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원의 말글 탐험] [185] ‘매우’보다 센 ‘무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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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걱대는 나무 계단을 오르는 허름한 중국집. 기말고사 끝난 날이었던가. 까까머리 서넛이 있는 대로 털어 내기로 했다. 그래 봤자 다들 백 원짜리 두세 닢. 짜장면 한 그릇씩에 군만두 두 접시가 논산 훈련소 짬밥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먹성 채우려면 멀었건만 주머니에서 더 나오는 건 먼지뿐.
그 시절 150~200원 하던 짜장면 값이 이제 6569원(서울 평균)이니 45년 동안 30~40배 올랐다. 550원에서 평균 9923원(약 18배)이 된 비빔밥과 비교하면 어떻게 뛰었다 해야 어울릴까? 우선 한 음절 정도부사(程度副詞)로 ‘꽤’ ‘썩’ ‘퍽’이 있는데…. 표준국어대사전만 놓고 보자. ‘보통보다 조금 더한 정도로’(꽤) ‘보통의 정도보다 훨씬 뛰어나게’(썩) ‘보통 정도를 훨씬 넘게’(퍽). 18배와 견줄 때 30~40배가 심하다 여긴다면 ‘꽤’보다는 ‘썩’이나 ‘퍽’이 어울리겠다.
두 음절짜리는 어떨까. ‘제법(수준이나 솜씨가 어느 정도에 이르렀음을 나타내는 말)’ ‘너무(일정한 정도나 한계를 넘어선 상태로)’ ‘매우(보통 정도보다 훨씬 더)’ ‘아주(보통 정도보다 훨씬 더 넘어선 상태로)’ ‘몹시(더할 수 없이 심하게)’ ‘무척(다른 것과 견줄 수 없이)’ 따위를 쓸 수 있을 텐데. ‘제법’보다는 ‘매우/아주’, 그보다는 ‘몹시/무척’이 세 보인다. ‘너무’는 ‘제법’과 ‘매우’의 중간쯤인데, 실제 말맛보다 뜻풀이가 약해 어색하다.
별난 것은 ‘썩’ ‘아주’가 ‘뛰다’를 바로 꾸미지 못한다는 점. 정도를 뚜렷이 나타내는 부사와 같이 써야(’썩 많이 뛰었다’ ‘아주 크게 뛰었다’) 자연스럽다. 형용사 꾸밀 때는 자유롭지만(‘썩/아주 높다’) 동사를 꾸미는 데는 제약이 있는 일부 부사의 특성이다.
1980년 영화, 여자가 남자한테 더 먹으라며 덜어 준다. 안 그래도 세숫대야 같은 대접에 한가득이더구먼. 짜고 달고 느끼해도 주책맞게 군침이 돈다. 아, 멀리하기엔 너무나 가까운 짜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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