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은둔 청년
작년 5월 국내 어느 4층짜리 건물에서 신고가 들어왔다. 건물 원룸의 냄새가 너무 지독하다는 것이었다. 20대 청년이 1년여 전부터 월세로 살던 곳이었다. 강제로 문을 여니 방 전체가 쓰레기였다. 침대 위만 빼고 음식물과 비닐봉지가 가득했다. 청년은 8년 전부터 가족과 떨어져 살던 외톨이였다. 청년의 부모는 “아이가 열다섯 살 때부터 방에서 게임만 했다”고 했다.
▶이런 은둔 청년들의 도피처는 게임과 잠이다. 1년 반 은둔 생활을 했다는 어느 청년은 언론과 인터뷰에서 “게임 하는 게 괴로워서 기절할 정도가 되면 고꾸라지듯 잠들었다”고 했다. 최근엔 ‘은둔 청년 고독사’까지 발생했다. 2년 전 대전의 한 원룸에서 32세 여성이 숨졌는데 방에는 성인 남성 허리 높이만큼의 쓰레기가 가득 차 있었다.
▶청년들이 은둔에 빠지는 계기는 취업 실패가 많다. 대전 원룸에서 숨진 여성 방에도 책장엔 ‘2주 완성 면접 대비’ 같은 취업 관련 서적이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전문가들은 “초경쟁 사회에서 좋은 직장을 갖지 않으면 루저(패배자)로 낙인찍는 문화 때문에 청년들이 실패 경험을 견디기 어려워한다”고 했다. 이런 은둔 청년의 전(前) 단계가 니트(NEET·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족이다.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백수다. 코로나로 세계적으로 니트족이 증가하면서 은둔 청년도 덩달아 늘고 있다고 한다. 국내 니트족은 2020년 43만여 명으로 전년보다 24% 늘었다.
▶니트족 장기화가 부정적 영향을 준 대표 사례가 일본이다. 1990년대 장기 불황이 시작되면서 취업 적기를 놓친 청년들이 집에 틀어박히면서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가 됐다. 니트족이 병적 증세까지 보이는 히키코모리가 된 것이다. 당시 20~30대였던 히키코모리는 이제 40~50대 중장년이 됐다. 일본 내각부 조사에 따르면 40~64세 히키코모리 인구가 61만명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4년 전엔 도쿄에서 농림수산성 차관까지 지낸 70대 아버지가 게임에 빠져 부모에게 폭력을 휘두르던 히키코모리 40대 아들을 살해한 일도 있었다.
▶서울시가 19~39세 서울 청년 중 4.5%인 13만명이 고립·은둔 상태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이 중 55%는 거의 외출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집에서만 생활하는 기간이 5년 이상 장기화한 청년도 28%에 달했다. 이 은둔 청년은 니트족과 히키코모리의 중간쯤으로 보인다. 이들이 하루라도 빨리 세상의 햇빛 속으로 나올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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