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서점… 식당… 그가 그리면 베스트셀러가 됩니다
서점의 소설 코너. 최근 베스트셀러를 진열해놓은 평대를 보면 유독 표지 중앙에 건물을 그려넣은 책들이 눈에 띈다. ‘불편한 편의점’(나무옆의자)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클레이하우스) ‘위저드 베이커리’(창비)’… 업종은 모두 다르지만, 모두 도시의 일상적인 공간을 담은 표지들이다. 마치 한 사람이 그린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면 당신은 옳다. 이 건물 표지들은 모두 일러스트레이터 반지수(32) 작가가 그린 그림이다.
그의 책 표지는 따뜻한 온도의 파스텔톤으로 칠해진다. 샛초록 나무들로 둘러싸인 일상적 공간, 여유로운 걸음걸이의 사람들. 마치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연상케한다. 반 작가는 2021년부터 본격적으로 책 표지를 그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그의 손을 거쳐 탄생한 책만 약 40권이다. 편의점, 서점, 식당… 친숙한 공간에서의 소소한 에피소드를 통해 위로와 감동을 주는 소설이 많다. 서정적인 분위기의 그림이 인기를 얻으며, 반 작가의 인스타그램 계정 팔로어는 10만명까지 늘어났다. 작년 11월 출간된 소설 ‘얼터네이트’(소미미디어)는 반 작가가 표지 작업만 했을 뿐인데도 겉표지에 저자와 나란히 이름이 적히기도 했다. 출판 시장에서 일러스트만으로 이 정도 관심을 모은 것은 이례적이다. 그의 인천 작업실에서 표지 뒤에 담긴 이야기를 들었다.
‘그림을 소장하려고 책을 산다’는 사람들이 생길 정도로 개성 있는 작업물을 내놓는 작가지만, 정작 그는 미대 수업은 물론 입시 미술도 경험해보지 않았다. 반 작가의 전공은 정치외교학. 그림을 그리기로 마음먹은 것은 졸업을 앞둔 대학 4학년 때였다. “발표 PPT 자료를 만들다가, 문득 저 자신이 무엇을 만들어낼 때 주변 소리가 안 들릴 정도로 몰입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 순간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던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이후 그는 드로잉 북을 구입해 혼자 그림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특히 자신의 전공이 아닌 분야에 도전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많이 찾아봤어요.”
이후 개인 드로잉 작업을 쌓기 시작한 반 작가가 지금의 그림체를 갖게 된 것은 2017년 입사한 애니메이션 회사에서였다. “당시 애니메이션 배경 미술 작업을 하면서 지금의 제 스타일을 찾을 수 있었죠. 마감이 실력을 만들어주더라고요(웃음).”
2018년 프리랜서가 된 이후 반 작가는 개인 소셜미디어와 창작그림 플랫폼 사이트 ‘그라폴리오’에 1주일에 한 편씩, 주로 도시의 밤 풍경을 묘사한 작업물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림은 곧 출판사 디자이너의 눈에 띄었고, 그렇게 대중에게 그의 이름을 알렸던 ‘불편한 편의점’(2021년 1권 출간)의 표지 작업 제안을 받게 됐다. 그의 작업물이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동네 주민들의 에피소드를 풀어내는 소설 내용과 어울렸기 때문. “소설에 어울리는 한국적인 풍경과 디테일을 잘 담아내고 싶어 서울의 골목을 정말 많이 돌아다녔어요. ‘불편한 편의점’은 마포구 성산동 골목이 모델이에요. 이후 ‘휴남동 서점’은 망원동에서 영감을 얻었고요.”
그가 그린 ‘불편한 편의점’은 1·2권 합쳐 약 130만부가 팔렸다. 편의점이 흥행하자 출판계의 러브콜이 쏟아졌다. 작년에만 50건 이상의 작업 제안을 받았을 정도. 감사한 일이었지만, 아쉬움도 남았다. “’불편한 편의점 느낌으로 그려달라’는 분들도 계셨죠. 그래서 반대로 제가 다른 시안을 제안하기도 했어요. 사실 저는 펜드로잉이나 회화 느낌의 그림도 자신이 있어요. 앞으로는 조금 더 다양한 제 모습을 보여드려야죠(웃음).”
반 작가의 희망은 자신의 그림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이다. 그는 그 첫걸음으로 여름방학 풍경을 그린 그림책을 작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잘 만든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저도 제 그림에 움직임과 소리를 넣어 살아 움직이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 왔어요. 이제 제 작품을 시작해야 하는 단계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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