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사람에 충성하는 정치, 희극 혹은 비극
‘일개’ 검사 윤석열이 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 되는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와 같았다. 그 드라마의 시작은 아마도 2013년 국정감사장에서의 명언으로 기억된다.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습니다.” 2012년 대선에 국정원이 댓글부대를 동원한 사건의 수사팀장으로서 당시 직속상관인 서울중앙지검장과 법무부 장관의 외압을 고발하면서 내던진 일갈이었다. 서슬 퍼렇던 박근혜 정부 초기에 정권의 시녀라는 비아냥을 받던 검찰에도 법과 원칙이 살아 있음을 증명한 것으로 국민의 뇌리에 기억되었다.
이 항명사건으로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검사 윤석열이 수사팀에서 배제되고 좌천된 것은 머지않아 전화위복의 드라마가 되었다. 2017년 촛불혁명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고 적폐청산의 상징인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전격 발탁된 것이다. 바로 자신이 항명했던 그 자리에 오른 뒤에는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들을 포함하여 보수정부의 핵심인사들을 거침없이 단죄하면서 또다시 전격적으로 검찰총장에 올랐다.
그리고 검찰총장 윤석열은 모두의 예상이나 기대와는 달리 또다시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반전의 역사를 썼다. 자신의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핵심정책인 검찰개혁에 저항하면서 대통령의 법무장관 인사권을 무력화시키는 데 검찰권을 총동원하였다. 급기야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수준을 넘어 이른바 ‘살아 있는 권력’도 검찰에는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검찰지상주의를 노골적으로 표방하였다. 급기야 초유의 총장징계사태를 겪으면서 중도사퇴하더니 곧이어 정치에 뛰어들어 불과 1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더 이상 충성할 사람이 없는 자리에 오르는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었다.
공직자로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정치인 윤석열은 검사 시절의 윤석열은 까맣게 잊은 듯 또 다른 반전의 드라마를 써가고 있다. 이번에는 사람에 충성하는 정치다. 이 반전 드라마는 장르 넘나들기라는 고도의 연출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우선 희극이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결기의 결말을 통렬한 자기반성으로 마무리하는 것이다. 지은 죗값을 다하지 못하고 진정 어린 사과도 거부한 두 전직 대통령에게 오히려 사과하고 사면의 은사를 베풀면서 적폐수사의 과오를 반성했다. 뒤늦게 사람에 충성하지 않은 잘못을 스스로 고해한 꼴이다. 자신을 중용했으나 충성하지 않은 것도 모자라 직권남용과 이적행위의 꼬투리잡기에 급급한 이전 정부의 인사들에게도 언젠가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다. 희극치고는 블랙코미디인가?
그래도 이 드라마의 주된 장르는 비극으로 보인다. 국정 전반에 직계인 검찰 출신을 포진시키고 아예 검찰권을 자신이 걸머쥔 살아 있는 권력과 일체화하고 있다. 스스로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면서 출세의 길을 가더니 정작 자신은 공권력을 자신에게 충성하도록 사유화한 것이다. 드라마 첫 막에서 댓글 사건 수사로 척을 졌던 국정원은 가까스로 올랐던 정상화 궤도에서 탈선하여 잃어버린 권력을 하나하나 회복하면서 공안정국을 주도할 태세다.
40년을 넘보는 민주화의 오랜 성취를 하루아침에 권위주의 시대로 회귀시키는 이 막장 드라마를 비극으로 이끄는 주된 무대는 여당이다. 명색이 집권당이지만 용산 대통령실의 출장소로 전락해가고 있다. 당원과 국민이 뽑은 당대표는 박빙선거를 반전시킨 제일공신이지만 내부 총질을 빌미로 숙청되었다. 여론전과 재판 등 단기필마로 대항해 보았지만 중과부적이었다. 집권하자마자 비상기구로 운영되는 여당의 새로운 당대표 선거는 급기야 국민배제선거로 치러진다. 제일당원인 대통령의 뜻에 따라 제대로 된 공론과정도 없이 당규를 바꾼 결과다. 그마저도 국정의 비전이나 정책을 다투는 선거가 아니라 누가 윤심을 얻고 윤핵관의 구미를 맞출 것인지가 관건이다. 교통정리를 위해 공직을 주었다가 뺏는 것은 기본이고 대통령비서실장의 주임무는 특정 당대표 후보의 일거수일투족에 일일이 대응하는 것이다. 사람에 충성하는 정치가 윤석열 정부의 공정과 상식의 실체다.
민주공화국이 사람에 충성하는 정치가 아니라 법에 충성하는 정치라는 걸 모르는 국민은 없다. 검사 윤석열이 국민의 환호를 받았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초심을 잃고 권력에 취한 대통령 윤석열이 사람에 충성하는 정치로 나선 마당에 그를 지지했던 국민들의 마음이 편할 리 없다. 이 비극의 최대 피해자는 결국 민주공화국의 주인인 국민들인 것이다. 비극을 해피엔딩으로 전환시킬 진짜 드라마의 주인공 역시 우리들 대한국민일 것이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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