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건설사 돈이 노조 상부로 흘러간 경로 추적”
19일 오전 8시 10분쯤 경찰 수사관들이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민노총 건설노조 경기북부지부 사무실에 들어서자, 노조 관계자들이 이들 앞을 막아섰다. 이곳 간부 4명과 혐의가 적시된 압수 수색 영장을 제시했지만 노조 측은 “현장에서 목숨 걸고 일하는 노동자들이 부패 세력이냐”며 영장 집행을 막았다. 양측의 대치는 1시간 동안 계속됐다.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는 이날 민노총·한노총 산하 건설노조, 건설연대 같은 중소 규모 노조를 포함해 노조 8곳의 사무실 14곳을 압수 수색했다. 경찰에 따르면, 노조 8곳의 간부 등 조합원 20여 명은 서울 19개 건설 현장의 건설업체 15곳에 1200명 안팎의 노조 조합원 채용을 강요하고, 노조 전임비 명목 등으로 6억5000만원 상당을 요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압수 수색을 통해 확보한 자료를 분석하면 규모가 커질 수 있다”고 했다.
경찰이 대대적인 압수 수색에 나선 것은 간부들이 행한 범행에 노조 상부 조직이 관여한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은 최근까지 수도권 일대 주요 건설 현장의 불법행위를 수사하다 복수의 피해자에게 “노조 지도부가 건설 현장에 채용을 요구하라고 지시했다”거나 “지도부가 (해당 건설 현장에서) 우리 노조 고용률을 70%까지 달성하라는 구체적인 지시를 했다” “지도부가 요구한 고용률 달성을 위해 협박했다”는 등과 같은 진술을 여럿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몇몇 피의자나 일부 노조 지부의 일이 아니라 노동조합 차원의 조직적인 범행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수사 중”이라면서 “피해자들에게 받은 돈을 노동조합 명의 계좌로 직접 입금받거나, 개인 명의 계좌로 받은 뒤 노동조합으로 송금한 정황도 있다”고 했다. 이날 경찰은 9시간 안팎에 걸쳐 14곳에서 휴대전화 22대와 컴퓨터 문서 파일 등 1만7000점, 계좌 내역, 장부 등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확보한 자료들을 통해 노조 상부로 자금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이 돈을 어떻게 썼는지 등을 추적할 것”이라고 했다.
이날 서울경찰청과 경찰청에 따르면, 민노총 건설노조 산하 노조 간부들은 2020년 초부터 신축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건설업체들에 “민노총 소속 조합원들을 고용하라”고 협박한 혐의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약 3년간 업체 13곳이 피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노조 소속 간부들은 지난 2020년 수도권의 한 건설 현장에서 “민주노총만 노조냐, 우리도 무조건 채용해라. 채용하지 않으면 가만 있지 않겠다”고 협박한 후 자기 조합원 20명을 채용시킨 혐의도 받고 있다. 비슷한 방식으로 확성기가 달린 승합차와 조합원들을 동원해 공사 진행을 방해할 것처럼 협박해 조합원 240명을 채용시킨 사례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각 노조는 “우리는 정당하게 현장에서 불법행위가 있으니 신고하겠다는 취지이지 공갈이 아니다” “우리 조합원 채용 계획이 있는지 묻는 교섭이지 공갈이 아니다”라는 취지의 주장을 하고 있다.
이 같은 건설노조 불법행위 수사는 전국으로 확대되고 있다. 경찰은 작년 12월 초부터 특별 단속을 벌인 결과 경기 남부, 경북, 경남 지역 등 전국 건설 현장에서 각종 불법행위를 한 혐의로 지난 18일까지 관련자 1800여 명을 수사했거나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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