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48] 빛의 길을 따라가는 순례
인간이 사는 동안 품고 가는 질문의 핵심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일 것이다. 나는 왜 이 세상에 태어나서 무슨 사명을 가지고 살다 죽음 뒤엔 어떻게 될지를, 스스로에게 묻고 답을 찾는 게 산 자의 숙명이다. 강아지가 아무리 좋은 친구라 해도 그 삶을 길에 비유하진 않는다. 오직 사람만이 생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순례자인 것이다.
이정록(1971~ )은 성스러운 장소의 특질을 탐구한다. 그것은 지형이거나 공기의 밀도일 수도 있고, 에너지이거나 그냥 느낌일 수도 있다. 작가는 말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오랜 시간 인간에게 신성성을 체험시켜온 공간에 관심을 가져왔다. 원시림이 살아있는 제주의 곶자왈, 불과 얼음이 만나는 아이슬란드 등 근원적 질문을 품고 찾게 만드는 힘을 지닌 장소의 매력을 사진으로 보여준다.
그중에서도 ‘산티아고(2018-2019)’ 연작은 삶과 길에서 떠올리는 질문을 직설적으로 던진다. 장소의 신성성에 몰두하면서 촬영할 로케이션에 대한 사전조사에 공을 들였지만 실제 그곳에 찾아가서 느껴지는 기운을 사진에 담기 위해서는 더 깊은 고민과 수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했다. 결국 작가는 빛의 세기와 형태 등을 조절해서 신비롭고도 아름다운 경험을 사진에 담아 눈으로 볼 수 있게 만들었다. 물질과 에너지가 공존하는 공간의 힘을 빛을 매개로 드러내는 방법을 찾아서 삶의 무게와 존재의 심연이라는 난제를 명쾌하고 산뜻하게 풀어낸 것이다.
작품이 똑 떨어질수록 고행에 가까운 작업 과정은 필수다. 이정록은 아직도 아날로그 프로세스만을 고집한다. 4x5인치 크기의 슬라이드 필름을 사용하는 대형카메라와 라이트 페인팅 기법으로 한 컷을 찍기에만 꼬박 하룻밤을 보낸다. 한 마리의 작은 나비를 날리기 위해 그는 초저녁에 셔터를 열고 밤새 숨죽여 기다리다 어스름 새벽에 나비 모양 빛을 뿜는 플래시를 터트렸다. 낮은 발걸음으로 한 땀 한 땀 심은 수백 수천의 빛이 나비길이 되어 순례자를 이끈다.
가벼운 날갯짓을 하는 나비를 따라 빛의 길을 걷는다. 신령한 물길 같기도, 폭신한 구름길 같기도, 은은한 별길 같기도 하다. 저 길의 끝엔 뭐가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길이 있으니 나는 간다. 그저 묵묵히 걷고 또 걸어서 나를 향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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