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개혁을 위한 믿을 언덕 '셋'[광화문]
지난해 7월 국내 완성차 업계 관계자를 만났을 때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고 좀처럼 지지율이 오르지 않던 시기였다. 경직된 노동 시장, 기업인에 대한 과도한 처벌로 인한 사법 리스크, 강성 노조에 의한 잦은 파업 등 한국 노동 시장에 대한 문제 의식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노동 개혁이 이뤄지지 않으면 '제조업 한국'의 미래도, 해외 기업들의 투자 유치도 암울하다고 주장했다.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론 윤 대통령 임기 초반의 낮은 지지율이 걸림돌처럼 느껴졌다. 큰 개혁을 끌고 나가기 위해선 국민적인 지지가 필요한데 아무래도 동력이 약하지 않을까하는 걱정이었다.
하지만 낮은 지지율로 잃을 게 없을 때 오히려 승부수를 띄워볼만 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민주노총 등 강성 노조에 겁만 먹을 게 아니라 노동 개혁이란 국가 대계를 위해 나아가다 보면 국민들의 지지를 얻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겠냐는 거였다. 실제로 개혁에 성공한다면 그것 하나만으로도 역대 어느 정부 못지 않은 성과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거대 노조의 벽에 한없이 약했던 우리 정치권의 생리를 생각하면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남았다.
의문 부호는 몇달만에 느낌표로 바뀌었다. 바닥을 기던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반등한 계기가 11월 화물연대 파업이었다. 정부가 화물연대 총파업에 대해 "불법과의 타협은 없다"며 법과 원칙을 앞세워 강경하게 대응하면서 지지율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화물연대가 11월24일 안전운임 일몰제 영구 폐지 등을 주장하며 파업을 개시하자 정부는 닷새 후 시멘트 운송에 사상 최초로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다. 12월 8일에는 철강과 석유화학 업종에 대해서도 추가로 업무개시명령을 내렸다. '무타협 방침'을 이어나가자 화물연대는 다음 날 조합원 투표를 통해 집단운송 거부를 철회했다.
매주 발표되는 리얼미터 여론조사 기준으로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줄곧 30% 초반에 머물다 화물연대 파업 이슈가 본격화된 11월 셋째주 이후 상승세를 탔다. 12월 셋째주 41.1%로 24주만에 40%선을 회복한 데 이어 1월 첫째주까지 4주 연속 40%대 지지율을 유지했다.
노동 개혁의 필요성에는 대다수 전문가들이 동의한다. 노동 시장 경쟁력의 중요한 지표로 꼽히는 고용률, 노동 유연성, 노동 생산성 등이 모두 주요 선진국들에 비해 한참 뒤쳐진 상황이다. 우리 노동 관계법 자체가 1970~80년대 가혹했던 공장의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 지금까지 계속되면서 한계에 달했기 때문이다. 현행법은 1987년 개정한 노동법을 근간으로 두고 있다. 당시 약자였던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노조에 힘을 실어주는 보호장치 등을 도입했는데, 노동자 처우는 30여년간 크게 개선됐지만 법은 그대로다.
구체적인 개혁 과제들도 이미 나와 있다. 주 52시간제 개선, 파견 업종 범위 확대, 해고 규정 완화 등 고용 유연화, 파업에 대한 대항권으로서 대체근로 확대, 사측에만 적용되는 부당노동 행위 규정 보완, 기업인에 대한 과도한 형사처벌 완화 등 노사간 힘의 불균형 조정,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고용 양극화 해소 등이다.
번번이 노동 개혁에 실패했던 건 국만 공감대가 부족했고, 노조의 표와 영향력을 의식한 정치권이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던 탓이 크다. 이번에도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노조의 영향력이 여전히 막강하다. 표에 목을 맬 수 밖에 없는 정치권의 속성도 여전해 보인다. 법 개정을 위한 국회 문턱도 여소야대로 높다.
믿을 건 윤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현 정부의 개혁의지다. 시대 변화를 외면한 강성 노조에 대한 국민적인 비판 여론이 높다는 것도 동력이다. 더이상 늦출수 없다는 절박함은 무기다. 개혁의지, 국민, 절박함으로 무장하고, 노사와 야당의 동의를 끌어낼 수 있는, 강력하고 현명한 추진력을 기대해본다.
진상현 산업1부장 jisa@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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