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30] 전기 충전소의 트럭 기사들
전북 익산에서 매일 서울 신월동 골목시장으로 채소를 배달하는 이명주(53)씨는 하루 꼬박 4시간은 고속도로 휴게소에 발이 묶인다. 기름 값을 아끼려 1t 탑차를 전기차로 샀는데, 배터리가 얼마 못 가 뚝뚝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루 왕복 400㎞ 정도로 주행 거리가 길다 보니 한 번에 완속으로 40분씩 올라가다 두 번, 내려가다 두 번은 충전기를 꽂아야 운행이 가능하다. 이씨는 “배달로 먹고사는데, 전기 트럭으로 처음 나는 겨울이 아주 혹독하다”고 했다.
최근 고속도로 전기 충전소에서 만난 전기 트럭 기사들은 하루에 4~5번씩 충전하면서 생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충전에 하루에 서너시간을 쓰는 셈이다. 시간이 곧 돈인 배달 기사들은 애가 탄다. 1t 포터 전기차로 배달일을 하는 박모씨는 일을 마치고도 집에 갈 배터리가 없어 밤 9시가 넘도록 고속도로에서 충전기를 꽂고 있었다. 박씨는 “추운 날씨에는 충전 속도도 더디다. 빨리 가서 자고 내일 새벽에 배달해야 하는데 정말 애가 탄다”라고 했다. 전기 트럭 기사들은 잠을 줄여가며 일한다. 1t 포터 전기차를 타는 김모씨는 “충전하는 시간 동안 일을 못 하니 잠을 줄여서 배달해야 한 달 수입이 나온다”고 했다. 기사들은 요즘 1t 전기 트럭의 졸음 운전 사고가 유독 잦아졌다고 말한다. “깜빡 졸다가 급브레이크를 밟아 물건을 다 쏟은 경우도 봤다”고 했다.
정부는 환경 개선을 위해 공해 발생 주범으로 꼽히는 화물차의 전기차 전환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2018년 11월 말부터 지난해 4월까지 3년 넘게 친환경 전기 화물차에 한해 영업용 번호판을 무상으로 발급했다. 이 영향으로 2019년 12월 기준 1140대였던 전기 화물차는 지난해 12월 8만1236대로 폭증했다. 또 오는 4월 경유차는 택배 시장에 새로 진입할 수 없도록 하는 ‘대기관리권역의 대기환경개선특별법’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 법이 시행되면 새로 택배업을 할 때는 전기 트럭 또는 액화석유가스(LPG) 모델 등 친환경 차로만 할 수 있다. 택배사들은 “대체 차량 준비나 충전 인프라를 갖추는 데 시간이 촉박하다”며 법 시행을 미뤄달라고 하고 있다.
급격한 전기차 도입은 혼란을 일으킬 우려가 크다. 정부의 친환경 드라이브, 전기차 보급 속도에 비해 충전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현재 전국에 보급된 충전기는 총 19만2000기 정도지만 급속 충전기는 1만9000기뿐이다. 전기 트럭은 현재 기술로는 초급속 충전도 불가능하다. 전기 트럭이 충전을 못 해 고속도로 한가운데서 멈춰선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 물류 대란이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다.
한 전기 트럭 기사의 말이다. “우리도 친환경 좋다. 그런데 요즘은 1분 만에 기름 넣고 일하러 가는 디젤차가 너무 부럽다. 전기 트럭 타도 먹고살게는 해줘야 할 거 아닌가.” 이들에게 전기차 운전은 단순히 이동이나 드라이브 개념이 아닌 생업이다. 미래 세대와 환경에 대한 고민도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돼야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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