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식의 이세계(ESG)] 안정된 노사문화, 돈 그 이상의 것이 있다
지난해 12월26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정부세종청사에서 연 브리핑을 통해 민주노총 금속노조가 탈퇴를 방해한 포스코지회에 대해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노동위원회 의결을 통해 시정명령 등 필요한 행정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민주노총 금속노조 포스코지회는 금속노조 탈퇴(산별노조에서 기업별 노조로 조직 형태 변경)를 선언하고 조합원 투표를 두 차례나 진행했다. 두 차례 모두 탈퇴 승인 요건인 3분의 2(66.67%)를 충족했다. 그러나 노동부 포항지청은 두 차례 모두 절차적 하자를 이유로 노조 전환 신청을 반려했고, 이 장관은 이에 대해 뒤늦게 행정조치를 하겠다고 한 것이다.
1987년 이후 철강업계에도 예외 없이 격렬한 노동쟁의가 일어났다. 1988년 포스코에도 한국노총을 상급단체로 하는 노동조합이 설립됐다. 현장 노동자 90%가 가입할 정도로 열기가 대단했다. 그러나 회사는 1997년 ‘근로자참여기준법’에 의거해 쟁의권이 없는 ‘노경협의회’를 출범시키고 노사 화합을 위한 대대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선조들의 핏값으로 지은 공장이라는 부채의식, 생산을 멈추면 대한민국 제조업이 마비된다는 제철보국 정신은 40대 이상 노동자들에게는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또한 과·부·부문·제철소 같은 생산조직 위계 단위와 연계된 협의회를 통해 경영정보를 공유하고, 요구 사항을 파악·해결하여 노사 갈등의 요인인 적대감을 원천적으로 해소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과 별도로 다양한 사내 동호회 활동과 사외 봉사활동에 예산을 지원해서 사회적 연대감을 통한 자긍심도 갖도록 했다(송호근 <혁신의 용광로>).
신뢰와 대립 사이 엇갈린 노사문화
그러나 불법파견 이슈를 중심으로 사내외 협력회사와의 갈등이 노출되면서 2018년 민주노총 금속노조를 상급단체로 하는 포스코지회가 설립됐다. 복수노조가 된 것이다. 그러자 조합원이 거의 탈퇴했던 기존의 한국노총 소속 포스코노동조합과 민주노총 소속 포스코지회가 조합원 모집 경쟁을 벌였다. 초기에는 양 노동조합이 각각 3000여명으로 출발했으나 2022년 말 현재 포스코노동조합은 6000여명이다. 포스코지회는 200여명으로 축소되었고(언론 보도) 현재 금속노조 탈퇴를 추진 중이다.
매출액(7조원) 기준 철강업계 3위 기업인 동국제강도 1980년대 격렬한 노동쟁의를 겪으며 1987년 한국노총을 상급단체로 하는 노동조합이 설립됐다. 동국제강은 격변의 시기에 수많은 파업과 경영위기를 맞이했고 2012년 이후 대형 공장 2곳을 폐쇄하는 어려움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은 1994년 국내 최초로 항구적 무파업을 선언하고 지난해까지 28년째 평화적 노사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이 회사의 특이한 점은 창업자 장경호 회장(1899~1975)의 “너와 내가 둘이 아니라는 불이(不二)철학”이 조직에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박상규 노조 위원장은 이를 “적게 먹더라도 나눠 먹으며 같이 살자”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실제로 동국제강의 연봉은 포스코나 현대제철보다 조금 적다. 그렇지만 회사는 대형 공장 2곳을 폐쇄하면서도 인위적 구조조정을 하지 않았다. 또한 책임경영회의 등 주요 회의에 노조 간부를 직접 참석하도록 해 노사 간의 신뢰를 쌓고 있다.
이러한 두 회사에 비해 현대제철 노조는 민주노총 금속노조를 상급단체로 하는 지회가 5개나 있다. 회사가 인수·합병으로 성장하면서 각 사업장에 있던 지회가 그대로 유지되어 인천(옛 인천제철)과 경북 포항(옛 강원산업), 전남 순천(옛 현대하이스코)에 1개씩 지회가 있고 충남 당진(옛 한보철강과 현대하이스코)에 2개의 지회가 있게 된 것이다.
이 중 인천·포항 등 4개 지회는 사업장의 가동연수가 50년 이상 되면서 직원들의 평균 근무연수도 길고 나름대로 축적된 노사문화가 있다. 그러나 가장 큰 충남지부 현대제철지회(현 당진제철소)는 2010년 이후 급성장하며 많은 인력을 채용하다보니 상대적으로 직원들의 근무연수가 짧아 성숙한 노사문화가 형성되지 못했다.
이를 입증하듯 현대제철 노조는 최근 5년 중 4년 파업을 했다. 특히 급성장한 당진제철소는 지난해 5월2일부터 9월24일까지 146일 동안 사장실을 점거하고, 그 이후 협상이 마무리될 때까지 62일간 게릴라 파업(불시·부분파업)을 진행했다.
노동정책 핵심은 노사 자율성 존중
포스코와 동국제강이 지금과 같은 안정된 노사문화를 구축한 배경엔 세 가지 요인이 있다. 회사와 노조 모두 노사문화의 주체로서 독자적 결정권, 제철보국과 불이사상 같은 경영철학, 경영정보 공유를 통해 축적된 신뢰가 바로 그것이다. 즉 돈 그 이상의 가치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의 경우 노사문화의 미성숙에 더하여 현대차그룹 계열사 노조 간의 연대라는 요인도 있다. 이러한 요인이 산별노조를 지향하는 민주노총 금속노조의 지침과 부딪치는 관계로 신뢰보다는 대결 구도로 가는 면이 존재하고 있다. 또 그룹이 개입하면서 ‘특별격려금’ 문제도 전체 계열사 문제로 번진 측면이 있다.
저성장 지속, 디지털시대, MZ세대의 성장 같은 경영상황하에서 더 이상 대립적 구조로는 생산적인 노사문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국가 전체적으로 업종별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추구하는 확실한 산별노조로 가든가 아니면 노사가 자율적으로 해결토록 외부 개입이 없어야 한다.
노동조합 가입률을 높이고 운영의 민주적 합리성을 높이는 게 ESG 경영(자본주의 지속 가능 발전)에 유익하다는 점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금융자본 중심의 자본주의 탐욕을 억제하고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경영행위에 대한 내·외부 견제가 필요하다.
그러한 견제를 받는 조직문화는 예측성과 투명성을 높여 투자를 활성화시키고 경영효율을 높일 것이다. 철강 3사의 노사문화 현주소는 노동정책의 우선순위가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준다.
김경식 ESG네트워크 대표·고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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