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워크레인 기사들 月1000만원 웃돈… 업체 “기사들 노조에 상납”
지방에서 350가구 규모 아파트를 건설 중인 K사는 현장 직원 90%가 소속된 노조의 상급 지부 간부에게 매달 300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현장 노조원들을 관리한다는 명분이었다. 하지만 이 간부는 상견례 후 6개월 넘도록 현장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다. 그사이 다른 노조 10곳에서 “우리 노조원도 채용하라”며 공사 현장을 찾아왔다. 채용을 거부하자 공사 차량 통행을 방해했다. K사는 ‘위로비’ 명목으로 이들에게 500만원씩을 쥐여주고 돌려보냈다. K사 관계자는 “동네 ‘양아치’도 이렇게는 안 할 것”이라며 “건설 바닥은 이미 노조에게 완전히 장악당한 지 오래”라고 말했다.
노조 횡포로 인한 건설 현장 피해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소규모 건설 회사뿐 아니라 대형사들도 채용 강요와 금품 요구 등 노조의 불법적 요구에 속수무책 끌려가고 있다. 노조 눈 밖에 났다가 작업이 중단되거나 민원이 제기되면, 공사가 지연되면서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노조의 불법행위로 불어난 비용은 결국 분양가에 반영돼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돈 내라” 조폭 같은 노조
국토교통부가 최근 실태 조사를 통해 전국 1494곳 건설 현장에서 파악한 2070건의 노조 부당 행위 중 가장 심각한 것은 타워크레인 기사들의 월례비 요구(1215건)였다. 피해 사례 10건 중 6건꼴이다. 타워크레인은 골조 공사와 자재·장비 운송을 담당하기 때문에 공사 현장에서 핵심적인 장비다. 노조는 이런 타워크레인을 앞세워 공사 현장을 쥐락펴락하는 것이다.
현장에 투입된 노조 소속 타워크레인 기사들은 일부러 작업을 천천히 해 연장근로 수당을 챙기고 건설사를 초조하게 만든다. 예전엔 이런 태업을 막기 위해 업체들이 기사들에게 ‘담뱃값’ 명목으로 몇 만원씩 쥐여줬다. 하지만 노조의 불법적 요구가 갈수록 대담해지면서 지금은 매달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1000만원까지 월례비 명목의 웃돈을 지급하는 것이 관행처럼 자리 잡았다. 타워크레인 기사는 매달 1000만원 이상 벌 수 있어 ‘월천(月千) 기사’라는 은어까지 생길 정도다. 한 중견 건설사 대표는 “웬만한 대기업 직원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보니 기사들이 일감을 따내기 위해 노조 간부에게 돈을 상납하기도 한다”며 “이권을 두고 이전투구하는 모습이 조직폭력배와 다를 게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노조가 전임자 활동비나 발전 기금처럼 건설 현장과 아무 관련 없는 돈을 요구하는 경우도 흔하다. 노조 지회 간부의 월급을 건설사에 요구하고, 비정기적으로 발전기금이나 위로금 명목으로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천만 원씩 달라고 한다. 지방의 한 건설사 임원은 “노조 간부 아들이 야구부라는 소식을 듣고 일본산 고가 배트를 선물했더니 좋아하더라”며 “노조 때문에 시끄럽던 현장이 선물 후 조용해지는 것을 보면서 자괴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非노조원 일감 빼앗기도
건설사들이 비(非)노조원을 고용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럴 경우 노조가 공사 현장 앞에서 시위를 하며 차량 진입을 막고, 안전모 미착용 등 사소한 위반 사안을 지속적으로 신고하며 괴롭히기 때문이다. 노골적으로 비노조원의 일감을 빼앗기도 한다. 실제 민노총이 부산·경남 일대 주요 현장을 찾아다니며 비노조원과의 계약을 해지하도록 압박한 사실이 드러나 경찰이 수사 중이다. 2021년 9월에는 노조 방해로 일감이 끊긴 한 근로자가 부산의 건설 현장에서 분신을 시도한 일도 있었다. 경기 성남의 한 아파트 현장에선 서로 일감을 차지하려는 민노총과 한노총 조합원들이 집회를 열면서, 한 달 넘게 조업에 차질을 빚기도 했다. 건설사 관계자는 “처음엔 비노조원이던 인부들이 결국 일감을 얻기 위해 노조에 가입하고, 나중에 노조의 불법행위에 동참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박광배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노조의 불법행위에 대한 엄정한 법 집행을 통해 건설 산업이 지속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며 “건설 사업자와 비노조 근로자의 권리가 보장돼야 건설 현장이 정상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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