발언은 날로 고조되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확장억제'의 실효성을 강화해가자는 취지로 얘기한 것"이라고 밝혔다고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이 전했다.
현재 우리 정부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우리 선박들에 '주의보'를 발령할지 여부 등을 놓고 관련 부처 간 협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ntig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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