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경남 ‘30년 물 분쟁’ 또 불거졌다

김준호 기자 2023. 1. 20.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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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창녕 물 부산공급 추진에… 경남주민들 “동의도 없이” 반발
지난 17일 경남 합천군 율곡면 황강 죽고지구 하천 정비 사업 현장 사무실 일대에서 합천·창녕 등 취수 예정 지역 주민 1000여 명이 ‘낙동강 취수원 다변화 사업’ 철회 촉구 대규모 집회를 갖고 있다. /합천군

서부 경남인 합천·창녕 지역의 맑은 물을 끌어다 부산시 등에 공급하려던 사업이 합천·창녕군 지역 주민 반발에 부딪혀 난항을 겪고 있다. 주민들은 지하수 고갈에 따른 농사 피해, 상수도보호구역 지정으로 인한 각종 제약 등을 우려해 취수원 개발에 반대하고 있다. 사업 추진에 앞서 소통 창구 역할을 하는 ‘낙동강 취수원 다변화를 위한 민관 협의체’가 작년 11월 구성됐지만, 환경부의 올해 예산에 실시설계용역비가 편성된 것이 알려지면서 주민들은 “뒤통수를 맞았다”며 반발하고 있다.

지난 17일 오전 경남 합천군 율곡면 죽곡지구 하천 정비 사업 상황실 앞. 합천·창녕 주민 등 1000여 명이 모여 환경부의 ‘황강 광역 취수장 설치’ 반대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환경부가 주민 동의를 먼저 구한 후 사업을 추진한다고 했는데 타당성 조사도 하기 전에 올해 예산에 실시 설계비를 반영한 것은 주민들을 기만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민들은 “명분 쌓기용으로 전락한 민관 협의체에 있을 이유가 없다”며 상황실에서 열린 민관 협의체 2차 회의 참석을 거부했다. 경남도, 부산시, 합천·창녕군, 지방의회 의원, 주민 대표 등이 참여한 가운데 개최될 예정이던 이날 회의는 결국 파행으로 끝났다.

‘낙동강 취수원 다변화 사업’은 창녕 낙동강변 여과수(여과를 거친 물·45만t)와 합천 황강변 복류수(하천과 호 바닥 등에 흐르는 물·45만t) 등 하루 90만t의 물을 동부 경남(48만t), 부산(42만t)으로 공급(관로 102.2㎞)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오는 2028년 완공이 목표다. 투입 예산은 1조4000억원에 달한다.

이 사업은 지난 1991년 낙동강 페놀 사태를 계기로 낙동강 유역의 취수원을 다변화, 낙동강 하류 지역 주민들에게 맑은 수돗물을 공급하기 위해 처음 추진됐지만 30년째 공전을 거듭했다. 그러다 지난 2021년 6월 24일 낙동강유역물관리위원회가 ‘지역 주민 동의 후 추진’ 등을 조건부로 의결한 후 지난해 6월 30일 기획재정부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하고 정부 사업으로 확정됐다. 작년 11월엔 사업 추진과 소통을 위한 민관 협의체가 구성되는 등 사업 추진에 속력을 내는 듯했다.

그러나 관련 예산(19억2000만원) 편성 후 합천군과 창녕군뿐만 아니라 취수 영향 지역이라고 주장하는 거창군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주민들은 지하수 고갈로 인한 농사 피해, 상수도 보호구역 지정 등으로 인한 제약 등을 우려해 이 사업을 반대하고 있다. 지난 1996년엔 합천 황강 하류에서 맑은 물을 받아 부산에 공급하는 방안이 추진되다 지역 주민들이 트랙터 등 농기계를 몰고 거리로 나가 저항하면서 사업이 무산된 바 있다.

박오영 황강취수장 관련 군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은 “환경부의 예산 편성은 사실상 사업 추진을 전제로 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앞으로 어떠한 이야기도 믿을 수 없어 대화를 중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창녕·거창 주민들도 역시 같은 입장이다.

경남도는 신중한 입장이다. 박완수 경남지사는 지난 18일 창녕군을 찾아 주민들과 만난 자리에서 “물은 창원, 김해, 양산 등 동부 경남과 부산 지역이 나눠 마시는 게 맞지만 지역 주민 피해 등이 없는 범위 안에서 물을 지원해야 한다는 게 경남도 입장”이라며 “주민 동의를 얻는 문제가 해결돼야 다음 절차로 넘어갈 수 있는 것인데, 환경부가 실시 설계 예산을 미리 반영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맑은 물 공급 사업’에 대해 기대하던 부산시는 내심 당황하고 있다. 신성봉 부산시 맑은물정책과장은 “올해 예정된 타당성 조사를 통해 주민 우려는 어느 정도 해소될 것으로 본다”며 “아직 발표 단계는 아니지만 물을 가져오는 만큼 취수 지역에 대해 부산시 차원의 여러 가지 지원·상생 방안도 다각도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민관 협의체 회의가 언제 재개될지는 불투명하다. 환경부 관계자는 “일단은 반대하는 주민들을 자주 만나 오해를 불식하고, 소통을 강화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주민들이 다시 민관 협의체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다음 단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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