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형준]아직은 대통령이 나서야 ‘갑질’ 해결된다

박형준 경제부장 2023. 1. 20.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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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하나로 자신만의 사업 모델을 만들어가는 스타트업 대표들을 만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이 대표는 3분간 발언 기회를 얻었다.

"보안 사고에 대한 금융당국의 정책이 변해야 합니다. 과도한 제재로 인해 금융회사가 새로운 시도를 열심히 해보기가 참 어렵습니다." 이 대표의 발언이 끝나자 장내에는 2, 3초간 침묵이 흘렀다고 한다.

당장 전화기를 들고 싶은 스타트업 대표들이 많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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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환경 명분 대며 “안 돼”만 반복하는 공무원
애매하면 처리 않는 공무원 감사해야 분위기 반전
박형준 경제부장
열정 하나로 자신만의 사업 모델을 만들어가는 스타트업 대표들을 만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그들을 응원하게 된다. 애로사항도 꼭 물어본다. 좋은 인재를 구하기 힘들다는 점, 자금 부족, 그리고 정부 규제를 공통적으로 꼽았다. 불합리한 규제는 언론의 힘으로 없앨 수도 있다. 구체 사례를 물었지만 그들은 예외 없이 입을 닫았다. 공무원 눈 밖에 나면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핀테크 플랫폼 ‘토스’의 성장사를 다룬 서적 ‘유난한 도전’을 읽으면서 그들이 입 닫았던 규제의 단면을 볼 수 있었다. 토스는 2014년 3월 개인 간 간편 송금 시범 서비스를 열었다. 은행 모바일 뱅킹은 첫 화면에서 송금까지 8, 9단계를 거쳐야 하지만 토스는 3단계로 줄였다. 가입자가 매주 8%씩 늘어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한 달 뒤 금융 서비스 망을 제공한 회사가 “더 이상 협력할 수 없다”고 했다. 개인 간 송금에 금융 서비스 망을 허용하지 말라는 금융당국의 연락을 받았다는 것이다. 은행 아니면 송금 서비스를 할 수 없다는 법 규정은 없다. 하지만 ‘해도 된다’는 법 조항도 없다. 금융당국은 이처럼 애매모호한 상태에서 가장 쉽고 안전한 길, 규제를 선택한 것이다.

1년 뒤 문제는 해결됐다. 2015년 1월 청와대에서 열린 정부 업무보고에 토스를 만든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도 초대됐다. 대통령과 기획재정부 장관, 금융위원장, 국책은행장 등이 모인 자리였다. 이 대표는 3분간 발언 기회를 얻었다. “보안 사고에 대한 금융당국의 정책이 변해야 합니다. 과도한 제재로 인해 금융회사가 새로운 시도를 열심히 해보기가 참 어렵습니다….”

이 대표의 발언이 끝나자 장내에는 2, 3초간 침묵이 흘렀다고 한다. 다행히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규제 일변도의 금융 정책을 바꾸겠다고 화답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금융위원회는 토스 서비스를 사실상 허용하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그 덕분에 2015년 2월 토스 서비스가 정식으로 출시될 수 있었다. 현재 토스는 국내 제1호 핀테크 유니콘(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 스타트업)이 됐다.

모든 규제가 나쁜 것은 아니다. 시장의 실패를 막고 시장경제가 안고 있는 부(富)와 정보 격차를 줄여주는 좋은 규제도 많다. 하지만 법과 제도가 정비되지 않은 신사업 영역에서 종종 규제는 기업인의 손과 발을 묶는다. 아무리 사업 모델이 좋아도 법에 명쾌하게 규정돼 있지 않으면 공무원은 “서비스 불가” 판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안전, 환경, 질서, 이해관계 충돌은 단골로 내세우는 명분이다. 경제 활성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는 박하고, 규제를 없애 부작용이 일어났을 때 ‘책임’은 무거운 현 감사 시스템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아랍에미리트(UAE)와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잇달아 영업사원을 자처했다. “공무원을 상대할 때 ‘갑질이다’ 싶은 사안은 저에게 직접 전화해 달라”고도 했다. 당장 전화기를 들고 싶은 스타트업 대표들이 많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대통령이 수많은 전화를 받지 않고도 문제를 개선시키는 방법도 있다. 감사 방향을 바꾸면 된다. 일이 되게끔 하려다 그릇을 깬 공무원에게는 관대할 필요가 있다. 그 대신 애매하면 처리하지 않는 소극적인 공무원에게 감사의 칼날을 들이대야 한다. 그럼 저절로 갑질이 줄어들 수 있다.

박형준 경제부장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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