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뽕으로 이어지는 한중일의 먹거리 문화[이즈미 지하루 한국 블로그]
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서경대 글로벌비즈니스어학부 교수 2023. 1. 20. 03:02
짬뽕이 새빨갛고 맵다니! 처음 한국에서 짬뽕을 먹어봤을 때 색깔도 맛도 충격적이었다. 일본인인 나는 짬뽕이라 하면 ‘수프는 하얗고 부드러운 것’으로 인식해 왔기 때문이다.
3년 만에 양력 설날을 고향 사가(佐賀)현 다케오(武雄)에서 보내면서, 지난주 금요일 본고장의 짬뽕을 먹기 위해 혼자 나가사키(長崎)로 향했다. 작년 9월에 개통한 니시큐슈신칸센을 타면 다케오온천역에서 나가사키역까지 불과 3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순식간에 도착하는 것이다. 나가사키역의 관광안내소에서 받은 ‘짬뽕 가이드북’을 참고로 우선 짬뽕의 뿌리부터 찾아가기로 했다.
비가 내리는 나가사키역에서 노면전철로 ‘시카이로(四海楼)’에 갔다. 시카이로는 짬뽕의 창시자 천핑순(陳平順·1873∼1939)이 1899년 개업한 중국식당이다. 5층의 레스토랑에서 이나사야마(稲佐山)와 부두를 바라보며 먹는 짬뽕은 하얀 수프로 깊은 맛이 느껴졌다. 나는 ‘이 맛이 역시 짬뽕이야’라고 감탄했다.
시카이로 4대 사장인 진 마사쓰구(陳優継)의 저서 ‘짬뽕과 나가사키 화교’에 따르면, 핑순은 19세 때 중국의 푸젠(福建)성에서 나가사키로 건너와 옷감 행상으로 자금을 축적해 가게를 열었다. 자신이 고생했기 때문에 중국에서 건너온 화교와 유학생들의 신원 보증인이 되었고, 그들의 식생활을 걱정해 고향의 ‘돈니시몐(湯肉絲麺)’을 떠올리면서 싸고 영양가 높은 짬뽕을 고안했다고 한다. 지혜를 짜내 중화요리의 베이스인 닭 국물에 돼지 뼈로 맛을 내며 수제 면, 그리고 육해공과 사계절의 나가사키 식재료를 사용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시나우동(支那饂飩)’이라는 명칭이었으나, 1910년 전후부터 ‘짬뽕’이라고 불리게 됐고 단번에 나가사키에서 사랑받는 대중 요리로 자리 잡았다. 즉, 짬뽕은 일본에서 중국인이 만든 식문화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핑순이 ‘짬뽕’을 상표 등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그 이유를 “화교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먹어주는 것이 기쁘다”고 했는데 그런 열린 마음이 나가사키의 특산품 짬뽕을 태어나게 한 것이다.
한국의 짬뽕에 관해서는 문화인류학자 주영하 교수의 저서 ‘차폰 잔폰 짬뽕’에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그는 나가사키와 한국의 짬뽕을 만드는 방법을 살펴보면 기본적인 과정이 거의 같기 때문에 화교를 통해 나가사키의 짬뽕이 한국에 건너온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럼, 언제부터 ‘한국의 짬뽕’은 붉어졌을까? 주 교수의 책을 살펴보면 1964년부터 충청남도 금산에서 중화요리점을 운영했던 쉬(徐) 씨가 ‘짬뽕이 매워진 것은 1970년대 이후 한국인 종업원들이 식당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였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비쳤다고 한다.
한편 1960년대까지 서울에 거주했던 지인 이타가키(板垣) 씨는 1962년 고등학교에 입학하며 붉고 매운 짬뽕을 먹었다는 추억을 내게 들려줬다. 당시에는 매운 짬뽕이 진수성찬이었다고 한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빼갈(배갈·白干儿)’이라는 중국술과 함께 먹는 것이 최고의 즐거움이었다고 했다. 즉 원래는 하얗지만 후에 붉어졌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짬뽕이 붉어지는 것은 서울보다 지방이 늦어진 것으로 보인다.
짬뽕이란 정말 이상한 음식이다. 바다의 것, 산의 것이 섞여 그 토지의 맛을 이룬다. 중국인에 의해 나가사키에서 태어나 일본 국내에 퍼졌고, 그리고 한국에 건너와 얼큰한 한국의 맛이 되어, 우리 서민의 주린 배를 채워 왔다.
그리고 지난해 5월 2일자 니시닛폰( 西日本)신문에 따르면 최근에는 중국 상하이에서 나가사키 짬뽕이 인기라고 한다. 가게 주인 가쓰야마(勝山) 씨에 따르면 인기의 비결로 “라면은 쉽게 질리지만, 건강 지향이 높아짐에 따라 짬뽕은 여러 다양한 식재료가 들어가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2022년 3월 하순 상하이가 봉쇄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한 달에 700그릇 정도의 매출을 올렸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나가사키현인회, 즉 ‘나가사키 짬뽕회’를 소개하고 싶다. 현재 회원이 약 70명으로 일본인과 한국인의 비율은 반반이다. 나가사키 출신뿐 아니라 나가사키에 관심이 있는 이는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회장 모리사와(森澤) 씨에 의하면 “나가사키는 예로부터 이문화(異文化)를 편히 받아들여왔다. 여러 가지를 받아들이는 모임이라 ‘짬뽕 모임’으로 정했다”고 했다. 멤버들의 너그러운 생각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그것이 바로 짬뽕의 정신이 아닐까? 나도 다음 모임에는 참여해봐야겠다.
3년 만에 양력 설날을 고향 사가(佐賀)현 다케오(武雄)에서 보내면서, 지난주 금요일 본고장의 짬뽕을 먹기 위해 혼자 나가사키(長崎)로 향했다. 작년 9월에 개통한 니시큐슈신칸센을 타면 다케오온천역에서 나가사키역까지 불과 3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순식간에 도착하는 것이다. 나가사키역의 관광안내소에서 받은 ‘짬뽕 가이드북’을 참고로 우선 짬뽕의 뿌리부터 찾아가기로 했다.
비가 내리는 나가사키역에서 노면전철로 ‘시카이로(四海楼)’에 갔다. 시카이로는 짬뽕의 창시자 천핑순(陳平順·1873∼1939)이 1899년 개업한 중국식당이다. 5층의 레스토랑에서 이나사야마(稲佐山)와 부두를 바라보며 먹는 짬뽕은 하얀 수프로 깊은 맛이 느껴졌다. 나는 ‘이 맛이 역시 짬뽕이야’라고 감탄했다.
시카이로 4대 사장인 진 마사쓰구(陳優継)의 저서 ‘짬뽕과 나가사키 화교’에 따르면, 핑순은 19세 때 중국의 푸젠(福建)성에서 나가사키로 건너와 옷감 행상으로 자금을 축적해 가게를 열었다. 자신이 고생했기 때문에 중국에서 건너온 화교와 유학생들의 신원 보증인이 되었고, 그들의 식생활을 걱정해 고향의 ‘돈니시몐(湯肉絲麺)’을 떠올리면서 싸고 영양가 높은 짬뽕을 고안했다고 한다. 지혜를 짜내 중화요리의 베이스인 닭 국물에 돼지 뼈로 맛을 내며 수제 면, 그리고 육해공과 사계절의 나가사키 식재료를 사용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시나우동(支那饂飩)’이라는 명칭이었으나, 1910년 전후부터 ‘짬뽕’이라고 불리게 됐고 단번에 나가사키에서 사랑받는 대중 요리로 자리 잡았다. 즉, 짬뽕은 일본에서 중국인이 만든 식문화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핑순이 ‘짬뽕’을 상표 등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그 이유를 “화교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먹어주는 것이 기쁘다”고 했는데 그런 열린 마음이 나가사키의 특산품 짬뽕을 태어나게 한 것이다.
한국의 짬뽕에 관해서는 문화인류학자 주영하 교수의 저서 ‘차폰 잔폰 짬뽕’에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그는 나가사키와 한국의 짬뽕을 만드는 방법을 살펴보면 기본적인 과정이 거의 같기 때문에 화교를 통해 나가사키의 짬뽕이 한국에 건너온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럼, 언제부터 ‘한국의 짬뽕’은 붉어졌을까? 주 교수의 책을 살펴보면 1964년부터 충청남도 금산에서 중화요리점을 운영했던 쉬(徐) 씨가 ‘짬뽕이 매워진 것은 1970년대 이후 한국인 종업원들이 식당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였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비쳤다고 한다.
한편 1960년대까지 서울에 거주했던 지인 이타가키(板垣) 씨는 1962년 고등학교에 입학하며 붉고 매운 짬뽕을 먹었다는 추억을 내게 들려줬다. 당시에는 매운 짬뽕이 진수성찬이었다고 한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빼갈(배갈·白干儿)’이라는 중국술과 함께 먹는 것이 최고의 즐거움이었다고 했다. 즉 원래는 하얗지만 후에 붉어졌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짬뽕이 붉어지는 것은 서울보다 지방이 늦어진 것으로 보인다.
짬뽕이란 정말 이상한 음식이다. 바다의 것, 산의 것이 섞여 그 토지의 맛을 이룬다. 중국인에 의해 나가사키에서 태어나 일본 국내에 퍼졌고, 그리고 한국에 건너와 얼큰한 한국의 맛이 되어, 우리 서민의 주린 배를 채워 왔다.
그리고 지난해 5월 2일자 니시닛폰( 西日本)신문에 따르면 최근에는 중국 상하이에서 나가사키 짬뽕이 인기라고 한다. 가게 주인 가쓰야마(勝山) 씨에 따르면 인기의 비결로 “라면은 쉽게 질리지만, 건강 지향이 높아짐에 따라 짬뽕은 여러 다양한 식재료가 들어가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2022년 3월 하순 상하이가 봉쇄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한 달에 700그릇 정도의 매출을 올렸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나가사키현인회, 즉 ‘나가사키 짬뽕회’를 소개하고 싶다. 현재 회원이 약 70명으로 일본인과 한국인의 비율은 반반이다. 나가사키 출신뿐 아니라 나가사키에 관심이 있는 이는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회장 모리사와(森澤) 씨에 의하면 “나가사키는 예로부터 이문화(異文化)를 편히 받아들여왔다. 여러 가지를 받아들이는 모임이라 ‘짬뽕 모임’으로 정했다”고 했다. 멤버들의 너그러운 생각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그것이 바로 짬뽕의 정신이 아닐까? 나도 다음 모임에는 참여해봐야겠다.
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서경대 글로벌비즈니스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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