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세종문화회관 위치 바뀌나… “문래동→여의도로 검토”
지난 1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도심 30층 주상 복합 아파트 아래로 땅 1만3000㎡(약 4000평)가 텅 비어 있었다. 방림방적 공장이 있던 곳이다. 부지를 둘러싸고 3m 높이 공사장 펜스가 서 있었다. ‘이곳에 곧 제2 세종문화회관이 옵니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을 뿐 부지엔 잡초만 무성했다.
서울시와 영등포구는 2019년 이곳에 ‘제2 세종문화회관’을 짓기로 했다. 하지만 5년째 설계 작업에도 착수하지 못했다. 서울시는 작년 7월에야 설계안을 마련할 국제설계공모위원회를 구성했지만 이후 사업 진행이 안 되고 있다.
최근 조용했던 이곳이 다시 들썩이고 있다. 지난해 7월 취임한 최호권(국민의힘) 영등포구청장이 제2 세종문화회관 사업 재검토를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최 구청장은 19일 본지 통화에서 “사업을 면밀히 검토해 보니 영등포구 땅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도 문제인데다 구민들이 실질적으로 누릴 수 있는 혜택이 거의 없다”며 “부지 크기도광화문 세종문화회관의 4분의 1밖에 안 돼 이름에 걸맞은 시설을 짓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그는 “문래동에는 구립 문화 시설을 짓고 제2 세종문화회관은 여의도공원이나 영등포공원 등에 짓는 게 낫다고 본다”며 “구의회와 협의해 다음 달 시민 토론회도 열 계획”이라고 했다.
하지만 최 구청장의 사업 재검토 방침에 당장 문래동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제2 세종문화회관 부지 인근 아파트에 사는 서지주(40)씨는 “세종문화회관이 생긴다고 해서 이사 왔는데 무슨 구립 문화회관이냐”며 “동네 주민들도 구청에 민원을 넣자고 아우성”이라고 했다. 문래동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박모(47)씨는 “제2 세종문화회관이 들어오면 상권 자체가 바뀔 거라고 생각해 가게를 연 상인이 많은데 실망이 크다”며 “그동안 낙후됐던 곳이 문화도시로 발전할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는 것 같다”고 했다.
영등포구의회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나왔다. 문래동이 지역구인 김지연(더불어민주당) 구의원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최 구청장이 작년 지방선거 때 제2 세종문화회관 신속 건립을 공약해 놓고 이제 와서 갑자기 말을 바꾼다”고 했다. 정선희(민주당) 영등포구의회 의장은 “수년간 추진해 온 사업을 갑자기 접는 것은 문제”라며 “제2 세종문화회관이 지역 경제에 미칠 파급 효과를 생각하면 포기해선 안 된다”고 했다. 영등포구의회는 ‘제2 세종문화회관 건립 지연 등 행정사무 조사 특위’를 만들어 영등포구에 대한 조사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다만 여의도 주민 중에서는 문래동보다 여의도에 건립하는 게 낫다는 의견도 있다. 여의도에 사는 직장인 이은혜(33)씨는 “영등포구 전체를 보면 여의도에 제2 세종문화회관, 문래동에 구립 문화회관을 짓는 게 더 이익 아니냐”고 했다.
사업의 키를 쥔 서울시는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다만 내부적으로는 여의도에 제2 세종문화회관을 짓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는 한강을 세계적 관광 명소로 만드는 ‘선셋 프로젝트’ 등을 추진 중인데 여의도 한강 변에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같은 공간을 만들자는 구상이 논의되고 있다.
제2 세종문화회관 건립 사업은 2019년 본격 시작됐다. 서울에는 종로구 세종문화회관과 서초구 예술의전당이 대표적인 문화 시설인데 1970~1980년대 개관해 최신 시설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래서 계획한 게 문래동 제2 세종문화회관과 도봉구 창동 서울아레나다. 서울시는 2020억원을 들여 총 1900석 규모의 뮤지컬, 대중음악 공연장으로 제2 세종문화회관을 기획했다. 영등포구가 무상으로 땅을 제공하고 서울시가 건립하기로 했다.
하지만 2021년 정부의 중앙투자심사에서 ‘재검토’ 결과가 나와 사업이 지연되기 시작했다. 부지가 좁아 객석 수 등 규모를 축소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이에 서울시는 보완 계획을 제출해 조건부 승인을 받았다. 서울시는 당초 이번 달에 국제 현상설계 공고를 할 예정이었지만 논란이 일면서 2028년 5월 개관 목표는 맞추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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